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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ILO 협약 비준 공약도 ‘먹튀’
사실상 정부안인 공익위원안 거부해야

문재인 정부가 ILO 기본협약 비준·이행, 노조할 권리 보장을 약속한 지 1년 반이 넘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까지 이를 위한 그 어떤 조처를 추진하지도, 의지를 내비치지도 않고 있다. 문재인이 11월 국회를 앞두고 한 국회 시정연설, 여야정 협의체 회의에서도 관련 발언은 한 마디도 없었다.

한국이 ILO에 가입한 지 27년째다. 그동안 ILO는 한국 정부에 교사·공무원의 노동 3권과 정치활동의 자유 보장,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결권 보장, 간접고용 노동자의 원청 직접교섭 촉진 등을 수 차례 권고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은 노동운동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주요 참가자여서 노동계에 잘 보여야 했기 때문에 ILO 기본협약 비준·이행을 약속했다.

그런데 문재인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사회적 대화로 끌고 간 것은 불순한 목적이 있다. 노동기본권을 노사정 협상의 거래 대상으로 삼아 노동자들에게 후퇴를 강요하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 논의는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최근 정부는 빈 껍데기뿐인 공익위원 안을 적극 지지하며 노사정 합의를 압박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고작! “단체” 결성만 인정하겠다 한다 ⓒ조승진

공익위원 안은 무엇 하나 제대로 보장하는 게 없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노동자 지위’ 보장에는 관심도 없다. 고작 내놓은 것이라고는 노조가 아니라 “단체”를 설립할 자유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단체 설립에 무슨 사회적 협의가 필요한가?

공익 안은 대리운전·화물·건설기계 등 복수의 사용자를 둔 특수고용 노동자 단결권에 대해서도 제시하는 게 없다. 지난해 대리운전노조 설립신고 반려에서 보듯, 이 문제가 단결권을 가로막는 핵심인데 말이다.

교사·공무원의 노동기본권도 형식적인 노조 인정(단결권) 문제로만 국한했는데, 그조차 구체적 내용이 전혀 없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논란이 돼 온 핵심 쟁점, 즉 공무원노조·전교조·기간제교사노조의 단결권 보장에 걸림돌인 조합원 가입 범위(해고자·실업자 포함 여부) 문제에 아무런 말이 없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은 아예 의제에 오르지도 않았다.

이러다가는 문재인이 내년 ILO 100주년 총회에서 뻔지르르한 말로 생색만 내고는 협약 비준조차 않고 내뺄 수도 있다. 역대 정부들이 ILO 총회에서 수없이 약속한 “국제 수준의 노동기본권 보장”, “차별과 양극화 해소” 등이 모두 공염불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문재인이 약속을 저버린 것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야 하는 처지에 노조할 권리를 확대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후퇴

그런 점에서, 11월 1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공익위원 안 거부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고(소수는 반대했다), 몇 가지 수정 의견을 달아 협의 과정을 “위원장 판단”에 맡기기로 한 것은 유감이다. 수정 사항도 “단체” 설립의 자유에 관한 표현을 “노조”로 바꾸는 정도다.

이날 김명환 위원장은 공익위원 안에 동의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자 측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 합의라도 있어야 법 개정과 투쟁의 발판을 놓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김명환 집행부는 “단계적 추가 교섭”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 논의에 직접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김명환 집행부에 반발하며 항의했다. 특수고용대책회의 소속 대표자들은 대체로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 논의와 선을 긋고, 독자적인 투쟁과 요구를 해 나가자’는 분위기라고 한다.

금속노조 산하 비정규노조 대표자 회의에서도 불법파견 등 간접고용 문제(원청과의 교섭)가 전혀 다뤄지지 않는 것에 불만이 제기됐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민주노총의 공식 요구안을 접어두고 공익위원 안으로 후퇴하는 것은 결코 투쟁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지도부가 이런 노동자들에 실망을 주는 것은 싸우기도 전에 노동자들의 김을 빼서 투쟁의 동력을 갉아먹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