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현재의 군사대국화를 위해 전쟁 범죄를 극구 부인한다 ⓒ출처 미 해군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 줬다. 일본 외무상 고노 다로는 이를 두고 “폭거이자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며 “한·일 간 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손상시켰다”고 강변했다.

11월 21일에는 한국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발표했다. 일본 총리 아베는 이렇게 말했다. “국제적 약속을 안 지키면 국가 간 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

질서와 약속? 기가 차는 뻔뻔함이다. 남의 나라를 강제 점령해 쑥대밭으로 만들고 전쟁과 학살을 일으켰던 당사국이 염치도 없다.

일본은 과거 식민 지배와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 묻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날까 봐 우려한다. 전범 기업이자 일본 최대 기업 중 하나인 미쓰비시가 강제징용과 근로정신대 건으로 소송에 걸려 있고 11월 29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같은 취지의 재판은 줄줄이 이어질 예정이다. 

주한 일본 대사는 11월 15일 한국 내 일본 기업들을 불러 모아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에 불복하면 한국 정부는 그 기업들의 국내 자산을 가압류할 수 있다. 쉽사리 그렇게 되지 못하게끔 방어 태세를 갖추려는 것이다.

한국 상황은 중국 등 다른 지역의 피해자들까지 고무할 수 있다. 일본 기업 일부는 그 여파를 줄이고 중국 피해자들을 달래려고 위로금을 뿌리고 있다. 이런 이중적 행태에 한국 여론은 더 뿔이 났다.

현재진행형

전쟁 범죄 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는 21세기 들어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군사대국화와 관련 있다. 일본은 중국·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밀집해 있는 아시아에서, 강력한 경제력에 걸맞은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자 한다.

이처럼 일본이 과거 제국의 영광을 다시 꿈꿀 수 있게 된 데는 미국 제국주의라는 더 큰 힘이 늘 작용했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에서 소련을 견제할 교두보로서 일본을 끌어들이려 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천황’을 비롯한 전범들마저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봐줬다. 아베와 미쓰비시 등이 덕분에 살아 남아 권력을 유지한 후손들이다. 

이제 미국은 몰락한 소련 대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지지한다. 

아베와 자민당은 방어적인 무력 행사만 허용하는 평화헌법(헌법 9조)을 없애려 끈질기게 시도하는 한편, 집권 내내 군사비를 증액해 왔다. 최근에는 2023년까지 군사비를 더한층 획기적으로 늘리고, 항공모함을 제작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 모든 것은 일본 그리고 미국이 또 다른 전쟁 범죄를 준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전쟁 범죄 문제가 단지 과거지사가 아닌 이유다. 그것은 오늘날의 제국주의 문제다.

한 예로, 최근 독도 주변에서 일련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11월 15일 일본 어선이 공동 관리 수역에서 한국 어선을 들이박았고, 20일에는 일본 어선의 조업 문제를 놓고 한국과 일본 해경이 대치했다. 이 날 일본 순시선 2척이 출동해 한국 경비함의 접근을 차단했다.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역사적 기록은 차고 넘치지만,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에서 분쟁을 일으켜 한국의 실효적 지배를 방해하려 한다.

독도 문제로 한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군사대국화를 위한 국내 지지를 모으고, 한국을 향해 제국주의적 압박을 가하려는 것이다.

바다에 둘러싸인 일본 제국주의는 전통적으로 제해권을 중시해 왔다. 먼 거리의 주변 섬을 영토로 확보하면, 그만큼 일본의 해상 세력권도 넓어질 수 있다. 일본이 센카쿠, 북방 4도, 독도 등 도서 영토 분쟁에 집착하는 까닭이다. 게다가 독도 문제는 센카쿠 문제에서 일본 측 논리인 “고유영토”론과도 맞닿아 있다.

일본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가 한창 논란인 때 한국 여야 의원단이 두 번에 걸쳐 독도를 방문하자 이를 명분(기회) 삼아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한국 정부

일본 언론들은 한국 정부의 최근 행태들이 “여론에 영합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실제로 친일·친미파 보수 정부조차 과거사 문제에서 대중의 눈치를 본다. 그만큼 식민지 강점 역사가 남긴 상흔이 또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까지나 ‘눈치 보기’에 불과했다는 게 더 중요하다. 1965년 박정희 정권이 한일협정으로 식민지 피해 청구권을 헐값의 경제 개발 자금과 맞바꾼 이래, 역대 한국 정부들은 시종일관 미국·일본 제국주의의 편에 섰다.

민주당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가 계승한다는 노무현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강제동원 피해 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다”는 견해를 고수했다(2005년 한일 회담 문서 공개 후속 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 문재인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자격으로 이 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했다. 

전통적으로 한국 지배계급은 한·미·일 동맹에 의존해 성장했고, 그 이해관계의 뿌리가 깊다. 제국주의 문제에서 민주당 정부의 실천이 보수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보잘것없었던 것은 어느 당이 집권하든 하나같이 지배계급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국주의 문제는 계급을 초월해 민족을 단결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민족 내 계급 분단선을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 등으로 일본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한·일 간 미래지향적 관계”를 훼손하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미·일 국가가 함께 그리는 “미래”에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제국주의적 갈등의 심화가 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와의 공조나 국가 간 외교에 의존해서는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모색할 수 없는 이유다.

오늘날의 제국주의를 잘 이해하고 당면 문제들과 접목하면서, 반제국주의적이고 아래로부터의 관점이 분명한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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