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추방 위기에 놓였다가 난민 지위 재신청을 한 키르기스스탄 출신 중학생 A(16세, 여)와 그 가족을 만났다. 아동·청소년까지 가차 없이 쫓아내려는 정부의 냉혹함, 제대로 된 통역조차 없는 난민 심사, 난민들의 열악한 처우 등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A학생 가족은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정치적 탄압을 피해 러시아, 터키 등을 거쳐 2017년 3월 한국에 왔다. A학생 아버지가 경기도 고양시에서 일자리를 구했고, A학생은 3개월간 초등학교에 다닌 후 중학교에 진학했다.

수년간의 도피생활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A학생은 한국에 와서 처음 학교를 다니게 됐다. 담임교사에 따르면 A학생은 당번도 아닌데 가장 일찍 등교해서 청소를 하고 책을 읽을 정도로 학교 생활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한국어도 금세 능숙해졌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A학생 가족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A학생 아버지는 난민 심사 과정에서 통역에 문제가 있었다고 강하게 제기한다. 통역자가 종교적·정치적 배경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자신들이 난민이 된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우즈벡어, 터키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통역에 필요한 언어에도 모두 능통하지 않았다. 통역이 정확히 됐는지 신뢰할 수 없어 녹화를 요청했으나 이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공부하고 싶다’

A학생 가족은 정부의 난민 불인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A학생은 탄원서를 받으면 재판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아버지에게 듣고,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탄원서를 써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호응해 교사 12명과 학생 50여 명이 탄원서를 썼다. 학생들은 ‘친구와 함께 공부하고 싶다’며 손수 탄원서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5일 서울행정법원은 매정하게 A학생 가족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게다가 소송을 맡았던 국선변호사가 항소 기일을 넘기는 바람에 출국명령서가 발부돼 12월 24일까지 출국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무책임하게도 국선변호사는 ‘시간이 없어서’ 항소 기일을 넘겼다고 말했다 한다.

다행히 A학생의 담임교사가 연결해 준 지역 언론사와 이주민·난민 지원단체들의 도움으로 난민 재신청을 하고 강제 출국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취업 금지

강제 출국은 모면했지만, A학생 가족은 난민 지위 재신청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더 크게 겪고 있다.

A학생 가족은 무엇보다 취업 문제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원래도 난민 신청자에게 주어지는 G-1비자(임시 체류 비자)로는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난민 신청자가 언제 떠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고용주들이 고용을 꺼리는 탓이다. 그런데 난민 지위 재신청 후에는 정부가 A학생 가족에게 G-1비자조차 주지 않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정부의 생계비 지원도 없는데 난민 지위 재신청자들에게는 취업도 금지된다. 일할 수 없게 되자 A학생 가족은 60만 원에 이르는 월세와 20만 원의 전기료 등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필자와 만난 다음 날 전라도 광주로 이사를 갔다.

A학생 아버지는 어처구니없고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 토로했다. “일할 수 없게 하면 아이들 생활비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따졌더니 출입국 직원은 그냥 일하라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금지해 놓고 그냥 일을 하라니] 도둑질을 하라는 것인가?”

“[A학생의] 학교 선생님이나 도움을 줬던 분 등 주변의 한국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다.”

A학생 가족의 사례는 난민 인정을 거부당한 많은 난민 신청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는 무자비하게도 청소년 난민마저도 내쫓으려 한다. 난민 지위 재신청자에게 취업조차 금지했다. 아무런 권리도 주지 않고 어디 한 번 버텨보라는 식이다. 

정부는 A학생 가족이 한국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 또한 난민 재신청자들에 대한 취업 금지 조처를 없애야 한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