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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위기:
중대한 갈림길에 서다

베네수엘라 우파의 정권 탈취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국이 중대한 갈림길로 들어서고 있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국회의장 후안 과이도는 미국이 제공한 ‘인도적’ 지원 물품을 2월 23일을 기해 국내에 반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과이도는 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와 그 전임자인 우고 차베스) 정부 하에서 베네수엘라가 가난해졌다며, 서방의 ‘인도적’ 지원을 받아 낼 수 있는 자신이야말로 정당한 통치자라고 내세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매점매석과 투기를 일삼으며 베네수엘라 경제의 파탄에 일조한 우파가 ‘인도주의’ 운운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다.

우파가 미국의 물품 반입에 성공한다면 마두로 정부는 국경 통제력을 잃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친미 우파가 지배하는 콜롬비아의 무장 세력들은 베네수엘라 우파와 연계해 잔혹한 폭력 행위와 테러를 저질러 왔다.

물품 반입이 저지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충돌을 빌미로 미국을 필두로 한 열강의 공세가 마두로 정부에 퍼부어질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베네수엘라 우파의 정권 탈취 시도를 계기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정부의 씨를 말리려 으르렁대고 있다.

트럼프는 2월 18일 마이애미에서 베네수엘라 출신 미국인들을 상대로 연설하며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니카라과·쿠바에서도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앞날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남았다”고 을러댔다.

2월 18일 마이애미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출처 백악관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군부도 공격했다. “그들이 누군지 알고 그들이 숨긴 돈을 어디에 보관하는지도 안다. … 과이도 대통령의 사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트럼프는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인정한다.)

2월 15일 미국 재무부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 사장이자 군 장성인 마누엘 퀘베도와 베네수엘라 국정원장, 경찰청장, 대통령 경호대장 등 베네수엘라 핵심 인사들에 경제 제재를 가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대개 미국의 제재 대상인) 군부 핵심 인사들은 대개 우고 차베스가 1997년에 창당한 정당 ‘제5공화국운동’(MVR) 출신으로, 차베스-마두로 집권 20년 동안 군부와 여당 베네수엘라통합사회주의당(PSUV) 주요직을 거쳐 왔다. 이들은 대중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고, PDVSA를 비롯해 광업·운송·항만 등 베네수엘라 경제의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는 사실상 반동적 쿠데타를 부추기며 치킨게임을 걸고 있다. 트럼프의 위험한 게임 때문에 수천만 베네수엘라 대중은 백척간두로 내몰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베네수엘라 우파를 지지한 데다 이런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수상까지 옹호한 것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위험한 치킨게임

트럼프 정부는 라틴아메리카 우파 정부들과 손잡고 외교적 압박도 강화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미주기구(OAS), 리마그룹 등 역내 외교 테이블을 “핑크 물결” 좌파 정부 집권 당시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브라질 극우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여기에 적극 보조를 맞추며 라틴아메리카 우파 정부들을 결집해 베네수엘라를 압박하고 있다. 2월 20일 보우소나루 정부는 미국의 물자 반입 예정일인 23일에 맞춰 브라질-베네수엘라 국경을 통해서도 ‘인도적’ 지원 물자를 반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민주당도 마두로 정부를 “도둑 정부”라고 부르며 외교 압박과 추가 경제 제재로 마두로를 권좌에서 축출하는 것을 지지한다. 향후 몇 주 동안은 “군사 개입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지만 말이다(2월 14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 엘리엇 엥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중시한다는 면에서는 트럼프와 민주당은 이해를 공유한다.

지금까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제멋대로 하지 못했던 것은, 부분적으로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긴장 관계 때문이기도 했다. 우파의 정권 탈취 시도 초기부터 러시아와 중국은 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지지해 왔다.

그러나 본지가 지적했듯(관련 기사: ‘베네수엘라 쿠데타 사주하는 미국: 그러나 중국은 믿을 수 있을까?’), 한 편의 제국주의를 다른 편의 제국주의로 견제할 수 없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중국이 과이도와 협상 중이라는 2월 12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가짜 뉴스”라고 비난한 지 나흘 후, 과이도 자신이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러시아 측과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17일에 러시아의 주요 은행 가즈프롬방크가 PDVSA 보유 계좌를 동결했다.

정국이 분수령으로 치닫는 지금,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의 잇속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대륙에서 가장 반동적인 친미 우파가 마두로를 몰아내고 집권하면 그나마 남은 친서민 개혁이 모두 회수되고 잔혹한 탄압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계산에 들어 있지 않다.

브라질의 좌파 개혁주의 정당 사회주의와해방당(P-SoL)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당들은 14일 공동 성명을 발표해 평화협정을 호소했다. 긴장이 고조돼 있고 양측의 의지가 명확히 충돌하는 지금 상황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고픈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으로 시간을 조금 벌더라도, 베네수엘라 우파와 미국 제국주의는 그 시간을 다음 번의 더 잔혹한 공세를 위한 채비에 쓸 것이다. 차베스 집권 이래 20년 동안 늘 그랬듯이 말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적 좌파 단체 ‘사회주의 물결’은 2월 19일에 성명을 발표해, 제국주의의 간섭을 규탄하고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호소했다. 베네수엘라 대중의 힘으로 우파 쿠데타를 저지하고 진정한 변화를 쟁취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