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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노동의 미래를 바꿀까?
⑦ 노동조합 투사들은 기술 혁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세계 최대 유통 기업 아마존 독일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파업 ⓒ출처 독일통합서비스노조

신기술 도입에 대해 노동조합 투사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신기술 도입에 대한 흔히 볼 수 있는 한 가지 잘못된 태도는 그 덕분에 모든 사람들의 처지가 개선될 수 있다며 환영하는 것이다. 신기술을 도입하면 생산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노동이 더 쉬워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위험하고 고역 같은 종류의 노동이 줄어들고 노동시간도 단축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전망을 하는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 같은 기술 변화에 대해 ‘러다이트 식’ 반대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러다이트 운동은 단순한 기계 파괴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생산 방식에 의해 일자리가 없어진 노동자들이 일으킨 저항 운동으로, 영국 노동계급 운동의 발전에 거름이 된 투쟁이었다.

물론 기계 파괴가 효과적인 저항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계 도입이 노동자들의 여가를 늘리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실업과 빈곤이 노동계급 성원들을 한 세대 넘게 고통에 빠뜨렸다.

기술 혁신이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리라는 기대는 자본가들이 왜 신기술을 도입하는지에 관한 순진한 오해에 따른 것이다.

기술 혁신을 중립적인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자본가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이윤을 위해 혁신 기술을 도입한다. 기술 혁신의 효과로 노동자들이 정든 직장에서 내쫓기거나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에 내몰려 온 이유다.

1970년대 정보통신기술의 도입과 함께 “여가사회”에 대한 환상이 증대했지만, 40년 이상 지난 지금도 그런 달콤한 상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디지털화가 급진전된 선진 산업사회에서도 노동시간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또, 사용자들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전례없는 노동 성과의 수량화와 노동 통제 강화를 시도하려 한다. 가령 전파인식(RFID) 기기를 마켓 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데 사용한다. 심지어 전파인식 칩을 직원들의 신체에 이식하려는 기업들도 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노동 성과 수량화나 노동 통제 강화가 생산직 노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사무 전산화에 따라 사무직 노동자들도 대부분 생산직 노동자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두려움과 무력감

기술 혁신에 대한 또 다른 잘못된 태도는 그것의 (부정적) 효과를 과장하고 두려움을 부추기는 것이다. 기계가 노동자들을 모두 대체하고, 노동자들은 어쩔 도리 없이 이질화되고 약화된다면서 말이다. 이런 견해는 노동자들에게 무력감을 준다.

일부 노동자들이 경쟁력 없는 산업에서 내쫓기고, 신규 투자가 제공하는 일자리가 점점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 혁신으로 노동이 종말을 고하거나 노동계급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디지털화가 일부 직종의 일자리를 줄였지만, 컴퓨터 하드웨어나 스마트폰 생산, 디지털 교육 같은 분야에서는 일자리를 늘리기도 했다.

기술 혁신의 결과는 노동계급의 종말이 아니라 노동인구 구성의 지속적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로봇 자동화(기계화)가 진척되면 그 기계를 만들고 조작할 노동자가 필요할 뿐 아니라 그런 고급 기술을 가진 노동자를 양성할 교사들도 더 많이 필요해진다. 또, 그런 고급 노동 인력을 건사할 각종 돌봄 노동자들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노동자들은 최신 설비 도입에 따른 인력 감축 시도나 첨단 기술을 이용한 노동 통제 강화에 맞서 싸울 힘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기술 혁신의 결과 전통적인 생산적 노동자들이 소규모화되고 특권적 지위를 갖게 돼, 빈곤해진 나머지 노동자들과 괴리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급의 내부 이질성이 증대해 약화되는 한편, 생산적 노동자들은 더는 전과 같은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자본주의의 논리 때문에 생산적 노동자들은 특권층이 되지 못한다. 생산성 제고에 따른 수익성 위기에 직면하면 사용자들은 이를 상쇄하기 위해 노동조건과 생활수준을 하락시키려고 달려든다. 이런 공격에 직면한 노동자들은 설사 전보다 수가 줄었더라도 전과 마찬가지로 공장을 멈추고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기술 혁신에 대한 두려움과 무력감은 마치 그것이 하루아침에 도입되는 것 같은 착각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기술 도입의 속도를 과장해선 안 된다. 그것은 대개 수년에 걸쳐 이뤄지고, 기존 노동자들의 협조 없이 도입하거나 가동하기가 매우 어렵다. 노동자들에게는 신기술 도입의 조건을 둘러싸고 투쟁할 힘이 있다.

기계는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킬 잠재력이 있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쓰이면 더한 고역을 만든다

참여와 협력?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노동조합의 참여 하에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다이트처럼’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되고 “개입 전략”을 통해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사회 전반이 발전하는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경영참가(공동결정)나 사회적 대화가 강조되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에도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이를 통해 “이해관계자의 조정”으로 “노사 간 상생” 방향을 찾고 “다양한 위험을 최소화”하겠다고 한다.(‘〈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 논의 방향 및 의제’ 2018. 7. 20)

그러나 이런 논의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축소되거나 플랫폼 노동이 증가한다는 전망을 전제로, 이에 대한 보호나 복지 확충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기본소득은 그중 하나다.

바람직한 모델로 독일의 “노동 4.0”이 주목받기도 한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노동 배제적으로 추진한다면, 독일은 노동(존중과 포용)의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인더스트리 4.0”의 초기 국면부터 노동조합이 참여해 정부, 기업과 공동 논의를 해 왔다.

그러나 독일의 “노동 4.0”은 “인터스트리 4.0”이 추구하는 전환에 부합하는 노동 상(像)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필자가 이전 기사에서 다뤘듯이, “인터스트리 4.0”은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독일의 국가 정책으로, 2011년 독일 총리 메르켈이 정부 어젠다로 채택하면서 본격화됐다.

그래서 “노동 4.0”을 보면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분명히 지키려 하기보다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걸맞은 후퇴를 용인하는 모호한 타협들로 가득하다. 가령 경직된 노동 유형 대신 다양한 고용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거나, 탁월한 전문인력을 유인하기 위한 임금체계를 제시해야 한다거나, 노동시간 유연화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노사갈등이 벌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 등이 그런 사례다.

이런 조처들은 노사정 협력 속에서 추진된 하르츠 개혁을 통해 이미 노동조건이 상당히 악화된 독일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다.

해방 잠재력

노동조합 투사들은 신기술 도입에 따른 인력 감축이나 노동강도 강화, 유연화 도입에 일관되게 반대해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방어해야 한다.

사용자들은 로봇 자동화에 돈을 쏟아붓고도 인원을 감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필요하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미친 짓이라고 펄쩍 뛸 것이다. 그러나 인력을 줄이면, 신기술 도입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더 강도 높은 노동에 내몰릴 수 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자들도 생산성 향상에 협력해야 한다’면서 종종 타협안을 내놓는다. 자연 정원 축소 방식으로 노동자 수 줄이기나, 교대제 개편으로 작업량 늘리기를 허용하는 식이다. 세계적으로 이런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타협은 바닥을 향한 경쟁 악순환을 일으킬 뿐, 결코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사 협력을 통해 노동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신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공상에 가깝다. 자본가들이 기술 혁신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노동비용 절감). 오직 단호한 투쟁으로만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방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투쟁이 승리하더라도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제한됐을 때는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사용자들이 그것을 되돌리려고 끊임없이 공격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기술이 사용되고 통제되는 방식에 도전할 때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그것을 영속적 축복으로 만들 수는 없다.

물론 기술 혁신은 인류에게 엄청난 잠재력을 준다. 로봇은 여가와 창조 활동의 기회를 주고, 정보통신 기술은 생산의 민주적 계획과 조정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을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혁신 기술이 희망을 만들기보다는 실업의 두려움과 사회 불평등을 지속시킬 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썼다.

“기계 자체는 노동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시간을 연장시키며, 기계 자체는 노동을 경감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강도를 높이며, 기계 자체는 자연력에 대한 인간의 승리이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인간을 자연력의 노예로 만들며, 기계 자체는 생산자의 부를 증대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생산자를 빈민으로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생산 능력이 엄청나게 증대한 덕분에 인류는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하고 고역 같은 노동에서 해방될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자본주의 체제를 제거해야만 실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