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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우경화 압력에 반발해야

한나라당의 우경화 압력에 반발해야

  김인식

 한나라당이 유약한 중도 우파 정권의 개혁을 좌절시키는 무기로 반(反)사회주의 선동을 꺼내 들었다. 이번의 반사회주의 선동은 7월 하순 김대중 정부가 노동 계급에게 내놓은 일련의 양보안을 겨냥하고 있다.(양보안의 내용과 배경에 대해서는 이 잡지의 다른 글들을 참조하시오.)

 다음은 한나라당 정책위원장 김만제가 김대중 정부를 향해 쏟아 놓은 우익적 비난 목록이다.

 의약 분업은 "철저하게 좌파적 발상"이고, 사립학교법은 "사학의 재산권을 침해"하며, 정기간행물법은 언론사주의 "소유 지분을 제한하고 소유·경영의 분리를 주장하는 좌파적 발상"이다. 노사정위는 "디제이 정권이 '노동자는 우리 편'이라는 발상"에서 시작한 것이고, 주5일 근무제로 "노동자들이 토요일 놀겠다고 하면 그 기업은 ... 현실적으로 견디기 어렵"다.

 그러자 한나라당의 우익 동맹자 〈조선일보〉가 이 선동에 가세했다. 〈조선일보〉(8월 8일치)는 사설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김대중 정부가]표면적으로 복지 사회와 공정 경쟁을 내세우고 실질적으로는 시장을 배제하고 국가 주도와 공적 개입을 무제한 정당화하고, 시장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적 소유제까지 초월하려는 정책을 지향한다면 그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가 된다."

 곧이어 덧붙이기를, "실패한 의약 분업이나 사립학교 관계법, 언론의 소유 경영 강제 분리 정책, 일부 노동관계 제도 등에서 보면 집권당의 정책 이념 지향에 일부 의문을 갖게 된다."

 한나라당과 우익 동맹자들은 김대중 정부가 내놓은 보잘것없는 개혁 조처들마저 좌절시키려 한다. 그들은 김대중 정부의 개혁을 "낡은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로 말미암아 지배 계급내 긴장과 쟁투가 고조되고 있다.

 김대중 개혁이 사회주의와 아무 관련 없음은 둘째 치고, 사회보장제도를 지향하는 것조차 아니다. 김만제가 일일이 열거한 비난 목록들은 사회보장제도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의 우익적 비난들은 완전한 넌센스다. 사장들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정리 해고하고 노조 활동가들을 구속·탄압하는 반노동자 정부를, 자신의 정치 신념을 표현했다고 해서 통일 운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을 투옥하는 반민주 정부를, 토지 소유주들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반환경적 정부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장애인들을 몽둥이로 두들겨패는 억압적인 정부가 도대체 어떤 점에서 "사회주의적"인가.

 심지어 김대중 정부를 유럽의 사회민주당 정부에 비유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김대중 정부를 "중도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사회 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김대중은 국가보안법 유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 민주주의조차 완전히 허용하길 두려워하는 우파다.

한나라당 ― 미치광이 우파 정당

 한나라당은 철저하게 시장주의에 근거해 김대중 개혁을 비판한다. 대자본가들의 재정 후원에 의존하는 정당답게 말이다. 한나라당이 '사회주의적'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할 때, 이것은 '시장 원리를 따르지 않는 것'과 동의어다. 시장 원리에 반하는 모든 것은 그들에게 악이다. 한나라당 정책위원장 김만제는 "DJ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경쟁을 촉진해 효율성을 높이는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서 정부가 자꾸 평등주의를 강조하면서 자원을 총동원해 경제·사회·복지 등의 문제를 모두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낡은 사회주의적 사고다."

 그는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회주의라는 단어 앞에 꼭 "낡은"이라는 수식어를 용의주도하게 갖다 붙인다.

 한나라당의 선동은 김대중 정부에게 시장을 더욱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장은 평범한 사람들을 정리해고, 실업, 생활 수준 하락, 가난으로 내몰고 있다. 이게 김대중 정부 집권 3년 6개월 동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 김대중을 향해 "평등주의를 강조"하지 말라니, 한나라당은 끔찍한 불평등주의자들이다.

 한나라당은 '개혁 = 정부 개입(통제) = 반(反)시장 = 사회주의'라는 공식을 읊조린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반대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개혁'인 것처럼 위선을 떤다. 한나라당은 개혁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열망과 반개혁에 대한 대중적 증오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대중으로부터 반개혁적 정당으로 낙인찍힐까 봐 조심한다. 한나라당은 사회주의를 끔찍히도 혐오하는 대자본가 정당이다. 그러나, 동시에, 명백한 반개혁적 수구 정당이다. 한나라당이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 개혁, 사립학교법 개정, 주5일 근무제 등은 사회주의적 요구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 내 개혁 요구다. 그러니 한나라당은 체제 내 개혁조차 반대하는 수구 반동 정당이다.

 시장 원리에 반하는 모든 조처들을 "사회주의적"이라고 보는 한나라당은 정부 개입 자체가 사회주의라는 개념에 논거하고 있다. 그런 논리라면 국가 주도 경제 개발을 이끌었던 박정희·전두환 정부를 사회주의 정부라 해야 마땅하다. 또, 1930년대 거의 완벽한 수준의 국유화를 단행한 천황제 일본이나 나찌 독일이나, 전시 체제 하에서 국가 통제를 강화했던 영국·프랑스·미국 등의 나라들도 사회주의였을 게다. 2차대전 이후 한때 자본주의 틀 내에서 복지 국가 모델을 추구했던 서유럽 국가들도 모두 사회주의였다고 해야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두환 정부의 경제부총리였고 김영삼 정부의 국영기업 포항제철 회장이었던 김만제 자신이 사회주의자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아마 옛 소련이나 북한 같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겨냥했음 직하다. 그러나 이 나라들도 남한과 꼭 마찬가지로 착취와 억압이 존재했다.

 그러나 유약한 중도 우파 정권은 한나라당의 반사회주의 선동에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사학 재단의 재산권을 건드리는 부분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사립학교법 개정 요구는 사학 재단 이사장의 전횡을 법으로 규제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때 교육의 공공성 강화는 재단 이사장의 이윤 추구("재산권")와 흔히 충돌을 빚게 된다. 따라서 민주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공산이 커졌다.

 8월 6일 경제부총리 진념은 "제발 사회주의라는 말만은 빼달라"고 한나라당 김만제에게 애걸했다.(그와 김만제는 오래 전부터 친한 사이이다.) 진념은 국제 금융 자본가들의 압력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8월 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IMF가 "한국의 구조조정이 너무 느리다"며 신속한 구조조정 추진을 촉구했던 터라, 현 정부의 정책이 "사회주의적"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상당한 부담이었을 법하다.

 김대중 정부는 한나라당의 반사회주의 선동에 대해 좌파 속죄양 삼기로 대응했다. 8월 4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느닷없이 민주노동당 등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 있는 〈구국의 소리〉 게시물 삭제를 요구했다. 8월 9일에는 4명의 한총련 대의원을 강제 연행해 갔다. 또, 8·15 정치수 사면은 우익의 반발을 의식해 거의 고려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레드 콤플렉스

 우익의 반사회주의 선동이 겨누고 있는 진정한 목표물은 노동자 운동이다. 김대중 정부가 아래로부터 개혁 압력을 수용할 듯한 자세를 취하자마자 우익들은 공세를 강화했다. 그들은 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위해 싸워 온 노동자·민중 운동의 성과를 분쇄하려 한다.

 김만제는 사립학교법 개정 운동, 노동시간 단축 운동, 언론 개혁 운동 등이 모두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난한다. 전교조를 "가장 사회주의적인 집단"이라고 붉은 낙인을 찍었다. 노동조합의 정치 활동도 공격한다. "남북 문제하고 자기네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정말 노동자를 위한 노조인지 집단적인 정치 행사를 하는 것인지 불투명하다."

 그는 마가렛 새처나 레이건처럼 "불법 노동 활동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김대중에게 주문한다. 김대중 정부가 3년 6개월 동안 구속한 노동자 수(7월 31일 현재 616명)가 김영삼 정부 5년(507명)보다 더 많은데도, 우익들은 더 많은 제물을 바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우익들은 노동조합 운동의 아킬레스 건이라 할 수 있는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김대중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만인과 만인의 갈등'의 본질은 ... 좌·우의 이념적 대립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거들었다.(〈조선일보〉 7월 28일치.)

 홍세화 씨는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반사회주의 선동의 효과를 다음 같이 지적했다.

 "'사회주의적' 또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그[김만제]의 발언에 대해, 국가보안법이 엄존해 온 사회의 습속과 타성으로 관련자들은 일단 '그것과 무관하다'고 반응하게 되는데, 그런 중에 사회주의가 마치 사회악이나 된 양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것이다. 온갖 부패와 비리, 사회 불의,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 등 사회악을 없애라는 개혁 요구에 맞서기 위해 수구세력이 방패막이로 동원한 '사회주의'가 오히려 사회악이라는 합의를 이룬 듯한 모습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한겨레〉 8월 6일치.)

 한나라당은 자기 몸에 눌어붙어 있는 "부패와 비리, 사회 불의,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를 어떻게든 수호하려 한다. 이것은 노동자 운동을 분쇄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한나라당은 이를 위해 고전적 마녀사냥 신화를 노동자 운동에 덧씌우려 했다.

 김만제가 반사회주의 선동을 한 다음 날(8월 1일), 한나라당사는 붉게 물들었다. 6백여 명의 노동자·학생 들이 한나라당사 앞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며 빨간색 페인트가 담긴 계란 수십 개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 시위는 한나라당의 반동적 선동에 대한 즉각적 반감을 보여 준 것으로, 언론사 세무 조사 이후 가장 커다란 반우익 집회였다.

 그 때문에 김만제는 다음 날 "전교조를 사회주의적이라고 한 것은 부적절한 표현이었다."고 물러서야 했다. 그러나, 잠시 꼬리를 내렸을 뿐이다. 그는 여전히 "전교조가 과도하게 학교에 개입하는 것은 사회주의식"이라는 입장을 버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사악한 광적인 우파 정당이다. 이들은 개혁을 좌절시키고 노동자 운동의 성과를 분쇄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준동을 분쇄해야 한다.

 단, 그렇다고 해서 김대중과 손잡고 우익과 싸운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김대중은 언제든지 우익과 타협하면서 노동자 운동을 향해 탄압의 이빨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운동은 김대중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한나라당의 반동화 시도에 맞서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