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4년 자일스 자이 웅파콘(Giles Ji Ungpakorn, 1953년생) 당시 출라롱콘 대학교 정치학 교수가 한국 방문 중에 한 강연이다. 그는 타이의 혁명적 좌파 단체인 ‘좌회전’의 가장 중요한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2009년 타이 형법 제112조 국왕모독죄 위반으로 구속을 앞두고 해외로 도피했다.

NGO가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NGO를 개량주의(이하 개혁주의)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NGO들이 인권 보호 분야나 난민 지원 분야에서 득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고(故) 김용균 씨 사망 항의(추모) 운동에서도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 진보 정치의 저발전된 상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 이 글을 재게재한다.

꺾쇠괄호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우리가 덧붙인 것이고, 현 상황과 관련성이 적은 부분은 삭제했다. 통역은 전문통역사 천경록 씨가 했고, 최일붕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이 번역문을 감수했다.


NGO는 특히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주로 해외 재정지원을 받고, 회원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중 운동보다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실을 합니다. 그래서 NGO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자본주의의 소방차”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어쨌든 1990년대와 2000년대에 NGO가 급성장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동유럽과 소련 몰락으로 인한 좌파의 위기로부터 등장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신자유주의자들이 복지국가를 해체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NGO가 메워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계은행은 빈국에 복지 제도를 마련하기보다는 NGO 지원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NGO에게 막대한 사회투자기금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의 일당독재 정부는 복지 서비스를 전혀 제공하지 않은 채 NGO가 그 일을 대신 해주기를 바랍니다.

셋째, 타이와 인도네시아, 한국 같은 나라들에서는 좌파 정치단체의 회원이 되는 것보다 NGO로 활동하는 것이 합법적 활동을 하기에 좀 더 유리했습니다. 필리핀 같은 일부 나라들에서는 아예 좌파가 NGO를 설립했습니다. 한국의 많은 좌파 활동가들도 NGO에 개입하거나 NGO를 창립했죠. (싱가포르에서는 국가가 상당수 NGO를 만들었지만 이는 예외적인 사례입니다.)

넷째, 차별받는 집단이 무시당하는 상황이 NGO가 두각을 나타내는 데 일조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가령 인도 공산당은 달리트[‘불가촉 천민’]를 무시합니다. 반면 NGO는 흔히 그런 피차별 집단을 대변하는 구실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차별받는 집단에게 이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가령 타이 노동운동은 상당히 약한데, NGO는 거기에 개혁주의 이데올로기를 도입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노동계급 운동이 강력하므로 노동운동 안에서 NGO의 구실은 유명무실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NGO 정치의 본질 ― 개혁주의와 단일쟁점 집중

모든 NGO 정치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개혁주의단일쟁점 집중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NGO 정치를 알려면 NGO가 등장한 맥락을 봐야 합니다. NGO는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 등 이른바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면서 등장했습니다.

사회주의라고 (잘못) 믿은 사회 체제가 몰락하자, 시장경제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득세했습니다. 혁명을 통한 국가권력 장악을 믿던 사람들이 이제는 국가권력 장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또한 많은 NGO들이 주로 지역적 쟁점에 관여합니다.) 계급정치를 거부하는 것이 보편적이 됐습니다. 그래서 NGO의 주요 목표는 단일쟁점에 집중하는 것이 됐고, 정치이론도 거부하게 됐습니다.

조직 면에서 NGO는 (민주적으로 선출된)중앙 지도부에 권한이 집중된 정치조직 건설을 배격하고, 대신에 사회단체들 간 느슨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려 합니다.

이론 면에서 NGO는 정치이론을 거부한다는데도 실제로는 두 가지 주요 정치이론을 갖고 있습니다. ‘신사회운동’론과 ‘시민사회’론이 그것입니다.[‘시민사회’는 국가를 제외한 자본주의 정치·문화 기관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해하면 된다.]

‘신사회운동’은 비계급적 운동을 말합니다. 시민사회론은 자본주의 국가에 도전하지 않는 개혁주의 이론입니다. 시민사회론은 흔히 중간계급들로 이뤄진 압력단체들이 충분히 강력하다면 국가가 중립적으로 행동할 거라고 가정합니다. NGO는 또한 정체성 정치를 강조하며 환경운동 등을 중요시합니다.[정체성 정치는 차별받는 집단이 전통적 정당 정치에서 멀어져 자기만의 배타적인 운동을 형성하는 경향을 말한다.]

신사회운동의 쟁점들을 보면 실제로는 계급 문제입니다. 여성·성소수자·선주민 등의 문제는 모두 계급사회의 결과입니다. 또한 노동계급 운동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운동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중요한 계급 운동입니다.

시민사회론은 계급 권력을 무시합니다. 사실, 시민사회론은 다원주의라는 친자본주의적 구식 정치이론의 재판일 뿐입니다. 다원주의는 혁명 없이 국가를 개혁해 평등한 민주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시민사회론에는 문제점들이 여럿 더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이 이론이 신자유주의에 잘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역할이 줄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NGO는 복지국가 수립과 부유세 신설을 요구하는 데 열의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반적 NGO 정치의 부산물인 단편적(조각난) 정치는 연대를 약화시킵니다. 그래서 때로 NGO는 종파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한 통일된 이론이 없거나 사실상 거부하는 바람에 NGO는 사실상 지배계급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한편, (민주적으로 선출된 중앙에 권한이)집중된 정치조직 건설 거부는 노동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이론을 거부하는 것과 관계있습니다.

학생운동가들 가운데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을 받아들이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예를 들면, 타이 북부 지방에는 여성이 불결한 존재라며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사찰이 하나 있는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이 명백한 여성차별에 대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도 있지” 하고 주장합니다.

NGO 정치는 사회주의 사상과 계급투쟁이 한물갔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인간 역사의 종착점이라는 가정을 공유한 채 사회를 봅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1968년 반란이 1970년대 후반에 패배를 겪었어도 1999년 말 시애틀 시위 이후 운동은 [자본의 세계화와 전쟁을 반대하며] 부활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나라의 투쟁 주기는 이와는 다소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소련 붕괴에 따른 좌파의 사기저하는 모든 곳에 공통됩니다.

 NGO 정치의 구체적 양상들

이제 NGO 정치의 몇 가지 구체적 양상을 다루려 합니다. 네 가지만 다룰 것입니다.

첫째, NGO들이 시장경제 사상에 굴복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 NGO들이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반대 집회에 동참하기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복지국가보다는 서비스 제공을 선호합니다.

둘째, NGO는 국가의 성격에 대해 혼란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혼란은 종종 그람시 사상을 오해하는 것과도 연관됩니다.(제 그람시 강연이 앞서 있었으므로 이 점을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사회’[국가를 제외한 상부구조 부분]를 강화하는 것이 과연 실제로 평범한 대중에게 자기 삶을 결정할 권한(권력)을 더 많이 주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NGO는 혁명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과연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신자유주의에 굴복하는 이유를 NGO들이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많은 NGO는 재정 지원을 국가에 [프로젝트 따오기 등의 형식으로] 점점 더 의존합니다. 그렇다면, 국가가 무력을 사용해 사회운동이나 노동조합을 탄압할 때 국가의 무력을 ‘시민사회’에 호소해서 물리칠 수 있을까요?

NGO는 혼란되고 단편적인 정치 때문에 정부와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타이의 탁신 정부와 NGO의 관계가 좋은 예입니다. 탁신 정부는 포퓰리즘 정책을 펴지만 실제로는 대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합니다. 이런 관계를 한국 노무현 정부와 NGO의 관계와 비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흔히 NGO는 자신이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며 정당 확장을 거부하지만 막상 자신들은 지배계급의 정당들에 구애를 합니다.

셋째, 앞서 말했듯이 타이와 인도네시아에서는 NGO들이 노동운동을 이끄는데, 그 방식은 유모가 유아를 대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온정주의]. NGO에게는 노동계급이 스스로를 이끌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자력해방을 향한 자발적 활동을 경시하는 엘리트주의].

넷째, 전 세계의 많은 NGO들은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무시합니다. NGO들은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지만, 국민 대중은 그들을 선출한 적이 없습니다[대표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착각].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는 지난 운동 고양기의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적 투쟁 분석은 모든 투쟁이 우여곡절을 겪으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패배도 있고 승리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계급투쟁은 아주 다양한 형태를 취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 하나는 다양한 투쟁 형태에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대중운동의 성격을 보면, 이 운동을 지지하는 청년과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온갖 사회문제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일반 이론을 절실하게 찾고 있습니다.

이때, 좌파가 새로운 대중운동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지난 1968~75년 고양기 때 스탈린주의 조직[공산당]들은 투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 덕분에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이 성장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일부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이 새로운 대중운동에 적절하게 연관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역사적 교훈도 있습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스탈린주의 정당은 대규모 투쟁을 제한하는 구실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탈린주의 정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평당원들도 투쟁을 제한하기를 원한다는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비슷하게, NGO들이 운동을 오른쪽으로 이끌고 있을 때도 우리는 NGO의 평범한 지지자들이 NGO 리더들과 동일한 정치를 갖고 있을 거라고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NGO의 평범한 지지자들은 좌파 정치로 이끌릴 수 있습니다.

 맺음말

시장 이데올로기의 위기 때문에 시민사회론이나 신사회운동 같은 NGO 정치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NGO 정치와 경쟁하면서 대중 운동에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를 도입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개혁주의자들이 싸울 때 자본주의와 싸우는데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이용해서 싸운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NGO도 자본주의의 부당함에 항의해 싸우지만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싸웁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일부 피차별 집단 내에서 NGO가 영향력을 가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전통적인 좌파들이 많은 피차별 집단을 무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NGO의 평범한 지지자들을 모욕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고, 진지하게 대하면서 그들과 토론과 공동 행동을 해야 합니다.

 청중 질의에 대한 답변과 전체 토론 요약

한 분이 서구 복지국가의 위기와 이 때문에 NGO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먼저, 서구 복지국가의 위기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서구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조성한 위기입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부든 보수 정당 정부든 서구 정부들은 지속적으로 세금[법인세와 소득세, 재산세, 상속세 등을 말함]을 감면하고 복지국가 예산을 줄였습니다. 따라서 NGO가 답이 아니며, 답은 복지국가 예산을 늘리는 것입니다.

복지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NGO에게 서비스 제공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가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세금을 늘리고, NGO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국가의 복지 체계로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부자들이 복지국가를 건설할 충분한 돈이 없다고 주장하더라도 우리가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안정된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가 자제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동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노조가 자제하고 그 대가로 정부가 복지를 늘리는 모델[사회연대전략]이 그것의 한 사례입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이런 모델을 ‘사회적 협약’이라고 불렀습니다. 독일과 아르헨티나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현실에서는 노동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노조가 파업을 통제하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정부는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언제나 어깁니다.

아무튼 NGO를 볼 때 그들과 우리 사이의 핵심적 차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리더들은 개혁주의자들이고 우리는 혁명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NGO들은 대중 시위보다 대정부 로비나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NGO들이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NGO들은 대중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발명품이 아닙니다. 그러나 NGO의 전략과 정치 때문에 그들은 개혁주의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개혁주의의 근간은 자본주의 체제를 보호함과 동시에 그것을 좀 더 나은 체제로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NGO 지지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답은 공동전선과 건설적 비판의 결합입니다.

혁명가들은 현존 자본주의 체제가 착취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압니다. 엄청난 부가 소수의 수중에 집중돼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불평등이 유지되는 틀 안에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작은 개혁을 요구하고 그것을 얻어 냈을 때 더 많은 개혁을 요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혁명가라고 해서 사람들의 일상적 문제를 무시해서는 안 되겠죠. 혁명가들은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개혁들에도 개혁주의자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혁명가들이야말로 개혁을 위해 가장 잘 싸우는 투사들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