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대한민국 100년” 띄우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만이 아니라 각 지자체의 기념 사업, 기업들의 마케팅에도 반영되고 있다. 임시정부 수립일(4월 11일)의 임시공휴일 검토 소식도 들려온다.

집권 첫해인 2017년 12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중국 충칭의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해서 문재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뿌리입니다. 대한민국의 법통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우리는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보고 있습니다. 2019년이면 3·1운동 100주년이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고, 그것은 곧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됩니다.”

또한 현 여권은 단지 100주년만 겹치는 게 아니라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연결된 하나의 사건으로 본다. 지난해 3·1절 99주년 기념식에서 한 대통령 기념사를 보자.

“3·1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독립선언서에 따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었습니다. … 임시정부의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이며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명백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되었습니다. 왕정과 식민지를 뛰어넘어 우리 선조들이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이 바로 3·1운동이었습니다.”

“민주공화국”

여기에서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 말하지 않은 걸 덧붙이면, 민주당이 바로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세력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김구 노선의 임시정부 계승을 표방해 왔다. 1955년에 창당한 민주당의 첫 대통령 후보가 충칭 임시정부 내무부장 출신인 신익희였다. 제헌 헌법과 현재의 헌법(1987년 개헌)은 대한민국이 3·1운동을 계승하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인식의 귀결로 제시되는 것 중 하나가 3·1운동을 “3·1 혁명”으로 부르자는 것이다. 이른바 “3·1운동 정명(正名, 이름 바로 짓기)” 운동이다. 국무총리실, 민주당 당대표 이해찬 등 여권 핵심부가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운동이 민주공화주의를 지향했다는 주장, 운동의 거족적 규모, 임시정부와 이승만 등도 이미 3·1운동을 그렇게 호명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3·1혁명”론은 일종의 민주당 주도 버전의 항일 민족주의 운동(서구에서 일종의 ‘부르주아 혁명’ 구실을 하는)의 서사를 창조하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 스토리에서 대한민국을 기획한 건국 세력이며, (민주공화국으로서의) 한국 국가의 형성을 역사적으로 대표하는 세력이다.

위선 민주당은 당내에 “3·1운동·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민중 봉기와 여당 권력자들의 태극기 흔들기 퍼포먼스는 어울리지 않는다. ⓒ출처 민주당

그래서 이는 이명박과 박근혜 우파 정부 하에서 추진됐던 1948년 건국절(8월 15일) 담론에 대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파의 1948년 건국론은 한국 국가가 1948년 냉전 경쟁의 한복판에서 미군정 도움으로 수립됐다는 것이다. 친미·친시장경제 노선, 냉전 반공주의와 권위주의 통치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였다. 이 경우에는 한국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기원도 1948년에 이식된 제도들(3권 분립, 보통선거권 등)에서 찾게 된다.

정리하면, 민주당의 “대한민국 100주년” 캠페인은 “대한민국 중심정당”이 되려는 포퓰리즘 프로젝트이다.

통념상 3·1운동은 민족적 화합과 단결을 연상시키는데, 이 캠페인의 결론은 그 단결의 구심이 민주당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포퓰리즘은 문재인 정부가 공들여 온 남북화해 노선이나 사회적 대화 노력과도 연결된다. 공식정치 안에서 민주당의 주요 경쟁자인 한국당과 우파를 친일 계승 세력으로 치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3·1운동은 민주당의 전유물이기는커녕 위대한 민중 저항의 전통이자 아래로부터의 봉기의 역사다.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3·1운동 참가자 규모는 최소 100만 명에서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한반도 인구가 1600만 명이었으니, 전 인구의 10분의 1이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해 민족해방 항쟁에 나섰던 것이다.

이 위대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민중항쟁은 그 규모와 격렬함, 아래로부터의 동원이라는 성격 때문에 이후 한국 사회주의 운동, 노동운동의 젖줄이 됐다.(그래서 운동 안에서 표출된 민주공화주의 이념은 지금의 헌정 체제보다 실천적으로 훨씬 더 급진적 함의를 담고 있었다.)

반대로 임시정부는 갈수록 편협해진 우익적 성격과 분열, 부패 등으로 3·1운동 계승을 말하기엔 걸맞지 않고, 후세대가 보고 배울 (긍정적인) 것도 별로 없다.

반자본주의적·반제국주의적인 노동자 대중 운동을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늘날 후세대로서 3·1운동을 진정으로 기념하고 계승하는 일일 것이다.

위선 프로젝트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정권 전복 시도 등을 지지해 온 민주당이 반제국주의 운동을 계승한다는 것도 남사스럽다.

민주당에게는 민주주의와 반()우파 전선에서 일관됐던 역사도 없다. 애써 구속시켰던 전두환·노태우를 풀어 주고 대접해 준 게 김대중·노무현 정부였다. 그래서 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의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직 제명을 진지하게 추진할 것 같지도 않다.(김경수·서영교·손혜원 등이 국회 윤리위 징계 대상으로 돼 있어서 더욱 그렇다.)

오히려 민주당은 지배계급의 제1선호 정당이 되기 위해 자신들이 한국당보다 효율적인 친기업 정부임을 입증하려고 노력해 왔다. 노골적인 자본주의 정당들 간의 협치를 강조해 온 것도, 박근혜가 못한 신자유주의 규제 완화와 노동 개악을 강행 처리한 것도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었다.

이른바 ‘민생법안(탄력근로제 확대 개악, 최저임금 결정 이원화 개악 등 친기업 법안들의 코드명)’ 처리를 위해 빨리 임시국회를 여는 데 협조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도 민주당이다.

따라서 진보 정당들이 민주당의 위선적인 반()우파 캠페인에 무비판적으로 동조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불가피하게 반(反) 우파 공조를 할 때조차도,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적 위선에 속지 말아야 한다.


논지를 좀 더 매끄럽고 분명히 하려고 단락 순서를 조금 바꾸고 몇몇 문구를 첨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