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가 한 달이 넘게 차가운 냉동고에 누워 있다. 그는 2018년 12월 11일 새벽 태안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문재인 정부는 말로만 위로할 뿐 유가족과 고(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이하 시민대책위)의 핵심 요구들을 외면하고 있다.

김용균 씨의 유가족들은 “책임자를 처벌하고, 용균이의 동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때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밝혔다.

시민대책위는 1월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외주화 중단 및 발전소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권한 있고 독립적인 진상규명위원회 구성에 대해 1월 19일까지 답변할 것을 문재인에게 요구했다.

“대통령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묻습니다. 공기업에서 어떻게 이토록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김용균 씨 어머니)

ⓒ이미진

실제로, 김용균 씨의 죽음은 지난 20여 년간 지속돼 온 발전소 민영화·외주화 정책과 문재인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약속 파기에서 비롯한 ‘사회적 타살’이다. 체제의 냉혹한 이윤 경쟁 논리와 이를 수호해 온 역대 정부가 합작한 ‘구조적 살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한 일이라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을 기업주들도 수용할 만한 수준으로 마사지한 후 통과시킨 것이 전부다.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미미한 개정의 알리바이가 됐다.

문재인은 1월 8일 바뀐 산안법을 공포하면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법률”이라고 했는데, 가당찮다. 위험 작업의 외주화가 금지되지 않았고, 고(故) 김용균 씨를 포함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하청 노동자다. 그래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외주화 금지와 정규직 전환이 법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크다. 이런 법을 어찌 ‘김용균 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 문재인은 김용균 씨 유가족을 만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안법 통과 이전부터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제기한 요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만남 제안이 언론플레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정규직 전환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 있는 답변이 선행돼야만 문재인을 만나겠다고 한 것이다.

배신감

김용균 씨 사망 이후 문재인은 말로만 위로와 안타까움을 표현했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한 게 없다.

문재인은 1월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공공기관의 작업장 안전관리 개선 방안을 보고받고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또는 공공부문에서 이런 류의 안전사고(김용균 사망사고 ─ 청와대 대변인)로 아까운 생명을 해치는 일은 없도록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의 요구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은 다음 날 한국의 대자본가 13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문재인은 기업 경쟁력 확보에 “정부가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업주들은 신속한 규제 완화를 요구했고, 문재인과 경제부총리 홍남기는 정부 지원을 확약했다.

집권 1년 8개월간 문재인 정부는 말로는 개혁을 떠들었지만 실천에서는 대중의 진보적 개혁 염원을 배신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최저임금 1만 원, 의료 영리화 반대 공약 등을 줄줄이 파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문재인은 공공부문 민간 투자 확대, 규제 완화 추진 등 역대 정부들의 공공부문 민영화·외주화 정책을 유지·확산시키고 있다. 대중 운동이 박근혜를 쫓아낸 덕분에 집권한 정부가 박근혜의 친기업 정책들을 계승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우파가 세를 만회하고 있는 이유다.

문재인 자신이 친기업적 우경화를 노골화하고 있는데, 어떤 부처 장관과 공공기관장들이 노동을 ‘존중’할까?

현 정부에서도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는 발전 정비산업의 민간 경쟁 확대 정책을 철회하지 않았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것이 발전사 사장들이 정규직화를 거부해 온 배경이라고 한결같이 지적해 왔다. 김용균 씨 사망 항의 운동이 문재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한 이유다. 

김용균 씨 사망 항의 운동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 전개돼 온 비정규직 정규직화 전환 운동과 직접 잇닿아 있다 ⓒ이미진

김용균 씨의 죽음은 노동운동이 오랫동안 요구하며 투쟁해 온 비정규직 문제와 직결해 있다. 최근 3년간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며 싸웠는데, 대부분이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위시한 노동운동은 김용균 씨 사망 항의 운동의 최전선에서 주력 부대 구실을 해야 한다. 노동자들 자신의 문제다.

우파가 문재인의 지지율 하락을 이용해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노동운동이 문재인을 타깃 삼기를 주저하면 상황이 더 꼬일 수 있다. 노동계 지도부들이 지난해 연말 산안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우파 야당은 규탄하면서 정부·여당에 대해서는 비판을 누그러뜨렸는데, 이 과정에서 정의당·민중당이 제출한 더 나은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우파가 아닌 왼쪽의 대안이 있어야 문재인 개혁 포기에 대한 대중의 배신감과 환멸감이 사기저하가 아니라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청와대의 술수

정부에 “실질적 문제 해결”을 압박하려면, 노동자들이 대거 참가하는 투쟁이 중요하다. 1월 19일 전국노동자대회가 조합원 동원의 초점 구실을 해야 한다.

이 와중에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인상 자체를 제약할 기구 이원화 방안을 내놓았다.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의 2월 국회 통과 방침도 여전하다. 김용균 씨 사망 항의 운동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투쟁, 탄력근로제 확대 같은 노동조건 공격 반대 투쟁 등과 연결돼야 한다.

그런데 시민대책위가 대정부 요구 사항 및 향후 투쟁 계획을 발표하던 날(1월 11일)에, 민주노총 위원장이 청와대 정책수석을 만났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가가 결정될 수 있도록 청와대가 지원해 주는 모양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의 이런 태도는 문재인의 개혁 배신에 맞서 대정부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백해무익하다.

건설노조 전기노동자들처럼 투쟁 조직에 나서야 한다. 한국전력공사(한전)의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전기노동자 4000여 명은 한전의 배전 운영 예산 확충과 외주화 중단을 요구하며 1월 18일 하루 파업을 벌이고 한전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연다. 한전은 올해 배전 예산을 15퍼센트나 삭감했다고 한다. 이는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과 안전 사고 증가로 이어져, 제2의 김용균을 만들 수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경사노위에 참가하지 말고, 전국노동자대회를 그 위상에 걸맞게 조직하고 이를 발판 삼아 정부에 맞선 저항 구축에 실질적인 힘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