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세 편의 글로 이뤄져 있다. ‘노동조합 속의 사회주의자들’(알렉스 캘리니코스), ‘현장 조합원과 노동조합 관료’(랠프 달링턴), ‘공산당, 사회주의노동자당, 현장 조합원 운동’(던컨 핼러스).

글쓴이들은 모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활동가들이(었)다. 자연히 이 글은 모두 사회주의자들의 노동조합 활동 경험을 다루고 방향을 제시한다.

각각의 글이 쓰여진 시기의 계급 세력 균형은 같지 않다.(당연히 현재 한국의 세력 균형과도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해당 시기 영국의 세력 관계를 고려하며 읽어야 한다. 토니 클리프가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 투쟁》(책갈피, 2014년)에서 지적했듯이, “노동조합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랠프 달링턴, 던컨 핼러스 지음, 이승민 옮김, 책갈피, 192쪽, 1만 원

세 글은 모두 영국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세 글은 모두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조합(운동)의 모순적 성격, 노동조합 관료층과 현장 조합원의 관계 등에 대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기초로 한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경험들을 그 안에서 찾아낼 수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글은 20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계급 세력 균형의 변화에 노조 상층 간부, 현장 조합원, 좌파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다룬다. 상승기(4장)와 패배기(5장)에 노동조합의 구실을 비교 평가하는 부분도 시사점을 준다.

이 글은 1996년에 국역 출간된 바 있지만, 이번에 완전히 새로 번역했다. 옮긴이가 정성 들여 꼼꼼하게 번역해 새로 읽는 기분이다.(나머지 두 글은 모두 이번에 처음 번역됐다.)

영국 공산당과 ‘범좌파 연합’

던컨 핼러스가 40여 년 전에 쓴 영국 공산당의 주장과 실천을 읽으면서 내내 한국의 노동자 운동과 좌파 정치 단체들을 떠올렸다.

던컨 핼러스는 공산당의 ‘범좌파 연합’ 구축 전략과 정면으로 논쟁한다. 던컨 핼러스는 ‘범좌파 연합’을 종파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공산당이 좌파 노조 지도자에게 (협력이 아니라) 의존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이런 실천은 근본에서 공산당이 노동자 권력을 폐기하면서 더는 계급투쟁에 기대지 않기 때문에 나타났다. 그 결과, 공산당은 전투적 현장 조합원 운동 건설을 반대하고 그 대신에 반독점 동맹,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적 길을 추구했다.

전투적 현장 조합원 운동 건설을 반대하고 택한 공산당의 이 방향은 또한 선전주의로 후퇴하는 길이기도 했다. 이를 ‘좌파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공산당이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현장 노동자 투쟁 지지를 “경제주의”와 “자발성주의”라고 비판했다고 던컨 핼러스는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 책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던컨 핼러스가 쓴 ‘경제주의란 무엇인가?’(《마르크스21》 14호, 2014년 여름)를 함께 읽으면 좋다.

한국에서도 2015년 세월호 1주기 투쟁 때 ‘노동자연대’가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요구를 내걸고 동시다발적으로 투쟁하면 세월호 투쟁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자, 많은 노동운동 좌파들이 이를 두고 ‘경제주의’라고 부적절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 글은 이런 주장의 문제점을 명료하게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현장 조합원들이 자신감이 부족해 노조 지도자들의 지도 없이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간부들이 투쟁을 제한적으로만 하려 할 때도 조직적으로 도전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에서 어떻게 활동해야 할까? 이것이 랠프 달링턴이 다룬 주제다.

그는 범좌파 연합과 분리 노조 운동을 먼저 다룬다. 전자의 문제점은 앞에서 언급했다. 후자는 노조 지도자들이 보인 동요와 배신, 현장 조합원이 이를 극복할 능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좌절한 전투적 활동가들이 제기한 것이다. 결정적 문제는 노조 관료주의에 맞서 싸우는 대신 그로부터 도망가 버리는 것이다.

랠프 달링턴은 ‘단결해 싸우자’(Unite the Resistance)의 경험을 분석한다. ‘단결해 싸우자’는 현장 조합원 조직이 아니다. 그러나 범좌파 조직도 아니다. 현장 조합원 활동가와 좌파 간부들을 한데 결집하는 공동전선의 기초를 놓으려는 “혼성체 조직”이다. 영국 공산당이 과거에 건설한 1920년대 소수파운동, 1960∼1970년대 노동조합 방어를 위한 연락위원회 경험을 현재 상황에 적용한 것이다. 이런 혼성체 조직은 노조 공식 기구와 현장 조합원 사이의 양방향 가교이다.

그래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능동적 개입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현장 조합원들의 운동을 효과적으로 만들 것이다.

100여 년에 걸친 영국의 경험을 한국적 맥락에 맞게 적용하는 것은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확실히 한국의 투사들에게 훌륭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

옮긴이는 “이 책이 노동자 운동의 승리를 위해 분투하는 활동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옮긴이가 건강을 되찾아 이런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