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현지 시각) 영국 하원에서 총리 테리사 메이가 브렉시트 문제를 두고 또다시 패배했다.

현 상황을 정리하고 시간이라도 벌려고 부친 “중립적” 정부안이 하원 표결에서 찬성 258표 대 반대 303표로 부결된 것이다.[브렉시트를 두고 양분된 입장들 사이의 ‘중립’을 뜻한다.] 여당인 보수당 의원의 4분의 1 가까이가 정부 안을 지지하지 않았다. 67명은 기권했고 5명은 반대했다.

이로써 메이 정부는 브렉시트 관련 하원 표결에서 여덟 번째 패배했다. 이번 패배 때문에 법률적 결과가 바로 뒤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메이로서는 또 한 번 충격적인 굴욕을 당한 것이다.

영국의 친기업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논평했다. “2월 14일 하원에서 또 한 번 패배한 테리사 메이는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의사당을 떠났다. 보수당 의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총리가 그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 봤어요.’ 장관 한 명은 그날 분위기를 이렇게 요약했다. ‘총체적 난국.’”

보통 때와 달리 메이는 투표 결과를 듣지도 않고 의사당을 떠났다.

“총체적 난국” 2월 14일 영국 하원에서 연설하는 총리 테리사 메이 ⓒ출처 <소셜리스트 워커>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의회의 뜻을 계속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표결로 브렉시트에 대한 메이 총리의 노선이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녀의 전략은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코빈은 정부 불신임안을 발의하지 않았다.

메이가 이번에도 패배한 것은 여당인 보수당의 상당 부분이 메이에게서 등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1월 29일 메이는 보수당 내 “하드 브렉시트”파 쪽으로 기울었다. 남·북 아일랜드 국경 개방 문제에 관한 ‘안전장치’를 두고 재협상하라는 뜻을 수용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 딜 브렉시트’를 극구 거부하는 보수당 내 “소프트 브렉시트”파를 달래려 애썼다.

약점

메이 정부가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배경에는 메이의 심각한 약점이 있다. 그런데 그런 오락가락식 대응은 소득이 없었다.

중립적으로 보이게 포장됐던 [이번] 정부안은 ‘안전장치’ 문제에서 타협점을 도출하기 위한 유럽연합(EU)과의 협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2019년 1월 29일 하원에서 통과된 [메이 정부가 제시한] 유럽연합 탈퇴 방식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다고 했다.

그러나 1월 29일에 하원에서 통과된 정부안에는, ‘안전장치’ 관련 내용을 두고 정부가 유럽연합과 재협상에 나서라는 내용뿐 아니라, 하원은 ‘노 딜 브렉시트’에 반대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1월 29일에 통과된 안이 구속력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보수당 내 의견 그룹 유럽연구회(ERG) 소속 일부 의원들은 메이 정부가 1월 29일에 통과된 안의 입장을 2월 14일에 확인까지 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봤다. 유럽연구회는 강경 “하드 브렉시트” 입장으로 유명한 하원의원 제이콥 리스-모그와 빌 캐시 등과 연계된 그룹이다.

14일 표결 직전에, 유럽연구회 소속 의원들은 투표를 기권하기로 결정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번 표결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하원에서 브렉시트 합의 개정이 지지받을 수 있음을 유럽연합 측에 입증해 보이려던 메이의 시도는 확실히 타격을 입었다. 메이는 국정 장악력을 상실했다.

보수당에게는 뚜렷한 방안이 없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예정일인 3월 29일이 다가오고 있다. 대기업들은 합의가 잘되든지 아니면 영국이 유럽연합을 아예 탈퇴하지 않든지 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2월 14일 표결 후 사용자들의 로비 단체인 영국 판 전경련 CBI의 의장 캐롤라인 페어베언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오늘도 정치가 실패했고, ‘노 딜 브렉시트’라는 혼돈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정치인들은 영국 경제를 지킬 합의를 이뤄 내야 한다. 실패는 용납할 수 없을 일이다.”

그러나 메이가 보수당을 단결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을 유럽연합은 들어 주지 않을 것이다.

협박

그러나 노동당 역시 심각하게 분열해 있다. [브렉시트 자체를 철회시키기 위한] 2차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노동당이 2차 국민투표 지지 입장을 채택하지 않으면 당을 쪼개 버리겠다는 협박도 한다.

[2차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노동당 하원의원 닐 코일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브렉시트 문제를 놓고 수많은 당원이 탈당하고 있다. 기초의원들이 그만두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탈당할 것이다.”

자신 같은 사람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계급 대중 입장에서 보면 “소프트 브렉시트”든, “하드 브렉시트”든, “노 딜 브렉시트”든 잘못된 선택이다. 대부호들을 이롭게 하고 노동계급 대중을 공격하는 보수당의 긴축 정치, 인종차별 정치에 기초해 있다면 세 안 모두 나쁜 결과이다.

좌파는 긴축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브렉시트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전망은 신자유주의적 유럽단일시장을 거부하고 이주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

노동당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파업과 시위를 호소해 보수당의 위기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그래서 노동계급 사람들은 답답해 하며 구경꾼 신세로 방치돼 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교착 상태를 타개하는 최선의 방법은 거리·일터·대학에서 메이 정부와 보수당을 몰아낼 저항을 건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