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21세기 사회주의’를 선언한 일은 세계 좌파들에 많은 영감을 줬다. 하지만 오늘날 베네수엘라는 커다란 위기에 계속 시달리면서 그 한계를 노출하기도 했다.
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 조셉 추나라가 2017년에 썼는데, 베네수엘라 사례의 전략적 문제와 혁명적 좌파가 얻을 교훈을 잘 정리한 글이다. 기획 연재의 일곱 번째 글로 재게재한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끌어내리려는 투쟁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베네수엘라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마두로 정부에 맞선 우파의 투쟁으로 2017년 상반기에만] 100명이 넘게 사망했다. [당시] 격변 때문에 안 그래도 2013년에 견줘 경제가 3분의 1만큼 축소된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더한층 열악해졌다.

영국 기성 정치권과 언론은 베네수엘라를 보며 매우 단순한 교훈을 내놓는다. 마두로의 전임자 우고 차베스처럼 ‘21세기 사회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사람이 집권하면 앞날은 비참해질 뿐이라는 것이다. 즉, 영국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가 총리가 되면 영국도 베네수엘라 꼴 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위기는 사회주의가 너무 과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미약했기 때문에 벌어졌다.

물론 국제 좌파는 마두로를 끌어내리려는 우파의 시도를 규탄해야 한다. 우파가 승리한다면 차베스가 1999년부터 2013년 사망할 때까지 계속했던 — 라틴아메리카에서 정설 신자유주의와 결별하고 야심찬 빈곤 감축 계획을 도입했던 ─ 시도의 잔재마저 모두 파괴될 것이다.

우파가 승리한다면 베네수엘라 내 “볼리바르식 혁명” 지지를 밝힌 모든 사람들은 박해받을 것이고, 베네수엘라 바깥의 차베스 지지자들은 사기가 저하될 것이다. 악랄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득의양양해할 것이다. 소위 “마두로 독재”에 맞서 미국이 개입하겠다며 위협하는 바로 그 자가 말이다.

하지만 차베스와 마두로가 거의 20년 동안 집권했는데도 왜 여전히 기성 엘리트들이 베네수엘라에서 그렇게 강력한 위치에 있는가 하는 질문도 던져볼 만하다. 그리고 왜 [차베스와 마두로가] 1990년대부터 그토록 많은 인기 있는 조처들을 취했는데도 야당이 2015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이를 이해하려면 차베스의 ‘볼리바르식 혁명’의 급진성과 모순을 모두 돌아봐야 한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군 대령 시절에 유명세를 얻었다. 당시 차베스는 정치권의 부패에 실망한 군 장교들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1992년에 차베스는 미수에 그쳤던 좌파 쿠데타를 주도했다.

쿠데타가 실패하자, 차베스는 더 많은 유혈사태를 피하려고 텔레비전에 출현했다. 1분 남짓한 그 방송에서 두 가지 점을 기억할 만하다. 첫째, 차베스 자신이 봉기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졌다는 것이다. 이는 베네수엘라 정치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둘째, 차베스는 봉기로 이루고자 했던 바를 “지금으로서는” 성취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문구는 이후 몇 년 동안 전국적 반향을 일으켰다.

짧은 수감 기간을 거친 차베스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56퍼센트의 지지를 얻으며 1998년 12월 당선했다. 이는 기성 엘리트 정치인들에 대한 거부 표시였다. 차베스 집권으로 베네수엘라 사회가 맞이할 새 시대가 무엇을 낳을지는 불분명했지만 말이다.

운동의 전개

차베스의 급진성은 대체로 차베스가 2000년대 초 분출한 대중 운동과 맺은 관계에서 기인했다. 차베스는 부패로 점철돼 사실상 “국가 내 국가”였던 ‘모양만 공기업’ 국영석유기업 PDVSA의 거래 내역을 공개 조사하려 했다. 그러자 2002년 4월 베네수엘라 엘리트들은 차베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첫 번째 쿠데타 시도를 감행했다.

군부대가 대통령궁을 장악했고 차베스는 납치돼 군 기지로 이송됐다. 이때 대중의 대응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수십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쿠데타 주모자들의 자신감을 꺾었고, 결국 그들은 쿠데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 말 자본가들은 3개월에 걸친 직장폐쇄를 감행해 정권을 무너뜨리려 시도했다. 그러자 이에 맞선 노동계급의 전투가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석유 산업을 재가동했고, 유통망을 유지하고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배급하려 했다. 급진적 노동조합연맹인 전국노조연합(UNT)이 바로 이 성공적인 투쟁 속에서 탄생했다.

2004년에 기성 엘리트들은 다시 한 번 차베스를 제거하려 했다. 이번에는 “국민소환투표”를 통해서였다. 또다시, [베네수엘라 대중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중 운동을 벌여 투표장에서 우파를 물리쳤다.

‘볼리바르식 혁명’의 바로 이 단계에서, 석유 수출 수익을 보건·교육·주택 복지에 활용하는 매우 야심찬 사회 정책의 토대가 마련됐다. ‘볼리바리안 서클’[지방 정부에 대중의 의견을 표출하는 조정 기관 ─ 옮긴이], 협동조합, 지역의회, 도시 토지 위원회 등 기층 대중 스스로 사회를 통제할 잠재력을 가진 운동들이 시작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이 과정엔 세 가지 모순이 있었다.

첫째, ‘볼리바르식 혁명’은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사회 변화를 추구했다. 재원 대부분이 석유 수출 수익에서 나왔는데,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이라크 전쟁으로] 중동 지역을 불안정하게 하고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원자재 수요가 증가해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가 훨씬 넘었다. 베네수엘라의 사회적 지출이 곱절로 늘었지만, 자본가들의 권력을 심각하게 위협하지 않고도 그럴 수 있었다. 민간 자본의 자산도 차베스 집권기에 늘었다.

둘째, 사회주의 체제로 가려면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국가와 결정적 대결을 벌여야 한다. 베네수엘라의 기존 국가기구는 차베스 집권으로 타격을 입긴 했지만, 차베스 집권기에 재편됐을 뿐 해체되지는 않았다. 쿠데타 주동자들을 대체할 새로운 장군들이 임명됐지만,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들의 이해관계는 대중 운동의 이해와 점차 괴리됐다. 오늘날 베네수엘라 내각의 절반은 군부 출신이며, 국방장관 블라디미르 파드리노는 정부 핵심 인사로 간주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볼리바르식 부르주아지’가 출현했다. 이들은 차베스 시류에 편승해, 석유라는 노다지를 나눠 가지기 위해 국가기구와 유착했다. 차베스 집권기에도 부패는 계속됐고 마두로 정부 하에서 그 규모가 점점 커져 왔다. 친정부 인사 몇몇이 쌓은 수상쩍은 부는 대중들 사이에서 불만 요소가 되고 있다.

셋째, ‘볼리바르식 혁명’을 이끈 정치 세력에도 모순이 있었다. 차베스는 2006년에 신당 베네수엘라통합사회주의당(PSUV) 창당을 선언하고, 자신의 계획을 지지하는 이들은 모두 이 당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약 500만 명이 입당했다!

그러나 이 당에는 [당시에도] 항상 모호한 측면이 있었다. 이 당은 대중 운동 내 급진적 부문의 정치적 창구 구실을 하고자 한 정당이었는가? 아니면 그저 국가의 요구사항을 대중 운동에 하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는가?

후자, 즉 위로부터 대중을 단단히 통제하기 위한 정당임이 오늘날에는 명확해졌다.

바로 이 모순들이 마두로 정부 하에서 위기가 자라나는 데에 일조했다.

관계

차베스의 죽음은 의심할 여지 없이 ‘볼리바르식 혁명’에 타격이었다. 차베스 개인의 명망과, 차베스가 가난하고 박탈당한 사람들과 맺었던 친밀한 관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차베스의 후임 마두로는 ‘볼리바르식 혁명’을 전진시키기보다는 더 퇴보시켰다.

국제 유가 하락이 그 한 요인이다. 그럼에도, 부자들이 기존 석유 수출 수익 상당 부분을 탕진하고 착복하고 있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새롭고 지속가능한 산업이 창출되기는커녕 석유 산업에 대한 의존이 심해져, 석유 수출 수익이 전체 수출 수익의 95퍼센트를 차지할 정도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볼리바르식 혁명’이 전진하려면 부유층·권력자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더 강력한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필요하다. 그 부유층·권력자들이 기성 엘리트이든 [차베스·마두로 집권기에] 새롭게 국가와 유착한 이들이든 간에 말이다.

2002~2005년 하늘을 찌르던 대중 운동의 사기가 이제는 저하돼 있다. 우파의 2015년 총선 승리는 그 반영이다. 마두로 측 후보들에 투표한 ‘볼리바르식 혁명’ 지지자가 [지난 선거보다] 200만 명 줄었다.

총선 결과[에 뒤이은 우파 공세]에 마두로는 탄압 강화, 지방선거 연기, 노조선거 중단, 그리고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대응했다.

우파가 거리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자 마두로는 제헌의회 선거를 단행했다. 우파는 이 선거를 보이콧했다. 겉으로만 보면, 이번 제헌의회는 1999년 차베스가 헌법을 개정할 때 수립한 제헌의회와 이름이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시의 매우 민주적이었던 제헌의회를 희화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PSUV가 엄격히 통제하는 이번 제헌의회는, 마두로가 자신에게 적대적인 국회에 맞서 나라를 통치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기구다.

그런 탄압은 우파뿐 아니라 좌파에도 타격이 됐다. 2015년에 PSUV와 결별한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 ‘사회주의 물결’ 사무실이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민주주의 영역 축소는 ‘볼리바르식 혁명’이 급진적이던 시기에 있었던 것과 정반대 일이다.

게다가 마이크 곤잘레스가 미국 좌파 잡지 《자코뱅》에 기고한 글에서 썼듯, 마두로는 경제 위기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 베네수엘라 동부 열대우림 지대 아르코 미네라에서 다국적기업들과 손잡고 석유·천연가스·광물을 채굴하려 한다. 이것은 환경 재앙을 낳고 토착민들의 삶을 공격하는 것이어서 이미 이전[차베스 정부 시절]에 거부된 계획이다.

이 심각한 상황에 국제 좌파는 두 가지 측면을 염두에 두고 대응해야 한다.

첫째, ‘볼리바르식 혁명’의 성과를 모조리 파괴하고자 하는 [베네수엘라 우파] 세력을 영국 총리 테레사 메이나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등 서방 지배자들이 후원하려 드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

둘째, 베네수엘라에서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사회주의는 좌파 대통령 당선이나 좌파 정부 집권과 동일시될 수 없다. 물론 이는 노동계급의 성장과 자신감 상승에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한때 베네수엘라에서 그랬고, 우리의 희망대로 코빈이 영국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주의는 소수 자본가들의 손에서 권력을 빼앗아, 사회를 아래로부터 재편할 노동자들의 민주적 기구로 넘길 때만 가능하다. ‘볼리바르식 혁명’이 한창 급진적이던 시기에 봤던 대중적 통제의 잠재적 요소들은, 바로 진정한 사회주의가 가능함을 보여 준다. 노동자들이 대안적·민주적 권력 기구를 구성하고, 기존 국가기구에 맞설 때까지 그런 요소들을 계속 키워야 한다.

게다가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선 기존 국가와의 결정적 대결은 꼭 필요하다. 그런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만의 조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회의 근본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상이한 투쟁들에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그 투쟁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조직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연관 맺지 않고 국가로부터 독립적이고, 자본주의를 운영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전복에 앞장서는 혁명적 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들은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21세기에 진정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열망하는 그 어떤 나라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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