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긴축을 추진한 지우마 호세프(왼쪽)과, 당시 미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출처 EBC

브라질 극우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집권을 논할 때, 추락한 브라질노동자당(PT)이 그간 했던 구실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좌파들은 이 문제를 회피하면서, 룰라와 그 후임인 지우마 호세프 집권 당시 일들을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고 우파의 잔혹함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좌파들이 브라질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에서의 좌파 정부 경험을 묘사할 때마다 보이는 공통된 문제다.

노동자당은 브라질 노동계급 투쟁 속에서 태어났지만, 룰라가 2002년 처음 당선하기 훨씬 전부터 변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노동자당이 노동자와 빈민을 위한 정책들을 추진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룰라 정부 1기 부통령은 거물 기업인이었고, [룰라가 임명한] 중앙은행 총재는 정통 보수주의 경제학자였다.

룰라는 민영화 중단과 재국유화 정책을 거부했다. 그는 국가부채 상환을 보장했고,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룰라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의 핵심에는 결코 도전하지 않았고, 사실상 그것을 적절히 관리하는 데에 전념했다. 노동자당은 사실상 국가 기구에 도전하지 않았다. 게다가, 의회정치 내 셈법에 몰두하느라 노동자당은 창당 초기부터 자본의 일부 부문, 브라질의 전통적 기득권층, 기회주의적인 우파 정당들과 손을 잡곤 했다.

동시에, 노동자당 그 자체가 매우 빠르게 온건해졌고 좌파는 주변화됐다. 노동자 출신 인사 다섯 명이 장관으로 입각하고, 노동자당 활동가들과 노동운동 활동가 수천 명이 정부 하급 관료가 됐다. 이를 두고 알프레도 사드-필류는 노동자당 정부가 “조직 좌파를 효과적으로 국유화했다”고 했다.

이는 정부와 국가에 대한 노동자들의 지지가 커졌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은 좌파와 노동계급 조직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노동자들이 노동자당, 특히 룰라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노동자당을 건설했던 투쟁과 민주적 전통이 노동자당 정부로는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자당이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주되게는 중국 경제의 급성장 때문에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노동자당은 이를 “보상 국가”* 식으로 활용해 ‘기아 제로’, ‘보우사 파밀리아’ 같은 복지 정책을 시행했다. [룰라 정부는] 전력망을 확충하고 고등 교육 기회를 확대했으며, 이후에는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몇몇 사회보장 연금 지급액을 늘리기도 했다. 브라질은 덜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

긴축 정책과 부패 스캔들

이 시기 경제 발전의 이면에서 원자재 생산과 수출 지향 농업에 대한 브라질 경제의 의존도가 더 커졌다. 이 때문에 환경 피해가 심각해지고 농촌 거주 빈민과 원주민 공동체의 삶이 심각하게 공격당했다. 또, 브라질은 세계 자본주의의 통제 하에 있는 원자재 생산국이라는 지위를 받아들이게 됐다.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가 2012년 브라질을 강타했을 때, 노동자당 정부는 계급적 선택을 해야 했다. 룰라 대통령의 후임인 호세프는 의회 내 다수인 우파 정당들, 악랄한 언론들, 뼛속까지 반동적인 사법부의 격렬한 공격에 부딪혀 결국 긴축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사실상 노동자당 정부가 자기 기반을 제 손으로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미 조직력이 약해지고 사기 저하된 좌파는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공세에 나설 때 제대로 대응하지도,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부패 스캔들은 노동자당의 급소를 찌른 쟁점이었다. 부패 혐의가 쏟아지듯 제기되면서 우파들은 기세등등해졌고 노동자당 지지층은 사기가 떨어졌다. 부패 스캔들의 핵심은 국영 에너지 기업 페트로브라스에 관한 것이었다. 노동자당이 국가 자산을 훔쳐 자기 자신을 살찌우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혐의가 제기됐다.

[처음에 검찰은] 몇몇 재계 인사들과 정치인들을 주도면밀하게 솎아 내 체포했는데, 이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을 검찰에 넘기고 사법 거래로 빠져나갔다. 수사망이 계속 넓어지면서 마침내 노동자당, 호세프, 룰라마저 삼켜 버렸다. [노동자당뿐 아니라] 다른 정당들도 스캔들에 연루됐고, 호세프 개인이 부패했다는 실질적 증거는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노동자당은 선거 승리와 정권 유지를 위해 여러 자본 부문들과 동맹을 맺으면서 부패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이제 노동자당은 언론의 지원을 받는 사법부와 경찰의 강공에 직면하게 됐다.

중앙은행, [정부의] 발전기구, 에너지·인프라·건설 부문 기업들이 수사선상에 올랐는데, 이것들은 바로 노동자당이 직접 건설하거나 주도적으로 뛰어들었던 부문들이었다. “세차 작전”이라고 불린 이 부패 수사를 통해 건설 대기업 오데브리시, 국영 에너지 기업 페트로브라스에서 뻗어 나와 노동자당에 이르는 방대한 뇌물·리베이트 네트워크가 드러났다.

경쟁 정당들, 세계화가 많이 진행된 부문의 자본들, 다국적 기업들, 외국 정부들이 수사를 배후에서 부채질했고, 우파 야당들은 의회에서 배후 공작을 벌였다.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이 치르게 하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경제적 공세와 인기를 잃은 노동자당을 거꾸러뜨리려는 우파의 정치적 공격이 결합됐던 것이다.

“세차 작전”으로 노동자당 정부는 와해됐고, 룰라는 감옥에 갇혀 차기 대선 출마 기회를 박탈당했다. 뒤이은 대선에서 우파, 특히 극우파는 엄청나게 강해진 반면 좌파는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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