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필자가 2018년 11월에 열린 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이다. 이때 이후 정치 상황이 바뀌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특히 문재인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두드러진다. 


문재인 개혁의 성격과 딜레마

올해[2018년] 두드러진 것은 문재인 정부의 우선회였다. 특히 노동 정책과 친기업 규제 완화 문제에서 우선회가 두드러졌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대표 상품인 국민연금 개악을 꺼내 놓은 것도 주목할 일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되돌렸고, 노동시간 단축을 빌미로 근로기준법을 개악했다. 박근혜 표 노동 개악이었던 성과직무급도 살짝 바꿔서 추진하려고 한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도 변죽만 울리다가 사실상 중단됐다.

사실 지난 1년 반 동안 적폐 청산을 내세웠지만, 박근혜 노동 탄압의 원상 회복, 사법 농단 등 진정한 적폐 청산은 거의 시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도 도통 진척된 게 없다. 물론 적폐 청산 명목으로 박근혜, 이명박 등을 구속했다. 하지만 삼성 이재용, 롯데 신동빈 등은 모두 문재인 정부 하에서 풀려났고 오히려 국정 동반자 대접을 받고 있다. 정적 제거에 적폐 청산 구호만 이용한 셈이다.

우파 정권 때에도 승승장구한 경제관료들이나 부패 인사들도 중용됐다. 블랙리스트에 연루된 문화체육부 관리들이나 세월호와 연관된 해양수산부/해경 관리들은 손대지 않았다. 이들의 충성을 유도하려고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권 초 우파 정부 청산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한 높은 지지율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지나갔다. 예년 같으면 낙하산 인사라고 항의가 나올 법도 하건만, 오히려 박수를 받으며 정부 기관들의 요직을 자신들의 인사로 채웠다. 일부는 오히려 대중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문재인도 이런 기대를 의식해 촛불 정부 이미지 유지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지배계급 다수가 꺼리는 일들은 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국가 운영에 방해가 될 일들도 피했다. 집권 초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촛불의 진보 개혁 염원과 지배계급의 요구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미약한 약속마저 파기하며 급격히 우선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경제가 나빠진 상황 탓이 크다. 본질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성격 자체가 지배계급 기반 정당으로 자본주의 수호에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촛불 정부 코스프레는 오래갈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당은 공공연히 기업주들의 돈으로 선거를 치른다. 돈을 내는 사람들이 이 당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후보가 되고 선출직/임명직 공직자가 된다. 가령, 서민층이 모아 준 돈으로 대선을 치렀다는 노무현의 돼지저금통 신화는 왜곡과 과장임이 이미 노무현 집권기에 드러났다. 돼지저금통은 노무현 대선자금의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당시 노무현의 핵심 측근 안희정이 대선자금 비리를 대표해 구속됐었다.

민주당은 이제 독재 시절과 달리 야당일 때도 국가기관 안에 자신들의 공공연한 관료 기반을 갖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아래서도 전통적 국가관료와 장군 출신들이 경제와 행정, 국방 요직을 맡았고, 재벌 출신 인사들이 장관과 선출직 정치인으로 영입됐다. 김용환, 임창열, 김진표, 진대제, 홍석현 등등.

그래서 민주당이 집권해도 지배계급의 전통적 국가 전략이 바뀌지는 않는다.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과 추구, 국가재정 균형 노선과 증세나 적자재정 기피, 친기업 성장 노선, 노동계급 투쟁에 대한 두려움과 견제·적대, 군비 확대와 군국주의 우대 등등.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모두 앞뒤의 우파 정권들과 똑같은 친기업·반노동 성격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폈다.

다만 워낙 큰 대중 운동이 우파 정부를 중도 퇴진시키고, 그 운동에 맘에 없는 아부를 하면서 집권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부터 촛불 염원과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 제고 필요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 왔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성격이 이렇다는 것은 애초에 문재인 개혁의 성격이 노동계급의 진보 개혁 염원과 거리가 멀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재인 개혁은 한국 자본주의를 더 효율화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지배계급의 목표와 다르지 않다. 박근혜의 두 가지 핵심 추진 목표인 노동 개악과 규제 완화는 문재인 개혁이 공유하는 목표다. 한국의 자본가들이 경쟁력 강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 개악은 수출 경제인 한국 자본주의가 경쟁력을 높여 수익성을 회복하려면 인건비 절감이 꼭 필요하다는 목표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소득 주도 성장은 처음부터 립서비스에 가까웠다.

민주당은 세계적으로 “제3의 길”이라 불리는 노선을 전통적으로 추구해 왔다. 1990년대 영국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부, 미국의 클린턴 민주당 정부가 유행시킨 노선이다. 이를 당시에는 생산적 복지, 사회투자국가 등으로 불렀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적 포용국가”라고 부른다. 풀어 설명하면, 시장경제에 강조점이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 성장에 강조점이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혁신”(한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 육성)과 “공정(경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이오(의료 민영화) 등 신산업을 육성(투자 활성화)해야 하고, 중소기업도 경쟁에 끼게 해(경쟁 활성화)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다시 키우자는 것이다. 기업이 해고를 더 쉽게 하는 것도 “혁신”이다.

대신 국가가 실업보험이나 재취업 교육 지원 등을 늘리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실행해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주자는 것(“포용”)이다. 가령 기업 대신 국가가 교육 투자를 늘리는 것은 “혁신”과 “포용”의 결합이다. 복지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가 기업이 돈을 덜 들이고 양질의 노동력을 싸게 얻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자본주의의 생산성 “혁신”이 주된 것이고, “포용”은 그 사후 처리 같은 것이다. 그나마 경제주체들이 서로 포용하자는 것이니, 이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조(양보)하라는 것이다.

문재인의 정치 개혁도 비슷하다. 자신들이 한국 자본주의를 더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음을 지배계급에게 보여 주려는 것에 초점이 있다. 정치 구조를 시스템화(견제와 균형)해서 누가 집권해도 안정적인 통치를 하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민주당의 집권을 좀 더 용이하게 하고 지배계급의 제1선호 정당이 되려는 것이다.

이처럼 ‘개혁’ 주체와 ‘개혁’ 목표의 성격을 이해해야 촛불 염원과 기업주 사이의 어정쩡한 줄타기를 이해할 수 있다. 기업주를 만족시키면서 노동자들도 달래서 저항을 막아 보려는 것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패턴은 대체로 돈 안 들고 자기들에게도 필요한 개혁은 들어주고, 돈 드는 요구는 들어주는 시늉만 하다가(최저임금 인상, 정규직화) 멈추거나 되돌리는 식이었다(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자회사 정규직). 탈원전 공약처럼 정부가 직접 강행하기 난처한 것들은 사회적 대화로 유도해 왔다.

이렇게 보면, 문재인 정부가 상징적이고 ‘돈 안드는’ 적폐 청산 요구들 몇 개를 수용하지 않은  이유도 파악이 된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노조 인정,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진보당 의원 석방·사면, 공무원 해고자 복직 등은 그 상징성 때문에 지배자들이 불쾌해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것을 가장 걱정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문재인 개혁이 서 있는 자리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 준다.

이처럼 문재인 개혁은 결코 진보 개혁이나 노동계급이 마냥 지지할 만한 것이 아니다. 촛불 운동에 요령을 부려 올라 타 집권에 이용해 먹은 행태와 본질적으로 같다. 촛불의 진보 개혁 염원을 동력 삼아 정적을 제거하지만, 목표는 기성 정치체제 안정에 있다. 

그러나 문재인 집권의 배경이 된 대중운동은 그 정도로는 만족시키기 어려운, 훨씬 더 만만찮은 운동이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은 1987년 민중항쟁 같은 위대한 항쟁 수준에는 못 미쳤어도 지배자들이 단결해 지지했던 우파 정권을 임기 도중에 물러나게 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촉발에는 이전부터 시작된 조직 노동자들의 부분적인 사기 회복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가령 몇 년 동안 정체해 있던 민주노총의 조직 확대 추세는 “[촛불 이전인] 2016년부터 목도되고 있는 경향”(민주노총)이다. 그 해 이미 4만 명가량이 가입했다. 부분적으로 활성화되던 노동자 투쟁이 촛불 운동보다 선행 요인이었던 것이다.

촛불 운동의 사회적 구성도 노동계급 성원들이 다수였다. 초기에는 철도노조가 이끈 공공부문 파업이 선두에 있었고, 이들을 따라 미조직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광장에서 표출된 분노의 저변에 계급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크게 깔려 있었던 이유다.

촛불 운동에 이런 계급적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운동의 여파가 뒷심있게 작동했다. 즉, 우파 야당들이 1년 넘게 지리멸렬한 상태에 머물고, 반면에 노동계 진보정당의 득표와 당원이 늘고, 노동조합도 (특히 금속 제조업과 공공부문에서) 신규 조직화가 잘 됐다. 촛불 이후로도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10만 명 가까이 늘었다.

동시에 정치 문제에 새롭게 눈을 뜨고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초기 약속(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가졌던 것 같다. 기대감이 오히려 노조에 가입하고 정부에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행동하는 동기가 됐을 것이다. 지금은 그 기대감이 실망과 분노로 바뀌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전통적 선진 노동자들이 약간은 관망조로 있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문재인의 귀족노조 프레임이 실제로는 잘 먹히지 않는 것도 지난 2년 동안 분위기를 주도해 온 부문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등 신규 조직 노동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귀족노조 프레임은 조합원들보다는 여론을 중시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을 압박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문재인 개혁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문재인을 집권하게 한 동력이 된 사회 세력은 돈 안 드는 시늉상의 개혁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문재인도 그 정도는 알기에 이리저리 꼼수를 쓰지만, 촛불 대중은 그 수준을 넘어서 문재인이 자신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안 좋은 상황 속에서 집권했고, 실제로 1년 만에 각종 경제 지표들이 악화된 상황에서 문재인이 진보 개혁 염원층을 말이 아니라 결과로 만족시킬 수가 없다. 이제는 본색을 서서히 드러내며 사용자 편을 들어야 한다. 문재인이 한때 좌파적 노동운동 지도자였던 문성현을 끌어들이며 사회적 대화에 공을 들였지만 정작 그 기구가 출범할 즈음까지도 기대감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던 배경이다.

사실 전임 민주당 정부 모두 강도는 달라도 임기 도중 비슷한 딜레마를 겪었다. 집권 3년차 김대중 정부의 반전 카드는 남북 정상회담이었고, 노무현의 집권 2년차 카드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 청산이었다. 그나마 노무현은 시도에 그쳐 몰락이 더 극적이었다. 두 정부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고, 집권 후반기에는 존재감마저 약화된 상황에서 기업주와 우파의 총알받이처럼 그저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강행할 뿐이었다.

여권과 그 핵심 인사들이 문재인 개혁의 딜레마에 대처하는 방식은 좌파 노동단체, 노동조합, 그리고 이들의 지지를 받거나 연계된(또는 연계를 추구하는) 개혁파 정치인들에 대한 선제 공격이었다. 문재인이 당선한 다음 날부터 친문 세력은 민주노총, 노동자연대, 노동당, 변혁당 등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개혁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거나 그 동력을 약화시킬 위험 요소들을 미리 제거하려는 노력이었다. 그 과정에서 기대치 자체를 낮추는 효과도 기대했을 것이다. 기대감을 행동으로 옮기게 할 세력도 좌파들이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이제 진보 개혁 약속을 뒤집어야 할 뿐만 아니라 기대감 자체를 약화시켜야 한다. 민주노총에게 사회적 약자가 아니니(기득권의 일부이니) 양보에 나서라 말하고, 반재벌·반기득권 등을 내세워서 급부상했던 이재명을 필사적으로 제거하려고 시도한 배경이다.

반(反)기득권, 반(反)재벌, 반(反)부패 같은 포퓰리즘적 슬로건들 중 어떤 것은 활용돼야 하고 어떤 것들은 거둬들여야 한다. 유치원 비리 문제로 반부패 슬로건은 이어가지만 반재벌, 반기득권 슬로건은 슬슬 꼬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도 자본가 기반 정당일진대, 반부패조차도 일관되게 갈 수가 없다. 친문 진영의 신경질은 위기감의 표현인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이 노동 개악을 하고 노동운동을 공격할수록 지지율은 떨어진다. 레임덕을 막으려는 시도가 레임덕을 앞당기고 있다. 이는 애초에 문재인 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외줄타기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다가는 정권 자체가 약화돼 우파에게만 득이 된다”는 메시지가 먹혀야 한다. 그러나 이 시도 자체가 문재인 정부를 초라하게 만든다.

가령 문재인 정부는 우파의 위협을 상기시키고 공격할 의도로 기무사 문건과 양승태 대법원 사법 농단 건을 터뜨린 듯하다. 그러나 얽힌 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 또는 군부의 반발로 문재인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결국 기무사 수사는 대충 덮었다. 양승태 건은 법관들 스스로 일부 판사 탄핵을 결의했지만, 대중의 눈엔 그저 미봉책으로 보일 뿐이다.

진보 염원 지지층의 자신감 상태가 만만찮다. 우파 정권을 무너뜨린 운동으로 사기가 오른 사람들이다. 적폐 청산과 개혁 약속을 저버리면서도 그들을 지지층으로 붙잡아두기는 어렵다. 물론 실망이 곧바로 단호한 저항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이 당장 노동계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소심함을 이용해 정국 주도권을 유지해도, 조만간 친문 진영은 어느새 정권의 발밑이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지난해 문재인이 당선하면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보수본당과 민주당이 2번씩 10년을 교대로 집권하는 패턴이 일단 유지됐다.(박근혜의 중도 퇴진으로 최근 우파 집권 기간은 9년이다.) 1987년에서 10년 후 민주당이 집권해 일당국가가 해체되면서 시작된 패턴이다. 문재인 다음 정권을 민주당이 다시 잡아 그 패턴이 계속 유지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주류 양당이 선거로 번갈아 집권한 것은 한국에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자리잡아 왔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하에서 파시즘, 1987년 이전으로의 회귀, 유신체제로의 회귀 같은 담론들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들여다 볼 가치가 없는 과장된(민주당 집권을 도우려는) 담론이었다. 물론 두 우파 정부 모두 핵심 인사들의 과거 전력과 이데올로기는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짙은 향수를 풍겼다. 하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노동계급 운동의 성장을 배경으로 1987년 이후 새로 형성된 세력균형에 기초한 정치 구조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 점에서 두 정권 모두 자유(민주)주의 정권이었다.

물론 박근혜 세력이 퇴진 운동에 탱크를 출동시키는 일을 따져본 것은 사실이다. 오판해서 그 계획이 실행됐다면, 순식간에 혁명적 상황이 조성돼 오늘날 개혁적 운동의 성장이 사회혁명의 가능성과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게 아님을 보여 줬을 것이다.(물론 결과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 세력이 결국 그러한 선택을 하지 못했음도 봐야 한다. 거리 전투의 기세만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파업 같은 방식으로 벌일 반격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진정한 동력이 노동계급임을 봐야 한다. 아마 헌재의 만장일치 탄핵도 군부의 오판을 막으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그 결과, 박근혜는  공교롭게도 ‘87년 헌법’에 근거한 절차로 파면됐다.

지배계급이 양보한 결과, 운동이 평온하게 정리됐고 집권한 민주당은 “촛불 혁명 계승 정부” 운운할 수 있게 됐다. 노동단체들 중에는 정의당과 민주노총이 수혜(선거 득표 증가와 노조 가입 증가 등 합법 지표들의 성장)를 입었다. 이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지금 다시 안정된 정국의 유지에서 비중 있는 구실을 한다. 이처럼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이 성장한 노동계급의 운동과 타협하되, 그 나름의 방식으로 운동을 국가로 통합시키는 체제다(사회적 대화, 의회 진출 등).

이 체제에서 민주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맺는 관계가 다양한 종류의 노동단체들과 다름을 보여 준다(계급 분단). 거듭 강조하지만, 민주당은 명백히 지배계급의 정당이다.

물론 민주당이 한국 지배계급의 전통적 제1선호 정당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가는 냉전 제국주의가 강제한 분단과 전쟁, 좌익 분쇄 과정을 거치며 탄생·성장했다. 태생부터 우익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다.

이 역사성이 한국 국가의 특성에 강하게 새겨져 있다. 이 국가 아래서 지배계급이 형성·재편돼 왔다. 한국 지배계급이 전통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정당이 일당국가의 집권당을 계승한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인 역사적 배경이다.(박근혜 탄핵에 맞서 대한민국을 구하자며 시작한 우파 집회가 ‘태극기’ 집회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의 공식정치는 날카롭게 분열해 있는 것이 전통이고 특징이다. 주류 양당이 정책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데도 첨예하게 분열해 서로 발목 잡는 일종의 “비토크라시”(vetocracy,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미국의 공식정치를 묘사하며 2013년에 쓴 신조어로,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를 뜻한다.) 상태에 더 가깝다. 최근 여야 합의로 일부 노동 개악 법들이 통과됐는데도 두 당은 지금 사소한 꼬투리 하나라도 잡아서 상대를 위기로 빠뜨리려는 정쟁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 지배계급은 조직 노동계급의 저항에 걱정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수출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통합되는 길을 추구해 왔다. 이 때문에 한국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처지에 있다. 노동운동에 타협적으로 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소심하다. 쓸모 없어진 박근혜를 버리고 문재인을 선택했지만, 문재인의 온건한 개혁 시늉마저 노동자들의 기대를 부추겨서 행동을 고무할까 봐 걱정한다. 한국의 우파는 (남북 해빙 무드가 오래 지속되면) 억압적 반공주의 통치 수단들이 약화될까 봐 걱정한다.

이런 복합성들 때문에 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공식 정치 영역에서도 매우 불안정하고 치열한 갈등 속에서 발전해 왔다. 국가와 자본의 관계도 일관되지 못하고 (국가기관을 포함해) 내분이 일상화돼 있다. 여야 갈등이 거의 언제나 첨예한 배경이다.

그래서 보통 민주당이 집권한 시점은 투쟁이나 위기 때문에 지배계급이 전통적 집권당을 통해 안정적 통치를 유지하기 어려울 때다. 1997년 말과 지난해가 그랬다. 민주당 정부에게 강한 운동을 달래서 체제를 안정화시키고 지배계급의 필요들을 추구하라는 임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민주당도 지배계급이 가장 선호하는 정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한다. 현 민주당 대표 이해찬의 20년 집권론이 그런 것이다. 올해 임시정부 건립을 건국 원년으로 하는 건국 100주년 행사를 하려는 것은 민주당판 역사 바로 세우기다. 자신들에게 대한민국을 통치할 세력으로서 정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계급 기반에서 그 효용을 인정받아야 한다. 자신들이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과 위상을 더 잘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줘야 하는 것이다. 대중의 반(反)우파 정서를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 붙들어 놓으면서 말이다. 거의 가랑이 찢어지는 과제다. 여기에는 노동운동을 억제·자제시켜 경제의 생산성 제고에 협조하도록 만드는 데에 민주당이 더 유능함을 보여 주는 과제도 포함돼 있다.

이 점에서 1998년 이후 민주당 정부는 확실히 우파 정부보다 나은 점이 있음을 보여 줬다.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게 떠넘기는 노동 개악에서 역대 민주당 정부의 성적이 더 좋다. 신한국당 김영삼 정부가 도입하려다 민주노총의 대중파업에 일격을 받고 실패한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의 도입 등에 김대중 정부가 성공한 일,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키고 필수업무유지제 도입 등으로 공공부문 파업에 제약을 가하는 데에 성공한 일, 박근혜가 실패한 근로기준법 개악과 규제 완화들을 문재인 정부가 하나씩 성공시키고 있는 일 등.

민주당이 이런 일을 하는 데서 성공적이었던 데에는 노동운동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구실이 있었다. 그들의 사회적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한국 사회에 정치·경제적 변화와 그 동력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 자본주의가 줄곧 성장하면서 경제·사회적으로 노동계급과 그 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에 큰 변화가 생겼다. 경제 성장으로 인구 전체에서도, 경제활동 참가인구에서도 노동계급의 비중이 압도적이다(70~80%). 자본주의가 자라면서 그 무덤을 파는 사람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1987년에 노동계급 대중운동이 폭발적 쟁의 속에서 등장한 뒤로 30년 동안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자리잡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자리잡는 동안 노동조합과 조직된 노동자 규모는 늘어 왔다.

그 결과 노동자 운동도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자리잡고 일부가 국가 안으로 통합된 것이다. 노동조합 상층 상근간부층은 현장 노동자와 사용자들 사이의 협상을 전담하는 집단으로 자랐다. 노동조합 상근간부층과 연계된 각종 정치적 구조물들이 운동을 건설하는 기반도 되면서 동시에 노동자 투쟁이 체제와 도전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가로막는 구실도 한다. 이 세력에 기반한 노동계 진보정당들도 등장해 국회나 지자체 등 국가기관에 여럿 진출해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진보정당 후보가 200만 표나 득표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자리잡으면서 개혁주의도 성장했다는 것은 개혁주의의 성장이 현 체제에서 나름의 물질적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이는 운동 안에서 개혁주의의 성장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통념(상식)이 가진 헤게모니와도 연계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온갖 합법주의, 교섭과 협상을 통한 해결, 정치와 운동을 별개의 것으로 보기,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보다는 선거 대안을 중시하기, 정치를 지배계급과의 공존을 포함한 갈등 조정 기능으로 이해하기, 노동운동을 여러 다원적 운동의 하나로 취급하기 등등. 이런 현상을 잘 이해해야 하고, 이와 어떻게 맞설지도 알아야 한다(공동전선을 통한 개입과 정치투쟁, 이데올로기 투쟁).

한번 적응해 성장하는 개혁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안정을 추구한다. 또한 위로부터의 조직된 개혁주의는 목적의식적으로 혁명에 반대하고 체제 내 개혁을 추구한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제공하려는 개혁의 성패가 궁극으로 자본주의 경제 상태에 달려 있는 이유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졌을 때, 오히려 대중을 달래서 체제를 구하려고 한다.

1997년 1월 파업으로 일당국가에 결정타를 가한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IMF 경제 공황을 맞아 (파업으로 철회시켰던) 정리해고와 파견 근로 등을 도입하는 데에 김대중 정부와 합의했던 이유다. 2016년 말 촛불 운동이 가장 강력할 때, 철도노조 파업을 정리하려고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나섰던 이유도 부분적으로 이런 이해관계와 연결돼 있다. 국회 탄핵이 오히려 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여 운동이 계급투쟁의 도화선이 되지 않게 하려면, 국회 탄핵 전에 노동자 투쟁의 헤게모니가 억제돼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첫째, 오늘날 한국에서도 정치 논쟁의 잠복된 근본 프레임은 ‘개혁이냐, 혁명이냐’이다.

둘째, 국가형태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전환한 동력은 노동자 투쟁이다. 그 결과, 노동자 투쟁이 국가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반자본주의적 혁명 좌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하면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도 계급 지배 국가형태로서 지양해야 한다.

셋째, 경제 성장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노동계급 운동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동시에 운동 안에서 개혁주의 구조물들이 성장해 자리잡았다. 강력한 운동을 더 온건하고 실용적인 정치가 지배한다.

넷째, 이 때문에 혁명적 좌파는 대중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개혁주의와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방식을 잘 발전시켜야 한다. 동시에 전망과 영향력을 놓고 경쟁도 해야 한다.

다섯째, 지배계급의 분열은 투쟁에 유리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더 정치적이어야 하고, 참을성 있게 대중과 설득적으로 대화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이유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혁주의가 득세하면 좌파가 실제로 주변화되거나 또는 주변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앞서 말한 변화와 문제들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어떤 좌파들은 승리한 운동 이후 오히려 사기가 떨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한국에서 개혁주의의 헤게모니를 이해하려면 강력한 민중주의 전통의 영향력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의 진보 운동은 분단과 전쟁을 모태로 하는 냉전적 일당국가에 맞서서, 그리고 자본주의 저발전 조건에서 성장해 왔다.(전쟁으로 물리적으로 단절됐지만 그 이전에 민족해방운동의 전통도 있다.)

자립경제, 민주주의, 통일 또는 反독재 反외세, 反독점(재벌) 등이 운동들의 전통적 강령이었다. 주체로는 민중 연합이 상정됐다. 자유한국당과 그 전신들에 맞서 민주당과도 협력해 온 맥락이다. 심지어 우파 정부가 추진하던 개악들이 민주당 정부 아래서는 지도자들의 협조를 얻거나 저항 없이 통과되기도 할 지경이다.

당시의 과제들이 대부분 해결돼 한국이 경제적으로 꽤 발전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해 왔는데도 여전히 민중주의의 유산이 강하다. 이는 운동의 역사성 탓도 있을 테고, 지배계급이 여전히 옛 일당독재를 계승하는 정당을 제1선호정당으로 삼는 것과도 연계돼 있다. 혁명적 좌파가 (국가 탄압 등 여러 이유로) 취약해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근본 프레임이 “민중주의와 전투적 노동자주의”의 경쟁으로 비틀어진 탓이기도 하다.

민중주의 경향은 노동계급의 독자적 요구와 투쟁을 경시한다. 이들은 불가피한 전술로서가 아니라 단계 전략의 지향으로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등을 지향한다. 그럼에도 (정치가 무엇이든) 노동계 개혁주의 지도부층이 독자적 사회세력임을 무시해선 안 된다. 이 말은 민주당과 협력을 바라면서도 노동계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일관되지 않고 모호하거나 모순되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개혁 시늉도 포기할 게 분명한 문재인 3년차

진보진영 안에서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이명박·박근혜 집권 시절을 너무 끔찍하게 여기는 대중 정서를 활용해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우파의 재득세를 막을 수 있다고 대중을 설득해 왔다. 노동자 운동이 적당히 힘을 실어줘서 우파도 견제하고 문재인도 촛불 염원을 실현하도록 견인하자는 것이었다. 문재인 집권 후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다시 자리잡는 외양을 취하면서 좌파가 주변화되고 문재인 지지가 압도적인 것처럼 보였던 이유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오래 갈 수가 없었다. 경제·안보 위기 속에서 지배계급이 단결해서 강성 우익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지지했던 것이 불과 5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 상태가 좋지 않아 문재인의 개혁 시늉 자체가 오래 갈 수 없었다.

길게 보아,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안보 위기가 한국 정부의 어떤 정책 수단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트럼프의 행보를 보건대, 북·미 관계의 진전도 당장에 유력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은 문재인 개혁의 진정한 실체가 드러나게 할 것이다. 경제·안보 위기는 갈수록 공식 정치를 날카롭게 분열시킬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에게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청년들(노동자와 대학생 모두)은 문재인에게 채권자 마인드는 있어도 채무자 마인드는 별로 없었다. 이제 이 모순이 현실화되고 있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여러 조사를 종합해 보면, 문재인의 진보 개혁 약속 폐기가 지지율 하락 추세의 가장 큰 요인이다.

이 때문에 지지율이 하락하면, 문재인은 돈 잃은 도박꾼처럼 더 기업주들과의 협력에 매달릴 것이다. 우파 숙청, 즉 인적 적폐 청산도 중단될 것이다. 노동 개악은 더 강화될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불만을 자극할 것이다. 그래서 내년 운동은 활발할 것이다.

문재인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우파도 사기를 조금씩 회복하는 듯하다. 문재인의 우경화는 그 자체로 우파를 기쁘게 하는 일이다. 여기에 여권 내분 조짐까지 드러나고 있다. 봄만 해도 보수 대혁신을 말하던 한국당이 이제 보수 대통합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반(反)우파 정서가 강력하기 때문에 우파 회복 추세는 분명해도 과정에 우여곡절은 있을 것이다.

한국 공식정치의 분열상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불안정성, 우파의 강경함은 최근의 서구의 그림과는 당장은 다를 수 있다. 서구 공식정치에서는 주도적 중도 좌우파 당이 서로 신자유주의로 수렴되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이를 배경으로 좌우에서 포퓰리즘이 성장하고 있다.

결국 온건 개혁주의 세력의 문재인과의 협력(을 통해 개혁을 성취하겠다는) 전략은 실패로 입증되는 듯하다. 당연하다.

올 초만 해도 남북 화해와 민족 화합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대화 같은 걸 거스르기 어려워 보였다. 민주노총은 별 항의도 못 해보고 근로기준법 개악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당과 조직적 연계를 맺고 있는 한국노총의 상층 지도자 입에서 사회적 대화를 재고하자는 말도 나온다. 양 노총이 일주일 간격으로 연 노동자대회는 둘 다 지난해보다 더 늘어난 규모로 열렸고, 문재인 규탄·성토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그렇다고 문재인 개혁의 성공을 이용해 우파 재집권도 막고 개혁주의 세력도 성장하겠다는 개혁주의자들의 전략이 쉽게 바뀔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관성이 있다. 다만,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위상과 지지를 유지·확대하려고 대중 정서를 어느 정도는 수용해야 한다. 노동운동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문재인의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이지 그의 부하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러나 개혁주의답게 운동을 자기 제한적 방식으로 이끌려 할 것이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대체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또는 협력)와 정책 등에 대한 부분적 반대(또는 비판)를 결합시켜서 자신들 전략과 상황의 모순에 대처하려는 듯하다. 또는 한반도 평화 정책을 더 근본으로 보고 이를 지지하면서 부문적인 노동 정책에 대한 비판을 곁들일 수도 있다.

첫째, 문재인의 특정 정책만 반대하거나 경제관료 등의 문제로 축소시키기, 둘째, 내후년 총선으로 불만을 수렴하자는 식으로 당면 투쟁을 회피할 수 있다. 셋째, 파업 대신 거리 운동으로 운동의 잠재력을 제약하려 할 것이다. 넷째, 경제 위기가 더 심화되거나 하면, 위기 극복이나 남북 화해를 위해 국민적 단결에 협조하자고 할 것이다. 다섯째, 우파 재집권을 막으려면 문재인 정부를 과하게 비판하면 안 된다고도 할 것이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아직 문재인 정부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는 것은 문재인이 여전히 개혁주의 지도자들에 대해 설득과 반전을 꾀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이 개혁주의 지도자들을 포섭해 좌우 양극화를 여야 대결 프레임 안으로 흡수하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김대중은 개혁 배신과 부진, 부패로 욕먹던 3년차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고 노무현은 같은 이유로 고생하던 2년차 후반기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들고 나왔다.

문재인이 쥔 카드도 남북화해와 적폐청산 두 개이고, 둘 다 아직은 유효기간이 남았다. 내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이 포퓰리즘 카드가 될 수 있다. 가령 건국 100주년이나 반일 제스쳐, 또는 김정은 답방 등으로 민족주의 정서 고양하기 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과거사 청산, 연립정부나 개헌 등이 카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경제 위기, 문재인 개혁의 실체가 드러남, 우파의 사기 회복, 노동자들의 만만찮은 개혁 염원과 불만 등은 좌우 양극화라는 추세 자체를 억제하지 못할 것이다. 어정쩡한 중도파 정부가 양극화에 의해 압착되는 세계적 추세가 한국에서도 그다지 오래지 않아 나타날 수 있다. 계급간 세력균형은 전혀 비관적이지 않다. 좌파에게도 기회가 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간다. 운동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현재 몇몇 나라에서처럼) 우파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이다.

운동 안에서도 좌우 양극화가 벌어질 것이다. 경제 양극화가 촉진하는 정치 양극화에는 정치적 통합을 추구하는 반작용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양극화와 그 반작용이 갈등하면서 운동 안에서 좌우 분열을 낳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주의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대중이 문재인의 배신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해도 본격적인 행동으로 치고 나가기 전까지는, 문재인에 대한 개혁주의의 모호한 태도가 쉽게 안 바뀔 것이고 영향력도 어느 정도는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대중 정서가 기대에서 불만으로 전환하는 그 맥락 때문에 공백이 있을 것이고 좌파에게도 개입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개혁주의의 배신적 전략을 단지 폭로(문재인의 하수인이라는 식)만 한다고 현재 운동의 난점을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영향력 아래에 사람들을 방치하는 꼴이 될 것이다. 참을성을 갖고 대중을 설득해 더 큰 운동을 건설하려고 해야 한다. 내년에는 운동들이 더 활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주의 담론들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전선을 잘하는 게 특히 중요하다. 공동전선 전술은 특정 쟁점에서 특정 목표에 동의하는 세력이 모두 협력해 운동을 강력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운동 건설 과정은 곧 누구의 주장과 실천이 운동의 요구 달성에 더 효과적인지를 입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좌파에게는 공동전선을 구성하고 대중 투쟁을 건설하는 과정이 곧 문재인과의 거래나 협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을 통해서 바라는 개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점을 대중에게 설득하고 실천으로 입증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첫째, 대중의 불만과 분노, 부문의 행동들을 대정부 운동으로 일반화하는 문제가 과제로서 중요할 것이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부문주의만이 아니라 기층 노동자들의 자생적 부문주의와도 인내심을 갖고 끈기있게 싸워야(설득하고 논쟁해야) 한다.(부문주의와 파업 방식을 사용하는 경제투쟁을 구분해야 한다. 경제투쟁은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고 정치의식이 발전하는 경로로서 여전히 중요하다.)

둘째, 다양한 포퓰리즘 경향과 싸워야 한다. 때론 설득으로, 때론 투쟁으로. 최근의 개혁주의 득세에 발맞춘 민중주의 유행 추세에 맞서는 것은 곧 길게 보아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노동자 운동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정치 쟁점에서도 파업처럼 경제투쟁에서 주로 쓰이는 이윤 타격 방식이 효과적이다. 페미니즘의 정체성 정치에도 포퓰리즘 요소가 매우 강하다. 정체성 정치 경향은 정체성 분단을 위협하는 요소로 계급 정치를 꼽고 있기 때문에 견제도 강할 것이다. 여성 해방을 위한 훌륭한 분석과 제안, 전망을 내놓으면서도 그들의 약점과 딱부러지게 논쟁해야 한다.

요컨대, 탄탄한 정치적 원칙과 분석에 바탕해 전략과 전술을 구체적 실천에 잘 적용하는 기예가 갈수록 중요할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부단히 개입하고, 경험을 잘 일반화하는 토론들이 활성화돼야 한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불필요한 비관주의 없이 자신있게 개입해야 한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시도를 다룬 영화 ‘퍼스트맨’의 대사를 인용해 끝맺고자 한다. 달 착륙 실험 중 비행선이 폭발해 겨우 탈출한 주인공이 달을 가리키며 내뱉은 대사다. “여기서 실패해야, 저 위에서 실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