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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게재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찬반 논쟁:
유럽연합에 관한 여섯 가지 신화

1월 15일 영국의 유럽연합(브렉시트) 탈퇴 방안에 대한 합의안이 하원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그리고 영국의 기성 정치는 혼란에 빠져 들었다.

2016년 국민투표로 결정된 브렉시트는 권력 엘리트층에 의해 삶이 파탄났다고 느낀 서민 대중의 항의 투표 결과였다.

독자들이 브렉시트의 의미와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본지의 지난 기사들을 재게재한다. 아래의 기사는 본지 171호에 처음 실렸다.


[발행 당시 편집자 주] 6월 23일 영국에서 유럽연합 탈퇴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이 문제를 다루는 한국 언론의 기사가 수천 개에 이를 정도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는 국내 자본가들에게도 관심이 큰 쟁점이다. 유럽연합 탈퇴 문제는 영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공공서비스 등에 끼치는 영향이 큰 만큼 한국의 노동자들도 국제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주간신문 〈소셜리스트 워커〉의 기자 토마시 텡글리-에번스가 좌파들 사이에 널리 퍼진 유럽연합에 관한 신화들을 비판한다.

1.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노동자 권리가 약화되지 않을까?

영국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종종 악덕 사용자들에게서 영국 노동자들을 지켜주는 것은 유럽연합밖에 없다는 듯이 주장한다. 예를 들어, 영국노총(TUC) 프랜시스 오그래디 사무총장은 이렇게 주장했다. “유급휴가, 출산휴가, 비정규직에 대한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는 것은 유럽연합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권리를 쟁취한 것은 오그래디 등이 이끌고 있는 노동조합들이었다. 그런 노동조합들의 투쟁 덕분에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영국 법률의 규정 일부가 유럽연합의 기준보다 더 높다. 예를 들어 산업안전보건법(1974년)은 에드워드 히스의 보수당 정부를 무너뜨린 대중적 노동조합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유럽연합과 유로존은 노동자에게 불리한 기구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사진 조승진

보수당은 그동안 이 법을 맹렬히 공격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더 나은 규정’(Better Regulation)이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보호 조처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의 ‘더 나은 규정’은 “불필요한 행정적 부담을 없애는 것”이 기업들에 사활적으로 중요함을 분명히 했다. 유럽연합이 노동자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혹독한 긴축 조처를 그리스 같은 일부 나라들에만 강요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유럽연합은 사용자들을 위한 “네 가지 자유”를 기초로 설립됐다. 유럽연합은 사용자들에게 유럽연합 회원국 전역에서 기업 설립의 자유, 서비스 제공의 자유, 자본 이동의 자유, 노동자 고용의 자유를 준다. 유럽연합 창설의 기초가 된 1957년 로마조약은 “사회권”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 이후에도 유럽연합은 혹독한 실체를 가리려고 미미한 조처들을 도입했을 뿐이다.

유럽연합의 “지침”은 노동조건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노동조합 권리를 보호하는 것도 아니다. 영국의 부당해고 금지와 최저임금제는 유럽연합과 전혀 관계없이 도입된 것들이다.

노동자의 권리와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자유”가 충돌할 경우, 유럽연합은 항상 사용자들 편을 들었다.

2007년 핀란드의 해운업체 바이킹이 선박 일부의 국적을 이웃나라인 에스토니아로 바꾸려 했다. [핀란드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에스토니아 기준으로 임단협을 다시 체결해 비용을 절감하려 한 것이다. ─ 옮긴이] 유럽재판소(ECJ)는 사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며,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이 바이킹의 해외이전 “권리”를 제약하면 안 된다고 했다.

2007년 영국 항공조종사노조는 영국항공 사측이 병가와 질병수당 조건을 악화시키려는 것에 반대해 파업을 벌이려 했다. 사측은 이를 막기 위해 유럽연합 사법재판소의 판결을 이용했다.

각국 정부도 유럽연합도 노동자 권리를 공격한다. 노동자 투쟁만이 노동자 권리를 방어할 수 있다.

2. 유럽연합 덕분에 남녀 임금 평등과 유급휴가가 가능한 것 아닌가?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연합 회원국 중 임금 평등이 이뤄진 곳은 없다. 공식 통계를 보면, 영국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노동자 임금보다 평균 14퍼센트 적다.

영국에는 공식적으로는 임금 평등을 보장하는 임금평등법이 있다. 이 법은 유럽연합과 아무 관계없이 제정된 법이다. 1968년 런던 동부 대거넘에 있는 포드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양성 임금 평등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벌였고, 2년 뒤인 1970년 노동당 정부가 임금평등법을 제정했다.

이제 임금평등법의 내용은 대체로 평등법(2010)에 담겼고, 평등법은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뒤에도 존속할 것이다.

유럽연합 노동법의 많은 내용은 영국의 관련법에도 담겨 있고, 많은 경우 유럽연합의 것보다 더 강력하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 노동법은 유급휴가를 1년에 최소 4주로 규정하지만, 영국의 관련법은 5.6주로 규정한다.

출산휴가에 관한 유럽연합의 지침은 몇몇 차별 조처를 금지하며 모든 여성에게 14주의 출산휴가를 보장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영국의 부모들은 둘이 합쳐 최대 50주의 출산휴가를 쓸 수 있고, 그중 37주는 유급휴가이다.

영국 보수당 정부와 유럽연합은 둘 다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둘 다 노동자의 권리를 축소시키기 바란다는 뜻이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든 아니든, 사용자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공격할 것이다.

유럽연합 회원국에 속해 있든 아니든 사용자와 지배자들은 보통 사람들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인종차별에 맞서는 열쇠는 투쟁이다.

3. 유럽연합이 없으면 인종차별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유럽연합을 인종차별에 맞서는 방벽으로 본다. 그러나 유럽연합 지도자들은 인종차별적 법률들을 이용해 절박한 처지의 난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그리고 무슬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유럽연합이 각국에 강요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인종차별과 파시스트들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유럽연합과 그 기구들은 그리스에 거듭거듭 긴축을 요구했고, 이는 그리스의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와 절망을 낳았다. 그 덕분에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새벽당이 이 분노와 절망을 난민들에게 돌리며 세력을 키울 기회를 얻었다.

마찬가지로, 유럽연합은 헝가리에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요구했고, 그 덕에 파시스트 정당인 요빅당이 성장할 발판이 마련됐다.

영국이 유럽연합에 남아 있느냐 탈퇴하느냐는 인종차별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1973년 영국이 유럽연합의 전신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을 때, 영국에서는 나치인 국민전선과 인종차별 사상이 성장했다. 반나치동맹의 운동, 흑인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의 공동 투쟁이 국민전선과 인종차별 사상을 물러서게 했다.

현재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인데, 그렇다고 해서 인종차별이 부상하는 것을 막은 것도 아니다.

인종차별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무슬림과 이주노동자 등을 단결시키고 난민에 연대하는 강력한 운동이다.

4. 그래도 유럽연합 덕분에 인권이 보장되는 것 아닌가?

영국은 1953년부터 유럽인권재판소를 인정한다. 인권법 제정으로 유럽인권재판소 판결은 영국에도 적용된다. 이 인권법은 영국의 법률이고, 유럽연합과는 전혀 상관없는 법률이다. 유럽인권재판소도 유럽평의회[CoE, 유럽연합 의회와는 별개 기구임]의 기구로서 유럽연합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구이다. 유럽평의회에는 47개국이 가입해 있고 그중 거의 절반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다.

그 외의 인권법들은 다른 국제조약 가입으로 제정된 것이다.

영국은 난민협약, 세계인권선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국제노동기구 등에 가입돼 있다. 이것들 중 어느 것도 유럽연합과 관계가 없다.

[13세기]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이래 영국에서 투쟁을 통해 쟁취된 인권 보장 조처들도 유럽연합과 관계가 없다.

물론 작업장 내 차별 금지 등 몇몇 조처는 유럽연합 가입을 통해 생겨났다. 그러나 그 조처들은 이제 영국의 법률에 들어가 있고,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다고 해서 폐지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조처들의 진짜 문제는 정부가 그 조처들을 회피하며 무시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에 남아 있든 탈퇴하든, 위에서 말한 권리들은 투쟁으로만 지킬 수 있다.

5.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이민자들이 모두 쫓겨나는 것 아닐까?

영국 사용자들은 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다고 해도 그 이민자들이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이민자들이 복지를 축낸다는 과장이 있지만, 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받는 실업수당은 전체의 2.5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들은 대부분 취직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대거 추방한다거나 비자 발급을 더 까다롭게 하면 경제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래서 현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이 크다.

영국을 여행하는 사람의 다수는 유럽인들이고, 영국 관광시장의 사용자들은 위기에 빠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보수당도 2백만 명에 이르는 영국 내 이민자들을 다른 유럽 나라들로 쫓아내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무슨 변화가 있을 것인가?

영국 내 이민자의 거의 3분의 2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나라 출신자들이고, 그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유럽연합 회원국 출신 이민자들의 경우,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영국은 노르웨이·아이슬란드·스위스처럼, 유럽연합 비회원국이지만 유럽연합의 ‘내부 시장’에 참여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둘째,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새 협약에 나설 수 있다. 그 형태는 이론상 매우 다양하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은 지금도 혹독한 제약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브라질 사람들은 비자 없이 영국을 여행할 수 있고,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들은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 출신 이민자들보다 더 많은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보수당과 노동당 우파가 이민자들의 복지혜택과 공공서비스 이용 권리를 제약하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맞서 싸워야 할 일이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그런 차별의 존속을 유럽연합 잔류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

캐머런은 비유럽 출신 이민자에 대한 공격을 추진하면서 4월에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하고 이민법도 악독하게 고치려 한다.

〈소셜리스트 워커〉는 이민 규제를 모두 철폐하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유럽연합은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6. 유럽연합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거기에 남아서 개혁해야 하지 않을까?

유럽연합 기구들은 비민주적으로 설계돼 있다. 유럽연합 내에서 무언가를 개혁하는 일은 일국 차원에서 개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시장을 강화하는 조처들은 아예 유럽연합 헌법에 아로새겨져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에 기반을 둔 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런 조처들은 유럽연합의 28개 회원국들 사이에 맺어진 조약의 일부다. 그 조처들을 개혁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완전히 걷어내려면 28개 회원국들 모두의 합의가 필요하다.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의 조처 중 가장 논란이 많은 것 중 하나는 이미 유럽연합 헌법에 들어가 있다.

국가보조금 지급, 규제, 심지어 국가보건서비스(NHS) 같은 것들에 대해 공공적 “독점”이라며 사기업들이 이의제기를 할 수 있고 선출되지 않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유럽의회는 실질적 권력이 거의 없다. 3월에 유럽의회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바뀐 것은 없었다.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회담인 유럽이사회가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 유럽이사회에서는 몇몇 결정은 다수결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 변화를 가하려면 만장일치를 얻어야 한다.

영국 지배자들은 이미 국내에서도 진보적 개혁에 맞서 격렬하게 싸운다. 유럽연합을 개혁하려 할 때 그 저항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추천 책

브렉시트, 무엇이고 왜 세계적 쟁점인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외 지음, 김영익·김준효 엮음, 책갈피, 156쪽, 6,500원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497호
주제
국제
유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