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5일 정부·여당과 유가족,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이하 시민대책위)는 김용균 씨 사망 대책에 합의했다. 그리고 김용균 씨가 사고로 죽은 지 62일 만인 2월 9일 장례를 치렀다.

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시민대책위가 요구한 진상규명위원회 구성과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하는 발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유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2인 1조 시행·적정 인원 충원 등이다. 운전 업무의 ‘정규직 전환’은 발전사 직접고용이 아니고 공공기관(그 성격과 수준은 차후 논의로 남음)을 만들어 전환하는 방식이며, 경상 정비 업무를 하는 발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성취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협상을 담당했던 공공운수노조는 “결과가 미흡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사람들도 합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김용균 사망 항의 운동(이하 항의 운동)을 요구의 성취 여부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공평한 평가일 것이다. 이에 지난 두 달 간 벌어진 항의 운동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고자 한다.

스물네 살 비정규 청년 노동자의 끔찍한 죽음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겨 줬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약속을 파기한 것이 직접적 원인의 하나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항의 운동 초기부터 김용균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등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운동은 문재인 정부의 우경화와 개혁 배신에 분노한 노동자들을 대변했다.

이처럼, 조직된 노동자들이 운동의 초기 구심을 이룬 것은 장차 운동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취업난에 시달리다 열악한 일자리를 얻고, 이윤 논리에 의해 위험한 작업 환경에 내몰린 젊디 젊은 청년의 죽음은 자본주의 이윤 체제의 비정함도 들춰냈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속한 조합원들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광범한 노동자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김용균의 죽음을 보며 끊임없이 벌어지는 산재 사망, 세월호 참사, 구의역 청년 노동자의 죽음, 제주도 청소년 실습생의 죽음 등을 떠올렸다.

조직 노동자들로 시작한 항의 운동이 이러한 광범한 노동자들과 청년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면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의 개혁 배신과 우경화 행보에 잠시 제동을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항의 운동은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하지 못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

문재인 정부는 사고 초기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말뿐이었고, 구체적인 대책은 없었다.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우파 야당도 받을 만큼 누더기가 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런데 항의 운동을 이끈 민주노총 지도부와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는 산안법 개정안이 재계와 우파의 반발에 밀려 대폭 후퇴했는데도 이를 비판하지 않았다. 이조차도 통과되지 못할 것을 염려했던 듯하다.

노조 지도자들은 흔히 '노동조합은 경제투쟁을 하고, 정치투쟁은 정당이 한다'는 식의 정경 분업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처럼 노동조합의 구실을 경제투쟁으로 제한하면 개혁입법 같은 '정치적' 문제에서 의회 내 세력 관계에 끌려다니는 일이 벌어진다. 특히, 현재 진보 정당이 의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다 보니 민주당과 협력(실상은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수세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정의당 같은 진보 정당도 정부안에 충분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이 점을 파고든 문재인은 2018년 12월 27일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곧바로 유가족 만남을 제안했다. 항의 운동의 과녁이 정부·여당에게로 향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속셈이었다.

다행히 노조 지도자들은 문재인의 만남 제안에 바로 응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김용균의 동료들은 자신들에게 해당사항이 없는 산안법 개정안을 ‘김용균 법’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은 산안법 개정안이 친정부 언론들이 규정한 ‘외주화 방지법’도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 개최된 시민대책위 주최 추모집회(12월 29일)는 규모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조금 더 늘어났다. 참가자들의 다수는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었다.

NGO 지도자들과 달리 노조 지도자들은 기층 노동자들의 불만을 간단히 외면할 수 없다. 반면, 뒤늦게 운동에 참여한 참여연대 출신 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과 NGO 친화적인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 등은 공공연하게 문재인과의 만남을 촉구했다. 이들은 항의 운동이 정면으로 문재인 정부를 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듯하다. 

참여연대 같은 주요 NGO들과 친정부 언론들은 처음부터 정부측 개정안을 대단한 개선인 양 포장했다. 그들은 정부측 개정안을 ‘외주화 방지법’이자 ‘김용균 법’이라고 불렀다. 산안법 개정안 통과 당일과 그 이튿날 180도 달라진 유가족의 태도는 누군가 유가족에게 산안법의 약점을 애써 숨겼음을 짐작하게 했다. 

노조 지도자들은 주요 NGO들의 개혁주의 지도자들과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에는 약점을 드러냈다. 소속 조합원을 훨씬 넘어서는 광범한 노동자·청년들을 운동에 참가시키려면 정부와 체제를 폭로하며 관련된 다른 쟁점들과 연결시켜야 했다. 최저임금 개악, 탄력근로제 강행, 구조조정 등 광범한 노동자들의 조건이 달린 현안만 해도 꽤 많았다. 때마침 친문 실세인 김경수 구속 등 정치 위기가 더해져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추락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연결짓기가 가능하고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은 오히려 쟁점을 축소했다. 정규직화 요구 대상 문제에서도 김용균 씨가 속한 공공부문에서 발전 부문으로 중간에 축소했고, 최종으로는 발전 중에서도 운전 분야로 후퇴했다. 부문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또한, 노조 지도자들은 정치적 성격을 띠는 이 운동에 민중주의적 방식으로 대처하려 했다. NGO 인사를 대책위 지도부로 끌어들였다. 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을 주요 직책에 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등장한 뒤 NGO들은 이 정부와의 투쟁에 참가한 적이 없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 때문에 NGO들은 진지하게 이 운동에 뛰어들지도 않았다. 

또, 매주 개최되는 추모 집회도 ‘시민’들이 편안하게 참가할 수 있도록 정부에 대한 항의와 규탄보다 추모에 강조점을 두려 했다. 그러나 이는 추모의 이유와 목적을 흐려 버려, 항의 운동의 급진성과 전투성을 삭감시켜 오히려 운동의 성장을 방해할 뿐이었다. 

이는 같은 시기에 열린 ‘불편한 용기’ 주최의 몰카 반대 운동이 문재인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수만 명이 참가하는 대중 집회를 개최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불편한 용기의 급진성은 문재인의 개혁 포기에 대한 대중의 배신감과 분노를 표현하는 구실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좌파의 구실이 중요하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약점을 넘어서면서, 민중주의가 아닌 좌파적 대중 운동으로 발전하도록 해야 했다. 조직 노동자들뿐 아니라 체제에 불만 있는 미조직 노동자와 청년 들까지 이 운동에 적극 동참시키기 위해 분투했어야 했다.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처럼 자본주의 하의 냉혹한 현실에 불만을 느끼는 모든 이들을 모아내려 해야 했다.

실제 자본주의 이윤 지상주의와 차별(단지 비정규직뿐 아니라 다른 여러 형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항의 운동에 동참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물론 이를 위해 좌파는 지역과 현장에서 항의 운동이 확대·강화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좌파는 노동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되 노동조합과 그 지도자들의 약점도 알아야 한다. 

퇴적물

그럼에도 항의 운동은 몇 가지 퇴적물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의 우경화와 개혁 배신에 맞서 여성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항의가 분출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이 과정에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과 조직(노조)의 근육을 단련시켰다. 최성균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지부장은 이번 투쟁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예전에는 노동조합 없이 당했었다. 지금은 노동조합도 있고 투쟁도 해 봤다. 옛날처럼 정부 정책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다.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의 전환 방식, 경상 정비 업무의 전환 여부 등 정규직 전환 쟁점이 있고 위험한 작업 조건 개선 등 노동자 안전 확보도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미해결 문제는 물론, 김용균 씨 죽음이 비정한 자본주의 체제 논리에서 기인했다는 점이 조금씩 각인될 수 있다. 이 문제와 별개로 문재인의 정치 위기도 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가 개혁을 계속 배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또 다른 저항이 다시금 벌어질 수 있다.

항의 운동에 참가했던 우리 좌파들은 이 운동의 교훈을 되새겨, 앞으로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정치 투쟁을 심화·확대시킬 수 있도록 분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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