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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을 드러낸 학생평의회

지난 5월 11일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2차 학생총회를 통해, 학생평의회 논쟁이 일단락됐다. 학생평의회 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이 발의한 회칙 개정안이 정족수 165명(위임 98명, 참여자 67명) 중 찬성 55표, 반대 6표, 기권 6표로 가결됐다.

그러나 이 결과가 평의회 준비모임이 추구하던 자율주의적 조직 원리가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직접민주주의’를 중요시한다는 준비모임이 총회 정족수의 대부분을 위임장으로 채운 것은 아이러니였다. 결국 300명이 넘는 재적 인원 중에서 50여 명만이 실제 찬성표를 던졌다.

게다가 이번에 통과된 회칙은 준비모임이 애초 추진하려던 자율주의적 조직 원리에 대한 중요한 후퇴였다.

예를 들면, 직접투표로 선출된 자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학생회 및 선거 조항 삭제”안이 철회됐다. 자율주의적 지향성을 잘 보여 주는 ‘학생평의회’라는 명칭도 삭제했다. 또한, 개정 회칙을 올 한 해만 적용된다는 단서도 달았다. 개정 회칙의 지속 여부는 연말에 총투표에 붙이기로 했다.

‘학생평의회’ 구상의 모순과 비현실성 때문에 설득력을 크게 잃어 준비모임은 자신들의 정치를 고수할 수 없다.

한편 총회 사전 행사로 열렸던 패널 토론에서, 준비모임은 마르크스의 계급이론을 옹호하는 세력들 때문에 학생사회의 다양성이 파괴된다고 주장했다.

성공회대에는 ‘다함께’ 같은 급진 좌파는 물론, 평의회 준비모임같은 자율주의, NGO, 여성주의, 생태근본주의, (학벌 반대) 교육운동 등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도 준비모임이 유독 마르크스주의나 계급 투쟁을 강조하는 급진 좌파들을 주되게 비판하는 것은 자신들의 투쟁 회피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실제 준비모임의 리더 중 한 사람은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는 ‘투쟁’이 아닌 ‘협상’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준비모임은 “참여와 직접민주주의 구현”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 이들에게 “참여와 직접민주주의 구현”은 MT나 축제 등 학생회의 비정치적 활동이라는 제한적 범위에서만 유의미하다.

이들은 등록금 인상이나 일방적인 학사행정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집단적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을 폄하한다. 그런 일은 모종의 ‘분위기에 휩쓸려 행동하는 부정적 의미의 동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사코 ‘동원’과 ‘참여’를 대립시키려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참여’가 뜻대로 되지 않자, “[학생들이] 무슨 생각이라도 해 보긴 했는가” 하며 학생들을 질타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이번 총회에서 준비모임의 구상이 상당히 후퇴하긴 했지만, 그들이 추구하던 자율주의적 운영 방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령 선출된 학생회장이 대표성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운동과 조직의 집중성을 해체하려는 시도는 개인들의 파편화를 심화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그러나, 준비모임은 ‘자발적 개인들’만으로는 현실 운동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음을 언뜻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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