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1947~2019)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71세였다.

고인은 병마와 싸우던 생애 마지막까지 블로그에 또렷하고 의연한 글을 썼다.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내가 다시금 다른 물질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돌아갈” 때를 고요히 사색하면서.

라이트와 나는 둘 다 1960년대 말에 옥스퍼드대학교 재학생이었지만, 우리가 서로 알게 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였다. 2009년 6월 케이트 알렉산더가 조직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대학교에서 열린 계급에 관한 토론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와 나 모두 그 토론회에 참석했다.

라이트가 거의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쌓아 올린 지적 이력에서 핵심으로 삼은 주제는 계급이었다. 그는 마르크스의 계급 이론을 주류 사회과학의 실증적·정량적 방법론과 결합시키려 했다.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의 연구에서는 흔히 마르크스가 실종되지만, 라이트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라이트는 마르크스의 핵심 주장을 결코 망각하지 않았다. 계급이란 한 사회 집단이 다른 집단을 착취하는 것에 기반한 사회 관계라는 주장 말이다. 특히 라이트가 쓴 명저 세 권, 《계급 구조와 소득 분배》(1979), [그의 박사논문에 기반한] 《계급론》(1985)[국역: 《계급론》, 한울아카데미, 2016], 《계급이 중요하다》(1997)는 엄청난 개념적 엄밀성과 실증적 철저함이 결합된 작품이다.

그의 이론적 혁신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모순된 계급 지위’ 이론일 것이다. 라이트는 현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고용 인구의 상당수가 자본가적 특성과 노동자적 특성을 둘 다 지닌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관리직·임원직은 임금을 받는 피고용인이지만, 자본을 대리해서 노동자 대중에 대한 착취가 확실히 수행되도록 한다. 라이트는 이것을 자본주의 계급 구조가 마르크스의 예측보다 복잡하다는 증거로 봤고, 이 때문에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 [마르크스의 예측]보다 험난할 것이라고 여겼다.

유익함과 이견

사람에 따라 라이트의 이론에서 이끌어 낼 정치적 결론은 다르겠지만, ‘모순된 계급 지위’ 개념 자체는 내가 볼 때 유익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라이트는 1970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논쟁에서 영향을 받아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을 내버리게 됐다. 이는 두 가지 부정적 영향을 [라이트의 이론에] 끼쳤다.

첫째,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착취 분석은 노동가치론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모든 가치가 노동으로 창출되지만 자본가들이 그중 일부를 이윤(잉여가치)으로 전용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가치론을 버리면, 착취를 설명할 다른 이론이 필요해진다. 라이트는 [‘분석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존 로우머의 이론을 취했다. 로우머는 숙련 노동자가 상대적 미숙련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주장 등을 한다.

이렇게 보면, 계급을 생산관계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아니라 소득 수준 차이로 축소(환원)시켜 보는 경향이 생긴다. 이는 주류 이론이 계급을 다루는 방식, 즉 라이트가 출발점부터 거부했던 방식과 꼭 닮은 것이다. 공정하게 말하면, 라이트는 로우머 이론의 이런 함의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둘째, 이윤율 저하 경향 때문에 자본주의가 경제 위기에 거듭 빠질 수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의 바탕에도 노동가치론이 있다. 이와 달리 라이트는 “자본주의는 상당한 유연성과 문제 해결 역량을 가졌다”고 주장했다.(해리 브릭하우스와 같은 주장인데, 나는 내 책 《평등》(울력, 2006)에서 브릭하우스의 주장을 논쟁적으로 다뤘다.) 

라이트와 나는 요하네스버그대학교 토론회에서 다시금 [이 문제들에 관한] 이견을 확인했다. 그 토론회는 2007~2008년 [금융시장] 붕괴로 발생한 세계적 불황이 한창이던 때에 열린 토론회였다. 내 보기로 라이트는 이 불황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

라이트는 자본주의를 개혁할 여지가 나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봤다. 말년에 라이트는 바로 그런 개혁과 전략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에 집중했다. 《리얼 유토피아》(들녘, 2012)가 바로 이를 위해 쓴 책이다.

이 책에 개진된 복잡한 주장들은 라이트가 미국 좌파 잡지 《자코뱅》에 기고한 글 ‘반자본주의자가 되는 방법’(2015)에 요약돼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분쇄하겠다는 환상은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길들이고 침식시키기”에 집중하라고 권한다.

라이트가 쓴 다른 모든 글처럼, 이 글도 사려 깊고 작은 문제들까지 다룬다. 라이트는 모범적이며 근면한 스승이었고, 제자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다. 그들 모두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사회주의자는 누구든 그처럼 매우 창의적인 마르크스주의 학자가 떠난 것을 애도할 수밖에 없다.

에릭 올린 라이트 (1947-2019) ⓒ출처 Rosa Luxemburg-Stiftung(플리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