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 영국의 유럽연합(브렉시트) 탈퇴 방안에 대한 합의안이 하원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그리고 영국의 기성 정치는 혼란에 빠져 들었다.

2016년 국민투표로 결정된 브렉시트는 권력 엘리트층에 의해 삶이 파탄났다고 느낀 서민 대중의 항의 투표 결과였다.

독자들이 브렉시트의 의미와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본지의 지난 기사들을 재게재한다. 아래의 기사는 본지 179호에 처음 실렸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다.


6월 23일 영국인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기(‘브렉시트’)로 결정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제국주의에 이 결과는 큰 타격이었다. 지배력을 행사하려고 세계적으로 구축해 놓은 각종 동맹 관계를 헝클어뜨리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논설가 볼프강 뮌차우는 오는 10월 이탈리아에서 치러지는 개헌 국민투표에서 총리 마테오 렌치가 패배하면 이탈리아도 영국의 뒤를 따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영국 국민투표 결과는 세계 경제가 가뜩이나 취약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투표 몇 주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 인상을 미룬 것도 바로 세계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 줬다.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커다란 타격이다.(게다가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도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또한 보수당은 총선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둔 지 1년도 안 된 지금 당과 정부가 심각한 내분에 처했고, 캐머런은 총리직을 내려 놓게 됐다.

올해 2월 캐머런은 특유의 기회주의적 수완을 발휘해 EU에게서 양보를 받아냈다. 큰 틀에서 보면, ‘영국에서 활동하는 자본’의 이익을 도모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영국이 EU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핵심 국가이면서도 유로화나 EU 내 국경 검문소 폐쇄 같은 주요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유로존의 역외 금융 중심지로서 영국 금융계(일명 시티)의 지위를 보장하고, 영국 정부가 EU 출신 이민자들에게 한동안 복지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한 것이었다.

과거에 영국이 다른 유럽 강대국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이 산업 자본주의가 태동한 곳이었다는 점, 그 덕분에 세계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점 덕분이었다. 영국은 제국의 과잉 확장과 식민지 반란 때문에 1947년에 인도를 포기한 뒤에도 유럽으로 통합되기를 거부했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세계대전을 치르기 전에도 후에도 유럽합중국이라는 구상 자체는 지지하지만 영국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전후에 들어선 노동당 정부도 같은 노선을 따랐다. 영국은 1951년 유럽철강석탄공동체(ECSC) 출범으로 막 첫발을 뗀 유럽 통합과 거리를 뒀다. 전임 보수당 정부와 마찬가지로 노동당 정부는 영국 제국주의가 미국과 소련 다음가는 “제3위 세계 열강”이자 미국의 충직한 동반자로서 최상위 결정 과정에 참여하기를 바랐다.

1956년에 벌어진 두 가지 사건은 이 환상을 깨뜨렸다. 첫째, 영국과 프랑스가 가말 압델 나세르의 이집트 민족주의 정권을 전복하려고 한 것을 미국이 가로막은 것이다. 이후 유럽 국가들은 그때까지 남아 있던 식민지도 빠르게 잃었다. 둘째, 1957년 3월 ECSC 회원국 6개국이 로마조약을 체결해 유럽경제공동체(EEC)를 결성한 것이다. 이를 통해 대륙의 유럽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영국을 추월할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영국 지배자들은 쓰라린 심정으로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영국 자본주의는 EEC와 그 후신인 EU를 통해 상당히 성공적으로 재건됐다.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는 서로 다른 2개의 제국주의적 야심이 언제나 깃들어 있었다. 첫째, 미국의 야심이다.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 서부에 안정적이고 부유한 동맹이 있기를 바란다. 둘째, 유럽 열강의 야심이다. 유럽 제국주의 열강은 유럽이 통합되면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 둘째 야심과 관련해서 영국은 프랑스·독일과는 시각이 조금 다르다. 영국은 혼자서 미국과 유일무이한 관계를 맺은 동반자가 되고자 한다.

이런 영국의 태도에는 물질적 토대가 있다. 오늘날 영국 금융계는 외환 거래, 장외 파생상품과 국제 채권 시장, 은행 간 국제 거래의 압도적 중심지다. 노르필드는 영국 금융계가 국제 금융의 중심지가 된 것은 세계의 생산적 자본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2013년 영국의 해외직접투자 규모는 1조 8천8백50억 달러로 세계 2위였다. … 이는 미국의 해외직접투자 6조 3천5백억 달러의 30퍼센트에 불과한 규모이지만, 경제 규모 비례로 보면 영국의 해외직접투자 규모가 더 크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2011년에 발표한 세계 5백대 기업을 봐도 비슷한 현상을 알 수 있다. 그중 영국계 기업은 34개로 시장 가치는 총 2조 8백50억 달러였다. 미국(1백60개 기업, 9조 6천20억 달러) 다음가는 2위였다.”

영국 자본주의가 차지하는 이런 세계적 위상 때문에 영국은 EU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이다. 1992년 2월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영국이 유로화 적용 예외국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영국이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서 한발 떨어져 있음을 보여 줬고, 1992년 9월 16일 “검은 수요일”이 닥치자 영국의 파운드화는 유럽환율조정장치에서도 탈퇴했다.

영국이 고집스레 파운드화를 고집하고, 그럼으로써 로마조약 이후 가장 중요한 유럽 통합 프로젝트와 거리를 두고 있는데도, 영국 금융계가 유로존 금융의 수도가 됐다. 캐머런이 2월 협상으로 얻어낸 것은 바로 유럽의 금융적 수도라는 영국 금융계의 위상을 지켜낸 것일 뿐 아니라 영국이 EU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린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브렉시트라는 결과가 나오자 이 ‘당근’은 모두 사라졌고, 영국 금융계의 투자은행들은 유럽 시장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는 처지에 놓였다.

영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

EU에 남는 것이 영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이 그토록 확실하다면 어째서 보수당은 그 난리법석을 떨었을까? 그 이유는 “대처주의”와 “영국독립당”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보수당 내 대처주의 분파는 1990년대 보수당 정부 하에서도 지도부에 강하게 반기를 들었고, 블레어의 신노동당이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융합하는 것에도 (캐머런이나 오스본과 달리) 적대적이었다. 이런 대처주의자들에게 EU는 그들이 싫어하는 모든 것을 상징했고 자신들을 중앙무대에서 밀어낸 모든 원흉의 결집체였다. 그들은 영국이 EU에서 ‘대탈출’을 감행하면 과거의 ‘주권’을 되찾으리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지배와 종속의 관계는 직접 생산자한테서 추출하는 부불 잉여노동의 구체적 형태에 달려 있고 생산 그 자체에서 생겨나지만, 바로 그 관계가 다시금 생산에 영향을 끼친다.” 실로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정치라는 상부구조에서 벌어진 갈등이 경제라는 토대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례라 할 만하다.

그러므로 브렉시트는 영국 자본주의가 플랜B로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실시는 보수당이 변화를 겪으면서 내부에서 EU에 부정적인 입장은 커진 반면, 친EU 입장은 당내 고리타분한 늙은이들이나 옹호하는 것으로 위상이 낮아진 상황이 그 발단이었다.

영국독립당이 성장하는 데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에 대한 평범한 유권자들의 반감도 크게 작용했다. 이 요소는 국민투표 선거운동 기간에 모순된 효과를 냈다. 한편으로 국민투표는 젠체하는 보수당 상류층 인사들 사이의 다툼 정도로 비춰졌다. 이는 당연히 평범한 사람들의 투표 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기득권층이 브렉시트 반대 진영에 광범하게 결집했는데, 이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기득권층에게 한 방 먹이자는 심정으로 탈퇴표를 던지도록 하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대중 정서와 관련해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게 또 있다. 어느 여론조사를 보든 가난할수록 탈퇴표를 던질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불명예스럽게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정부가 노조에 적대적인 법을 아주 조금 완화해 주자 열정적으로 잔류 진영에 뛰어들었다.(반면 좌파가 이끄는 노조 3곳 ─ 철도기관사노조(ASLEF), 제과음식노조(BFAWU), 철도해운운수노조(RMT) ─ 은 그런 시류에 합류하지 않음으로써 명예를 지켰다.)

코빈이 모호한 입장을 취한 것은, 탈퇴표를 던지고자 한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을 영국독립당의 패라지나 보수당 탈퇴파 존슨에게 사실상 떠미는 효과가 냈다. 그럼에도 이번 투표 결과에는 이질적 요소가 많다는 것을 유념해서 봐야 한다. 많은 급진좌파와 자유주의 좌파는 인종차별적이고 이민자와 난민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탈퇴 진영의 주된 동력이고, 탈퇴 진영이 승리하면 보수당 내 대처주의자들이 득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민자 배척적 인종차별 선동의 영향을 받아 탈퇴표를 던진 사람이 꽤 많으리라는 것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국민투표에서는 경제·정치 엘리트에 대한 반감도 인종차별만큼이나 중요하게 작용했다. 지난 40년간의 신자유주의, 10년 가까이 지속되는 경제 위기, 정체되거나 떨어지는 임금, 해결되지 않는 실업 문제, 공공주택은 갈수록 악화되고 복지국가는 나날이 약해지는 현실이 엘리트 층에 대한 반감을 낳았다. EU를 신자유주의 화신이자 민주주의 침해 기구로 비판하는 것은 그런 정서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유럽의 급진좌파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다. 유럽의 많은 급진좌파는 코빈이 그랬듯이 여전히 “EU 안에 남아서 개혁하자”는 입장을 고수한다. 지난해 그리스 시리자 정부가 EU 핵심 국가들과 유럽중앙은행에 의해 굴욕을 겪는 것을 본 뒤에도 여전히 그렇다. 이런 입장은 단지 무능의 문제가 아니다. EU 반대 진영을 송두리째 인종차별주의자와 파시스트에게 넘겨 준다는 문제가 더 크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과연 브렉시트 투표 이후 영국 정부는 다시금 전열을 다듬고 원상복구될 수 있을 것인가? 분열된 현 정부는 앞으로 서로 충돌할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첫째, 새 총리를 구해야 한다. 이 과정은 보수당 내 갈등을 한층 더 악화시킬 공산이 크다. 둘째,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이는 영국 자본주의에게 EU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검은 수요일”은 하루로 끝났지만 파운드화와 영국 증시는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을 수 있다. 셋째, 의원들이 대부분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지배계급의 핵심부는 국민투표의 의미를 애써 흐리려 하는 가운데, 정부는 절반이 조금 넘는 의석을 가지고서 모든 전문가들이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EU와의 탈퇴 협상을 벌여야 한다.

영국은 EEC에 가입한 지 2년 뒤인 1975년 EEC에 계속 잔류할 것인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했다. 당시 찬반 진영 모두 인정한 것은 ‘유럽에 합류하지 않으면 광야에 남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투표 결과의 향방을 갈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두려움보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누적된 불만이 더 컸다. 그러나 탈퇴 진영 지도자들이 영국인들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똑같다. 그들은 영국 자본주의가 장차 어디로 가야 할지를 놓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국민투표를 거치면서 영국 사회에서 인종차별 물결이 더 강화됐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태가 온전하게 보수당, 영국독립당, 파시스트들의 바람대로 진행되지는 않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2015년 가을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난민에 대한 연대 물결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영국에서도 난민을 다방면으로 지원하는 기층 네트워크가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처럼 저변에 흐르는 인종차별 반대 정서는 운동으로 조직돼야 한다. 공동전선 ‘인종차별에 맞서 일어서자’(Stand Up To Racism)가 결성된 것은 그런 노력이 광범한 호응 속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인종차별에 맞서 일어서자’는 올해 3월 19일 인종차별 반대의 날 국제 행동을 건설했고, 6월 18일에는 정부 반대를 뚫고 프랑스 깔레의 난민촌에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했다. 이번 국민투표 과정에서 좌파적이고 국제주의적 관점으로 EU를 비판한 ‘렉시트’(영어 단어 ‘좌파’와 ‘탈퇴’의 합성어)가 결성된 것도 주요 성과 중 하나다. 렉시트가 중요한 것은 자체적으로 탈퇴표를 많이 끌어왔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급진좌파를 결집시켰기 때문이다.

계급적 관점에서 EU를 거부하고자 한 노동계급 사람들을 대변했다는 점에서 렉시트는 작았을지라도 중요한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노동당 좌파가 중심이 된 ‘다른 유럽은 가능하다’ 운동본부 지도자들이 계급 협력적으로 행동한 것과는 다른 대안을 보여 줬다.

영국뿐 아니라 어쩌면 전 세계 자본주의 앞에 험난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보수당은 이를 헤쳐 나가려고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공격을 할 것이 확실하다. 당장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고 더 많은 긴축을 추진할 수 있다. 당분간 영국 정치에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문제와 유럽과의 관계 같은 문제들도 계속해서 블랙홀 구실을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영국과 EU가 앞으로 맺을 관계를 결정하는 협상이 진행될 것이다. 그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한데, 단적으로 이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 자체를 쪼갤 수 있는 국민투표가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북아일랜드에서도 치러질 수 있다. 또 당장은 노동당 우파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인종차별과 긴축과 전쟁에 맞서고, 지난해 코빈의 당선으로 생겨난 정치적 공간을 지키기 위한 단결이 시급하다.

추천 책

브렉시트, 무엇이고 왜 세계적 쟁점인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외 지음, 김영익·김준효 엮음, 책갈피, 156쪽, 6,500원


이 글은 브렉시트 결과가 나온 직후인 6월 27일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에 발표된 ‘Brexit: a world-historic turn’을 요약한 것이다. 같은 글의 더 상세한 편역은 《마르크스21》 15호(구입문의: 도서출판 책갈피, 02-2268-7608)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