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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KTX 탈선 사고:
제어되지 않는 수익성 제일 정책이 안전을 탈선시키다

정권마다 인력 확충과 안전 투자 외면한 결과 ⓒ출처 강원소방본부

12월 8일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던 KTX 열차가 탈선했다. 천만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16명 경상으로 그쳤지만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오영식 철도공사 사장은 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선로전환기의 이상을 알려 주는 경보 장치가 설계 단계부터 잘못 설치돼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 사고 원인으로 추정된다. 국토교통부 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코레일 측에 긴급안전개선 권고를 내렸다. 경강선 전 구간을 점검하라는 것이다. 개통하고 1년 동안 사고가 없었던 것이 천운인 상황이다.

철도노조는 “평창 올림픽 개최일에 쫓긴 시급한 개통과 철도 상하 분리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근본에서 생명과 안전이 아니라 이윤을 우선하는 체제가 낳은 사고다.

이미 지난해 9월 13일에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무리하게 시험 운전을 강행하다가 열차 두 대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기관사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관련 기사: ‘경의중앙선 기관사 참사 사고: 기관사 목숨을 담보로 무책임한 시운전 강행한 책임자를 처벌하라’, 〈노동자 연대〉 223호) 안전보다 업무 효율화를 우선해 일어난 참사였다.

한 전기 노동자에 따르면, 다른 신설 노선에서도 개통 일정을 맞추려고 공사가 다 마무리되지 않았는데도 임시방편으로 때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철도시설공단과 철도공사는 이번 사고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다. 철도 시설 건설(철도시설공단)과 열차 운영·선로 유지 보수(철도공사)를 분리 운영하는 상하 분리 시스템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업무들은 유기적이고 협력적으로 통합 운영돼야 한다. 철도는 특히 그렇다. 그래야만 노동자와 승객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다. 그래서 철도노조는 진작에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의 통합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대선 후보 시절 ‘상하 통합’에 찬성했던 문재인은 취임 후 2년이 되도록 실질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민영화를 지지한 관료들이 최근 승진했다.

새로운 노선의 개통으로 철도공사가 담당하는 선로는 늘었지만 인력은 충원되지 않았다. 한 전기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1년에 두 번 하게 되어 있는 정밀 점검을 1년에 한 번 보통 점검으로 변경하고, 하루 한 번 도보 점검을 일주일에 한 번 도보 점검으로 변경했다.”

차량 정비 분야도 마찬가지다.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바람에 차량 정비 주기가 늘어났다. 비용을 절감한다고 최저가 입찰을 받으니 부품 관리가 제대로 안 됐다. 안정적인 열차 정비는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2013년부터 올해 7월까지 사흘에 한 번 꼴로 기관차·전동차가 고장났다.

선로 보수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직영과 하청 노동자들 간에 협업이 안 돼 선로 보수 시설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일들도 일어났다.

이런 일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계속됐다. 오영식 사장도 말로는 코레일과 SR(수서발 KTX 운영회사)을 통합하겠다고 했지만, 되레 후퇴했다. 최근에는 무리한 강제전보 발표로 노동자들이 반발했다. 마땅히 해야 할 개혁에 손도 안 댄 오 사장의 사퇴를 노조가 아쉬워할 까닭은 없다.

이윤보다 사람

이번에 사고가 난 KTX 열차에 탑승한 승무원은 단 3명뿐이었다. 이 중 1명만이 안전 담당자였다. 나머지 2명은 자회사 노동자라는 이유로 승무원임에도 안전 업무를 담당하지 못한다. 다른 KTX 열차들의 현실도 비슷하다.

자회사 소속 KTX 승무원 노동자들은 철도공사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요구해 왔다. 철도노사 전문가 협의체도 정규직 전환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던 문재인 정부는 이를 차갑게 외면했다.

문재인은 이번 사고에 대해 “승객의 안전보다 기관의 이윤과 성과를 앞세운 결과가 아닌지 철저히 살펴보기 바란다”고 했다. 어느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이 떠오른다고 하면 과언일까.

인력 감축과 외주화 흐름의 배경에는 역대 정부들의 민영화 드라이브가 놓여 있다. 2002년 김대중 정부는 철도·발전·가스를 민영화하려다가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노조 파업을 탄압하면서 철도를 공사로 전환하는 데까지(철도청→철도공사) 성공했다. 그러면서 수익성 위주의 철도 운영을 밀어붙였다. 노무현 정부의 상하 분리는 나중에 매각(민영화)을 용이하게 하려는 사전 포석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전임 민주당 정부들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영화를 위한 공사 경영 효율화의 명목으로 인력 대폭 감축하고 외주화를 확대해 왔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해 우파 정부들을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철도의 우선순위는 생명과 안전이 아니었다.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노동자들의 조건을 공격하면서 철도의 안전과 공공성은 약화돼 왔다.

그동안 철도 노동자들은 정부의 철도 민영화와 인력 감축, 외주화 확대, 노동강도 강화 등에 맞서 투쟁해 왔고 많은 지지를 받았다.

철도 공공성 강화와 안전 확보는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임금·노동조건 향상과 따로 갈 수 없다. 후퇴한 노동조건을 회복하려는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느 모로 보나 정당하다.

이번 사고가 더 큰 참사의 예고편이 될까 봐 불길하다. 정부는 말로만 “안전” 운운하지 말고 외주화 등 수익성 제일주의 정책을 당장 멈춰라. 또,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고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실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