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성소수자 부하 군인을 성폭행한 해군 간부들이 11월 8일과 19일 고등군사법원 2심에서 1심을 깨고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이들은 각각 10년 형과 8년 형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거절 의사가] 외부적인 명시적 거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 “폭행 협박에 해당할 수 없다”는 점, “오랜 시간이 지나 피해자의 기억이 과장 왜곡됐을 가능성”을 이유로 들어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안희정 무죄 판결’에 이어 재판부가 또다시 성폭력을 매우 협소하게 규정해 피해 여성의 고통을 외면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판결 직후 군인권센터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은 바로 고등군사법원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해 군인의 여자친구가 해군 간부를 처벌해 달라고 올린 국민청원에는 십여일 만에 15만 명이 넘게 서명하는 등 공분이 일고 있다.

피해 군인은 2010년 같은 함대에서 근무했던 직속 상관에게 수 차례 성폭행 당했다. 이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돼 낙태까지 해야 했다. 또,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상관에게도 재차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악질적이게도 상관은 피해자가 성소수자임을 알고 ‘네가 남자를 잘 몰라서 그런다. 남자를 가르쳐 주겠다’고 하며 성폭행을 가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오랫동안 이 사실을 감추며 살았다.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 속에서, 특히 폐쇄적인 배 안에서 상관인 가해자와 함께 생활해야 하는 처지에서 이를 공개하고 문제 삼는 것이 매우 두려웠을 법하다.

피해자가 고민 끝에 2017년 6월 여군 수사관에게 알려 수사가 시작됐다. 2018년 초 벌어진 ‘미투 운동’에 힘입어 언론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반복 증언하고 최면 수사까지 받는 과정에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런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노력을 결국 짓밟았다.

군대 내 여군 대상 성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을 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4년 한 여성 대위가 직속 상관의 지속적인 성관계 요구와 성추행을 견디지 못하고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2017년 5월에도 해군 소속의 한 여성 대위가 상관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친구에게 알린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2014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여군 대상 성범죄 중 실형이 선고된 것은 겨우 5.6퍼센트다. 같은 해 일반 성범죄 사건 실형률 23퍼센트보다도 훨씬 낮다(노회찬 의원실).

성범죄 사건이 드러날 때마다 군 당국은 ‘성범죄 근절’을 말했지만, 이번처럼 드러난 가해자조차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서 성범죄를 없애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군사법원 판결에 군 지휘관이 개입하고 결국 ‘제 식구 감싸기’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군대가 동성애를 범죄시하는 군형법 92조의6(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적 접촉을 처벌할 수 있는 법) 폐지 요구에 대해서는 ‘성범죄 해결’ 운운하며 반대하는 것은 정말 위선적이기 짝이 없다.

피해 군인은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