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파시즘에 관한 오해와 혼란이 많다. 1980년대에는 권위주의 독재 정권을 “군사 파쇼”라고 불렀고, 이후 김영삼 정부를 “민간 파시즘’이라고 불렀으며, 이명박근혜 정부는 “파시즘인 듯, 파시즘 아닌, 파시즘 같은 정부”라는 말장난인 듯 아닌 듯한 주장이 있었다. 또, ‘우리 안의 파시즘’ 운운하며 운동 진영 내부의 분열과 마녀사냥 분위기를 조장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국제적으로도 파시즘에 관한 오해와 혼란은 흔히 볼 수 있다. 지난해 말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보우소나루가 당선하자 파시스트 논쟁이 벌어졌고, 최근 번역·출간된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책 《파시즘》은 트럼프부터 푸틴, 에르도안, 김정은, 심지어 작고한 차베스까지 죄다 파시스트로 몰아붙였다.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까지 지낸 올브라이트가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파시스트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보면, 단지 오해나 혼란이 아니라 의도적 왜곡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자신이 보기에 미국(제국주의)의 ‘국익’에 반하는 것은 모두 파시즘으로 몰아가는 듯하다는 것이다.

물론 유럽에서 진짜 위험한 파시스트들이 발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의 국민연합,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헝가리의 요비크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파시스트들에 맞서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라도 파시즘이 과연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적을 분명히 아는 것이 전술의 출발인데, 이것도 파시즘이고 저것도 파시즘이고 죄다 똑같은 파시즘이라면, 누구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 도통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우화도 생각난다.

프티부르주아지 대중운동

이 책 《파시즘, 스탈린주의, 공동전선》은 파시즘에 대한 제대로 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1933년 1월 히틀러의 집권은 이후 15년 동안 국제 정치의 흐름을 결정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마치 1917년 러시아 혁명이 그전 15년간의 국제 정치를 결정한 사건이었듯이 말이다.

이렇게 “역사의 흐름이 바뀔 때마다 … 우리는 현대사회의 세 계급 간 상호 관계 문제를 거듭거듭 살펴봐야 한다”고 트로츠키는 강조했다. “그 세 계급은 금융자본이 이끄는 대부르주아지, 두 기본 진영 사이에서 흔들리는 프티부르주아지, 마지막으로 프롤레타리아다.”

파시즘은 바로 이 프티부르주아지가 심각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위기의 순간에 ‘미쳐 날뛰면서’ 다른 두 주요 계급을 모두 제압하려 하지만, 결국 프롤레타리아를 철저하게 분쇄해서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하려는 대부르주아지에게 봉사하게 되는 프티부르주아지의 대중운동이라는 것이 트로츠키의 분석이다.(〈노동자연대〉에 실린 존 몰리뉴의 글 “파시즘이란 무엇인가?”가 트로츠키의 주장을 잘 요약하고 있다.)

트로츠키가 이런 분석과 이론을 발전시킨 1930~1934년의 저작들을 두고 토니 클리프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 저작들은 역사유물론의 방법이 적용된 걸작일 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변화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고, 독일의 다양한 사회집단(프롤레타리아·프티부르주아지·룸펜프롤레타리아)의 대중심리나 히틀러 같은 개인의 구실 등을 묘사하는 데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저작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가장 뛰어난 역사 저작, 즉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나 《프랑스의 계급투쟁》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 저작들에서 “트로츠키는 상황을 분석할 뿐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행동 방침도 분명히 제시한다. 전략과 전술의 측면에서 그 저작들은 극히 귀중한 혁명적 지침서로, 코민테른 첫 4년 동안 레닌과 트로츠키가 만들어 낸 최상의 작품들과 견줄 만하다.”(《트로츠키 1927~1940》, 책갈피, 19쪽)

트로츠키가 이 저작들을 썼을 때 처한 곤경을 떠올려 보면 이것이 얼마나 뛰어난 업적인지를 더 실감하게 된다. 1929년 초에 그는 소련에서 추방당했다. 유럽의 어느 국가도 그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아서 그는 터키의 이스탄불 근처 섬에서 이후 5년 동안 갇혀 지내야 했다. 당시 독일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그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독일에서 발행된 지 1주일 만에 도착하는 신문들과 간간이 받아 보는 지지자들의 편지뿐이었다.

그런데도 “트로츠키는 독일 상황을 다룬 가장 뛰어난 기사·논문·책을 썼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지은이가 사건 현장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나날의 우여곡절을 추적해서 글을 썼다는 점이다.” 당시 “트로츠키가 쓴 저작들을 읽어 보면, 얼마나 구체적인지 마치 지은이가 독일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터키의 프린키포섬이 아니라 독일 현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전략과 전술

물론 지금 돌이켜 보면 적절하지 않은 내용이나 트로츠키 스스로 나중에 포기한 견해들도 들어 있다. 예컨대, 당시 트로츠키는 소련의 스탈린 체제가 평화적 개혁을 통해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 체제로 변화할 수 있다고 봤지만 몇 년 후 그의 생각은 바뀌었다. 또, 경제 위기에 빠진 독일이 소련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논리와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분명히 드러나는 스탈린 체제 관료들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면 그것은 가망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다룬 훨씬 더 많은 쟁점들은 여전히 적절하고 유의미하다. 예컨대, 중간주의나 초좌파주의 같은 당과 계급의 관계 문제나, 노동자 민주주의, 파업 전략 등도 있고, 무엇보다도 파시즘의 본질과 반파시즘 투쟁 전술로서 공동전선 문제가 그렇다.

단지 독일뿐 아니라, 러시아와 이탈리아의 경험 등도 일반화해서 제시하는 분석과 전술은 말 그대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러나 독일에서 파시즘의 집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트로츠키가 거듭거듭 주장하고 제안한 노동계급 정당들(사민당과 공산당)의 공동전선은 실현되지 않았다. 결국 “독일 국내의 세력들이 제때 히틀러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불과 몇 년 뒤에 유럽은 다시 전쟁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트로츠키의 예측이 비극적으로 들어맞은 것을 보노라면 정말이지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현재는 과거가 누적된 결과이므로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개척하는 실천 활동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거의 90년 전에 쓰인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지만,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고 사회변혁을 위한 혁명적 전술을 가다듬는 데 필요한 통찰과 이론이 담겨 있는 중요한 책이다.

지금은 절판된 《트로츠키의 반파시즘 투쟁》(풀무질, 2001)도 당시 트로츠키가 쓴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지만, 1931년 말까지의 상황을 다룬 글이 마지막이었다. 《파시즘, 스탈린주의, 공동전선》은 그중에서 몇 개가 빠졌지만,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의 상황까지 다룬 글들이 추가됐고, 당시 상황을 전체적으로 개괄하는 스티브 라이트의 머리말과 각각의 글에 대한 크리스 하먼의 배경 설명이 실려 있어 더욱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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