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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5·18 망언과 한국당의 우파 본색:
망언자들의 의원직을 박탈하라
촛불 배신으로 우파의 기를 살려 준 대가

우파가 문재인 지지율 추락을 배경으로 기세등등하며 ‘오버’ 하다가 5·18 망언으로 역풍을 맞고 있다.

지난해 중반 이후 문재인 정부가 진보 개혁 염원을 거스르다가 지지율이 떨어지자, 그동안 우파는 반사이익을 누려 왔다. 덕분에 지난해 말부터는 한국당 지지율도 점차 회복됐다.

기가 산 우파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구속을 이유로 2017년 대선 무효도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들은 앞다퉈 ‘아스팔트 우파’와 친박에게 아부했다. 오죽하면 수감 중인 박근혜까지 숟가락을 얹으려고 했겠는가?

그러다가 민주화 자체를 부정하는 ‘오버’ 발언을 한 것이다. 2월 8일 자유한국당 의원 김진태와 이종명은 북한군 개입설을 검증한다며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우익 인물 지만원을 초청해 마이크를 맡겼다. 지만원은 2000년대 초부터 북한군 침투와 개입설을 주장해 왔다.

이날 한국당 의원들도 망언 대열에 합류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된 것”(이종명),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김순례) 운운한 것이다. 김진태는 이날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영상 축사에서 지만원과 이종명을 치켜세우며 “5·18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파가 물러서면 안 된다”고 했다.

역풍맞고 동요하는 위선자들 ⓒ출처 자유한국당

김진태는 지난해 통과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서 조사 대상으로 한 “북한군 개입 여부” 문제를 다룬 것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그러나 이 법은 발포 명령권자 등 군부의 책임을 마저 밝혀내려고 만든 것이다. 지난해에도 헬기 사격, 계엄군의 성폭력 등이 새로 확인됐다. 또한 지난해 이 특별법에 관한 국방위원회 공청회에서 애초 ‘북한군 침투 조작 사건’을 다루는 것으로 돼 있던 것에 “북한군 개입 여부”를 포함시키자고 한 장본인이 이종명이다.

당시 이종명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5·18 유공자 측 참석자들과 국방위 소속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북한군 개입 여부와 관련해서 오해를 받고 있는 부분을 깨끗이 정리함으로써 … 논란의 소지를 차단하고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8일 토론회에서 비열하게 180도 돌변한 발언을 한 것이다. 애초의 진짜 속셈이었을 것이다.

“사실에 기초해 논리적으로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 … 5·18에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것을 하나하나 밝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

광주민중항쟁이 “북괴의 계획된 폭동”이라면, 군부의 무력 살인 진압이 정당했다는 말이 된다. ‘광주 학살 미화’는 (표현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징표가 아니라 군사 독재를 미화하는 반동의 표식이다. 의원직을 박탈하는 것이 마땅한 이유다.

여론조사들에서는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제명에 10명 중 6~7명이 찬성한다. 현재의 한국당 지지율에 조금 더한 정도만이 제명에 반대한다.

한국당 지도부가 군사 독재의 후예 정당답게 미적지근하게 대응하면서 역풍은 더 커졌다. 당론이 아니라면서도 다양한 역사 해석의 하나라는 둥 하다가 된통 당한 것이다.

김진태가 2월 10일에 청와대 전 특감반원 김태우를 앞세워 청와대가 드루킹 특검 수사 동향을 파악하려 했다고 폭로했지만, 역풍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문재인 지지율 하락 속에서 위기감을 느껴 온 민주당 지지층과 범진보층 일부도 이 쟁점으로 결집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 쟁점을 재빠르게 활용했다. 정의당과 민중당 모두 세 의원을 고발하고 제명을 요구하며 반(反)한국당 전선에 합류했다.

경쟁 우파 야당인 바른미래당을 포함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원내 정당들이 모두 김진태와 이종명, 김순례의 국회의원 제명 추진에 합의했다.

결국 12일 한국당 비대위 지도부는 마지못해 이들을 징계하겠다고 밝혔지만, 의원 제명은커녕 당원 자격 박탈 같은 중징계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랬다가는 우파 지지층에 균열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강성 우파 일부는 황교안이 광주에 가서 “민주화가 이뤄진 거룩한 성지”라고 한 것을 비난하고 있다.

게다가 김진태는 2월 말 한국당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김순례는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상태다. 어쩌면 당내 경선을 염두에 두고 (우파 표를 얻으려고) 도가 넘는 언행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표 계산 문제는 아니다. 김진태 등의 행태는 최근의 정치적 양극화에서 우경적 축이 한국당을 매개로 표현되는 한 방식이다.

당장은 한국당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 망언 의원들을 징계하든 안 하든 (중도층과 우파) 지지층 안에서 각기 반발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 경선에도 이런 압력이 반영될 듯하다. 기회주의 처신도 계속될 것이다. 문재인이 친기업 기조를 강화하고 왼쪽에서 지지 이탈이 생기는 동안, 우파가 ‘그럼 그렇지’ 하면서 기운을 회복했지만, 여전히 그것이 공식정치에서 표현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있는 것이다.

이 점이 노무현 정부 때와도 다른 상황이다. 촛불 운동의 반(反)우파 정서와 그 여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점에서 민주당도 편한 상황은 아니다. 양극화는 민주당에게도 압력이 되고 있다.

진보·좌파와 노동운동은 우파의 공세를 반대해야 하지만, 정부의 반노동 공세나 진보 개혁 염원 배신에 항의하고 맞서는 것을 회피하면 안 된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지난해에도 1년 내내 한국당과 치고박고 싸웠지만, 그 와중에도 수 차례 여야 합의로 노동 개악과 규제 완화 악법들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진실의 문턱도 밟지 못할 북한군 개입설

지만원은 육사를 나와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육군 대령 출신이다. 전두환이 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부장도 겸임할 때, 안기부 정책보좌관이었다. 전역 후 한때 방위산업 비리를 폭로하며 김대중 당에 접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을 옹호한 이후 2000년대부터는 일관되게 극우 인물로 활약해 왔다.

이종명, 김순례는 각각 육사를 나온 대령 출신, 여약사회 회장 경력을 이용해 친박계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한 초선 의원들이다.

광주민중항쟁이 북한 간첩 등이 개입해 일으킨 폭동이라는 설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1980년 5월 전 국민이 방송을 통해 들었던 소식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중무장한 계엄군 2만여 명에 의해 봉쇄되고 전화마저 차단된 광주에서 시민들은 날조된 뉴스를 보며 분노와 절망에 몸부림쳤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민주화를 열망한 사람들 누구도, 당시나 그 이후에 신군부의 발표와 그에 따른 앵무새 방송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학살과 날조의 당사자인 신군부도 믿지 않았다. 전두환은 정호용(광주 진압 당시 특전사령관), 이순자 등과 함께한 《신동아》 2016년 6월호 인터뷰에서 지만원의 북한군 침투·개입설에 대한 질문에 “난 오늘 처음 듣는데”라고 답했다.

열받게도 그해 말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지만원의 북한군 개입설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벌어진 판매금지 소송 재판에서 재판부는 전두환 본인의 《신동아》 인터뷰, 안기부·계엄사 등의 사후 조사 문건, 미국 CIA의 본국 보고 문서 등에 비춰 북한군 개입설은 전혀 근거없다고 판결했다.

이뿐 아니다. 노태우 시절 국회 청문회부터 김영삼 정부 하 검찰 수사, 이후 수차례 국방부 조사 등 국가기관의 공식 조사·수사에서도 북한군과 관련된 사실이 발견되거나 인정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만원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시민군으로 위장해 무기고(44곳)을 일거에 습격해 계엄군과 시민 양측에 총격을 가하거나, 범죄자를 석방해 사회를 혼란시킬 목적으로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고 한다. 사악한 상상의 소치다.

지만원 말대로면, 10~15명 정도로 산개한 특수부대원들이 무기고들을 일시에 습격하고도 안 들켰다는 것인데, 항쟁 참가자들에 대한 계엄 하 군사재판 기록에서도, 안기부 상황일지에서도, 1995년 검찰 수사에서도 그런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모든 기록은 계엄군의 무차별 발포 직후 시민들이 자위 차원에서 수백명씩 파출소 등에 몰려가 소총 등을 탈취했다고 증언한다. 진압으로 모두 경찰이 차출돼 지키는 인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사상자가 생기지도 않았다.

광주교도소는 광주에서 전남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서, 광주를 봉쇄한 계엄군은 봉쇄 목적으로 공수부대를 교도소에 배치했다. 그들은 화력을 집중시켜 교도소 앞 도로를 틀어막았다. 교도소 벽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고 오히려 광주에서 탈출하려던 시민들이 도로에서 총격을 당했다.

지만원 말대로라면, 전국 계엄 하에서 휴전선부터 3중, 4중의 한국군 방어벽을 뚫고 광주에 진입해 계엄군을 몰아낸 북한 특수군은 유독 광주교도소 방어벽은 뚫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간첩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 CIA의 첩보원은 없었을까? 사기를 떨어뜨리고 분란을 조장하려고 침투한 계엄군 프락치는 없었을까? 안기부와 보안경찰들이 남아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존재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군부 독재를 연장하려는 신군부의 폭압에 맞선 위대한 무장 민중항쟁이라는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이 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그저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이유로 모든 해석이 공평하게 취급돼야 하는 건 아니다.

북한군 개입설은 그저 북한을 주적으로 한 반공주의 억압 기제가 약화될 것을 우려한 우익들이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진 틈을 타 흑색선전을 하는 것일 뿐이다.


우파에 반대해야 하지만

강성 우파가 적어도 사상과 사고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룰)를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박근혜는 공공연히 아버지 박정희 시절을 찬양했었다. 친박 우파들은 박근혜 퇴진 촛불을 군대가 계엄령을 선포해 진압하라고 요구했었다. 실제로 군부 내에서는 친위 쿠데타 모의가 있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그런데 1987년 이후 등장한 모든 정부가(광주 학살을 지시한 신군부의 일원이었던 노태우 정부조차도) 광주민중항쟁의 최소한의 진실과 정당성을 공인했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저항에 밀려 더는 군부 독재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지배계급이 문민 통치와 절차적 민주화를 약속한 것의 한 상징이었다. 지배계급끼리, 지배계급과 노동계급 간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국가형태를 바꾸게 한 ‘잠정 협정’의 일부인 셈이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그렇게 광주항쟁과 민주주의 운동, 노동운동을 인정하면서 자리잡았다.

따라서 자신들의 전임 정부들도 인정하고 사과했던 일을 새삼 공격 소재로 삼고 나선 것은 한국 사회의 좌우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걸 뜻한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언사를 통한 지지층 결집 방식은 촛불 효과가 지속되는 한 우파 야당의 확장을 어렵게 하는 면이 있다.

문제는 민주당이 우파의 회복에 늘 도움을 줘 왔다는 것이다. 반우파 투쟁에서 민주당이 효과적인 동맹이 아닌 이유다(국회 의원직 박탈 절차 협력 같은 것이야 할 수 있지만). 민주당은 일당 독재 국가가 자유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지배계급 정당 성격이 더 강화됐다. 일관된 민주주의 옹호 정당이 아니라는 뜻이다. 1998년 집권 이후 더 그랬다.

김대중은 박정희 독재의 잔당과 연립 정부를 이뤘고, 지배계급끼리의 공존 룰에만 충실한 나머지, 당선하자마자 전두환·노태우를 풀어줬다. 반면 김대중 정부 하에서도 국가보안법과 구속 노동자의 수가 거의 줄지 않았다.

덕분에 우파가 살아나 당시 일어난 청년들의 반미 운동 덕에 가까스로 당선한 노무현은 집권 기간 동안 국정 운영의 조언을 듣겠다며 두 번이나 전두환·노태우를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청와대에 초청했다(노태우는 건강 때문에 한 번만 참석). 전두환이 목에 힘주고 잘난 체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는 사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시위 진압 경찰의 폭력으로 최소 3명이 사망했다.) 국가보안법을 통치에 활용했다.

촛불 운동 직전에도 추미애는 전두환을 방문하려고 했었다. 문재인의 총리 이낙연은 국무총리 직속인 시민사회발전위원회에 광주항쟁을 우파적 관점에서 ‘반란’이라고 부른 뉴라이트 이영조를 위원으로 위촉했다. 이낙연 자신이 〈동아일보〉 기자 시절에 전두환 찬양 기사를 썼다.

김대중과 노무현, 문재인 정부 모두 경제 위기에서 기업들을 구하려고 반노동 정책을 폈다. 광주 문제로 좁혀 봐도, 신군부를 제대로 처단하지 않아 이 사달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 그렇게 행동한 결과로, 민주당 정권 초에 위축됐던 우파 야당들이 매번 살아났다.

지난번 민주당 정부 10년의 결과가 바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였다. 당시에 주요 진보진영은 제대로 된 대안 제시에 실패했다. 민주당과 무비판적 동맹을 맺고 우파의 회복에 맞서려는 포퓰리즘 전략이 잘못된 선택인 이유다. 좌파는 계급투쟁 전략에 기초한 정치를 강화해야 한다.

기사 후반부를 좀 더 우파 결집에 대한 경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조금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