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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씨 사망 뒤에도:
바뀐 게 없는 현실에 분노하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

김용균 씨 사망 일주일 뒤 2018년 12월 17일, 문재인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민주당 대표 이해찬은 12월 21일 태안의 김용균 씨 빈소에서 김용균 씨의 동료들을 “꼭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유가족들의 촉구에 “노동부와 산자부를 다시 만나 금년 내에 마무리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해가 바뀌고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그러나 김용균 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정부의 발전 민영화·외주화 정책은 변한 게 없다. 정규직 전환도 마찬가지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김용균 씨가 돌아가고 난 뒤에도 이전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대로다”라고 입을 모은다.

그간 정부·여당이 한 일이라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한 참 못 미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을 우파 야당과 타협하여 통과시킨 것이다.

정부와 언론들은 통과된 산안법 개정안을 ‘김용균 법’이라 부르지만, 정작 고(故) 김용균 씨를 포함해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하청 노동자일 뿐이다.

그래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통과된 산안법에 상당한 실망과 불만을 나타냈다.

“김용균 동지 부모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산안법이 28년 만에 바뀌긴 했어도, 특별히 우리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안법 개정안만 통과가 되면 다 잘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질적으로 우리에겐 하나도 적용되는 것이 없다.”

“외주화 금지와 정규직 전환이 법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크다”.

그런 점에서 노동계 지도부들이 산안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우파 정당과 기업주들은 강력하게 규탄한 반면 정부·여당에 대해서는 비판을 아낀 점은 곱씹어 볼 부분이다. 당시는 김용균 씨 사망에 대한 공분과 분노가 확대되고 있는 시점이었으므로, 정부·여당에 산안법 대폭 보완을 요구하며 김용균 씨 사망 항의 운동을 더욱 키웠다면 산안법을 노동자들에게 훨씬 유리하게 개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부·여당과 우파 야당들이 미미하나마 산안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저항이 확산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는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의 대응을 이렇게 꼬집었다. “산안법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각시키면서, 구체적인 내용들은 우리에게 제대로 전달을 안 했다.”

위험의 외주화 중단을 요구하는 고 김용균 씨의 동료들과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미진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

산안법 개정안 통과 직후, 문재인은 김용균 씨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김용균 씨 어머님은 “말로만 하는 약속, 말로만 하는 위로 필요 없다”며, 정규직 전환과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얘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아직 답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정부·여당 일각에서 ‘이번 기회에 발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말을 흘리며,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려 한다. 공공운수노조 소속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가 줄곧 제기해 온, (정규직 전환 논의를 위한) 발전 5사 통합 협의체 구성도 논의하자고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발전 외주화 중단과 정규직 전환 대책은 내놓고 있지 않다. 최근에,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요구에 대해 청와대와 민주당은 ‘정규직 전환은 시간이 필요하다’, ‘시기를 정확히 하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 하며 정규직 전환 여부와 시점에 대해 분명히 대답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이전처럼 시간을 끌며 불만을 누그러뜨리자는 심산인 듯하다.

신대원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지금껏 그래왔듯, 산자부와 노동부, 발전사가 서로 책임을 떠넘겨선 안 된다. [정규직 전환 논의 관련] 발전 5사 통합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하는데, 이전 입장[연료·환경설비 운전과 경상 정비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업무가 민간 고도의 전문성에 해당한다며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하자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의미 없다고 본다. 정부가 확실한 답을 주고 도장을 찍는 자리가 돼야 한다.”

그런데 발전 주무부처인 산자부는 ‘발전 정비 산업의 민간 경쟁 확대 정책’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 김용균 씨 사망 후에도 문재인은 2019년 경제 정책 방향을 설명하며 공공부문 민간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영화·외주화 확대와 직접고용 정규직화는 상충하는 데도 말이다.

그리고 정부가 민간위탁이라고 구분한 발전소 경상 정비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할지 여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는 공공부문 민간위탁에 대해선 ‘정규직 전환 3단계’로 설정하고는 2018년까지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노동부는 ‘민간위탁 제도 개선 검토 대상’을 발전소 경상 정비를 포함 5가지로 한정하고, 협의체를 구성하여 6개월간 연구용역과 노사 의견 수렴을 거쳐 민간위탁을 중단할지 말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전히 정규직 전환 여부도 불확실하고 시간을 끌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지겨울 만큼, 문재인 정부는 말만 무성하게 할 뿐 실질적으로 확정하고 즉각 이행하는 개혁 정책이 거의 없다.

설사 정규직 전환 발전 5사 통합 협의체가 구성된다고 해도, 정부 부처와 발전사가 서로 정규직 전환 책임을 회피하며 시간을 질질 끌며 누더기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의 전환 논의는 발전사의 전환 거부 방침에 막혀, 사실상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통합 협의체 구성도 노동자들이 요구해 온 연료·환경설비 운전과 경상 정비를 하나로 묶어서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두 업무를 분리해 논의하는 것은 노동자들 간 이간질과 분열을 획책하여 단결력을 약화시키려는 속셈이다. 정부와 사측은 현재 2단계 전환 대상인 연료·환경설비 운전부터 먼저 통합 협의체를 구성하(고 민간위탁으로 구분된 경상 정비 업무는 노동부의 ‘민간위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 하)자고 제안했는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는 분리된 통합 협의체 참가를 거부하고 운전과 정비를 함께 통합하여 협의체를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정부와 발전사는 전환 방식 관련, 자회사 전환을 고집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각 발전사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에게 자회사 전환을 강요한 바 있다. 당시 한국노총 소속 발전 5사의 기업별 노조(다수 노조)도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 발전 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는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투쟁에 연대하며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김용균 씨가 근무했던 한국발전기술이 남동발전의 자회사였다가 2014년에 태광실업에 매각됐듯, 발전사들은 쉽게 자회사를 팔아 치울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그간 “자회사 방식은 안 된다”고 천명해 왔다.

직접고용 정규직화

최근 산자부는 발전사 소속 자회사가 아닌 한전의 전문 자회사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를 흘리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발전사 별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는 한전의 자회사였던 한전산업개발(현재는 민간업체)로 일괄 통합(하여 한전 자회사화)하고, 경상 정비 업무는 한전KPS(한전 계열사)로 흡수하는 식으로 말이다. 김용균 씨 사망 뒤, 발전 기업별 노조와 한전KPS노조가 소속된 한국노총 공공산업노조연맹(공공노련)은 성명서에서 발전 산업의 “재공영화”가 필요하다며 위의 방안과 똑같은 내용을 제시했다.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은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이기도 하다.

일부에선, 각 발전사의 자회사보다는 전력산업과 전력 공기업들의 지배적 회사인 한전이 100퍼센트 출자한 전문 자회사가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에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한전의 전문 자회사라 할지라도, 고용과 처우 개선이 결코 안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이미 역대 정부들의 민영화·시장 개방 정책 속에서 전력 공기업들은 구조조정과 민간 매각이라는 광풍을 피할 수 없었다.

한전이 100퍼센트 출자한 공기업이었던 한전산업개발은 김대중 정권부터 추진된 전력산업 민영화 흐름 속에서 노무현 정권 초기인 2003년에 민영화(자유총연맹이 지분 51퍼센트 소유)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발전부문 외주화 확대 속에서, 발전소 정비를 대부분 수행하던 한전KPS의 점유율은 최근 46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운전과 정비 업무의 별도 전문 자회사 방안에 우려를 표하는 노동자들도 적잖다. 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전의 자회사였던 한전산업개발과 남동발전의 자회사였던 한국발전기술의 매각 경험을 언급하며 “시설에 대한 모든 책임과 권한은 원청[발전사]이 갖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전기를 만드는 일련의 발전 공정에서, 각 업무에 따라 여러 회사로 나뉘는 것은 노동자들의 업무 소통과 연계 측면에서, 하나로 더 크게 뭉쳐 대응할 수 있는 조직력 측면에서도 그 효과를 삭감시킬 것이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와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정부와 발전사에 발전 5개사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인천공항공사는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와의 기존 합의를 후퇴시키는 내용의 자회사 전환을 강행하고 있다. 사측은 기존 합의 내용의 구체적 이행을 1년 간 질질 끌다가 한국노총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를 압박·회유해 개악안 합의를 이끌어 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1호 사업장’에서 정규직 전환이 엉망인데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이에 인천공항지역지부는 농성을 벌이며 항의에 나섰다.

김용균 씨 사망 항의 운동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분노의 초점을 제공하고 있다. 곳곳에서 엉망진창이 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는 1월 12일(토) 4차 범국민 추모제 전에, 오후 3시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발전비정규노동자결의대회를 진행한다. 최성균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김용균 동지가 원하던 정규직 전환을 만드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다. 그것이 고인을 기리는 진정한 추모다.”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위험의 외주화 중단! 비정규직 이제 그만!
6차 범국민추모제

  • 시간: 2019년 1월 27일(일) 오후 3시
  • 장소: 광화문
  • 주최: 청년비정규직故김용균시민대책위

※ 6차 범국민추모제는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49일째가 되는 1월 27일(일)에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