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예상과 달리 양승태가 구속돼 해당 부분을 수정했다. 글의 전체 취지에는 변함이 없다.


검찰이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추가 기소하면서 민주당 정치인들도 사법 농단의 일부였음이 드러났다.

검찰의 임종헌 추가 기소에는 민주당의 서영교(현역 의원, 1986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와 전병헌(전 의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 자유한국당의 이군현·노철래(전 의원) 등의 재판 청탁 건이 포함됐다.

이로써 양승태 치하 대법원의 사법 농단 실체가 더 분명해졌다. 법원의 위상과 권력 강화를 위해 법원이 조직적으로 입법 로비를 한 집단 범죄 행위인 것이다. 재판이 거래 대상이었다.

구속된 전직 대법원장 서민층을 우롱하고 박해하는 판결을 거래한 이 범죄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동안 이 사건은 흔히 박근혜 정부가 삼권 분립과 사법부의 독자성을 파괴한 권력 농단 범죄의 일부로만 여겨졌다.

물론 박근혜 처지에선 그렇게 활용한 측면이 있다. 양승태가 그와 호흡을 맞추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각별히 우파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지가 줄곧 주장해 왔듯이, 사법 농단은 법원 자체의 권력 강화를 위해 재판(대부분 우익적인 판결)을 거래 수단 삼아 권력 기관 내 로비를 한 범죄다.

법원의 최고위 인사들은 국가기관과 지배계급 안에서 법원의 위상을 높이려고 상고 법원을 추진했다. 상고 법원 설립은 3심제에서 3심을 맡는 법원을 현 대법원 말고 별도로 신설하자는 것이다. 대법관(장관급) 위상의 법관직을 늘리고, 기존 대법원은 더한층 높여 상징적인 재판만 수행하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양승태는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의 권력도 더 강화될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국회가 입법을 해야 한다. 당시 여당 설득에는 박근혜 청와대와의 거래와 개별 거래를 통해, 야당인 민주당에게는 찬성론의 주요 거점이 될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집중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계급적 특권을 유지해 주는 우파적 판결을 주거래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임종헌은 이 과정을 실무적으로 총괄했다. 이번에 밝혀진 인물들도 모두 국회 로비에 필요한 인물들이었다.

민주당 서영교, 한국당 노철래는 19대 국회에서 법원·검찰을 다루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다. 노철래는 골수 친박이기도 했다. 전병헌과 이군현은 로비 당시 각각 민주당 원내대표·최고위원과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었던 3선 중진 의원이었다. 국회 로비를 위해서는 중요한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전병헌은 특히 문재인 정부의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청와대의 대 국회 업무를 주도)을 맡았는데, 당시에 이미 민주당 내 친문 실력자였다.

이 모든 청탁이 임종헌으로 집중됐고, 임종헌을 거쳐 각 재판에 영향을 직접 미친 듯하다. 서영교는 지역구 측근 아들의 성추행 사건을 최소화시켰고, 전병헌은 정치자금법 위반에 걸린 자기 보좌관의 형량을 낮췄다.

서영교의 경우, 임종헌이 재판이 열린 서울북부지방법원 법원장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 그 뒤 북부 법원장은 해당 재판 판사에게 “상고법원이 꼭 필요하니, 미안하지만 들어 줘야겠다”며 서영교의 청탁을 전달(이행 지시)했다. 당시 서영교는 상고법원 설립 찬성파였는데, 유보 쪽으로 돌아서고 있었다고 한다.

전병헌의 경우는 이렇다. 지난해 폭로된 문건들에도 당시 국회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전해철을 설득하기 위해 “결정적 영향력 발휘할 수 있다고 자임하는 전병헌 의원 통한 우회 설득[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나온다(“9월 이후 입법 추진 전략”). 당시 전해철은 상고법원 설립 강경 반대파였다. 또 다른 문건에는 전해철이 강경 반대 입장인 이유가 당시 친노 좌장인 한명숙의 뇌물 사건에서 유죄가 나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담겨 있다.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이 내렸다.

검찰이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새누리당 한 의원은 의원직 박탈 위협에 직면한 이군현과 노철래를 도와 달라고 임종헌에게 청탁을 했고, 사실상 법률 자문을 받았다. 결과를 보자면, 노철래는 2016년 총선에서 낙선해 쓸모가 없어지자 그대로 유죄 실형을 받았다. 이군현은 박근혜가 쫓겨나고 정권이 바뀐 뒤에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의원직을 잃었다.

한편, 임종헌은 같은 시기에 양승태 대법원이 쫓아낸 서기호 전 판사(당시 정의당 의원)의 징계부당 인정 판결에 적극 개입해 징계의 정당성을 받아 내려 했다. 서기호 전 의원도 당시 법사위 소속으로 상고 법원 설립에 반대하고 있었다. 결국 징계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났다.

사법 농단의 실체가 다시 한 번 분명해지면서, 왜 지난해 문재인이 임명한 김명수 하의 대법원도, 문재인 정부의 검찰도, 민주당이 제1당인 국회도 모두 사법 적폐 척결에 소홀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서기호 전 의원은 여러 매체에서 국회의원들의 청탁이 일종의 관행이었다고 밝혔다. 검찰·법원 모두 여러 명목으로 국회에 검사와 판사를 파견해 주류 정치권 동향 파악과 상호간 청탁의 거래 루트로 삼아 온 것이다. 청탁을 하는 서영교가 도리어 판사를 자기 방으로 부른 것이나, 로비를 하러 온 임종헌에게 오히려 전병헌이 청탁을 한 것이 그 방증이다.

최근 한국당은 손혜원이 대통령 부인 김정숙 씨의 중·고교 동창이라며 “초권력형 스캔들”이라고 공세를 편다. 그러나 이와 재판 거래 문제를 비교하면, 거의 융단 폭격과 딱총 경고 사격 수준이다.

그런데도 공세의 수준이 이토록 다른 것은 지배계급 네트워크에 만연한 관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양승태 치하 대법원의 사법 농단은 일부 개인들의 일탈이 아니라 지배계급 내 뿌리 깊은 유착 관행이 예외적으로 일부 폭로된 사건인 것이다. 가진 자들의 사법 농단과 굳어진 관행은 서민층 사람들에게 절망만 더해줄 뿐이다.

삼권 분립 같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강화가 노동자와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재판 거래가 일상적 관행이라 함은, 달리 말하면, 가끔 서민들에게 유리하게 판결이 나오는 게 예외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예외는 노동자와 천대받는 사람들의 대규모 저항으로 형성된 유리한 세력균형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법원의 수장이었던 양승태가 재판을 받기도 전에 법원에 의해 구속된 기쁜 일도 그 사례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