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영국에서 결혼한 동성 부부가 한국 정부도 자신들의 결혼을 인정해 달라고 낸 진정을 각하했다. 이 진정이 인권위의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인권위는 자신들이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동성 결혼에 대한 “정책적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가 윌리엄스 씨의 ‘동성 부부의 결혼이민’ 인정 진정을 각하한 공문 ⓒ사진 제공 사이먼 헌터 윌리엄스

이 진정을 낸 윌리엄스 씨는 2015년 영국에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합법적으로 부부가 됐다. 국내법상 외국인이 내국인과 결혼하면 결혼이민 자격을 얻는다. 결혼이민 비자를 얻으면 국내 취업에 제한이 없고, 2년 이상 한국에 체류하면 영주 자격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윌리엄스 씨는 배우자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결혼이민 비자를 받을 수 없었다. 지난해 그는 문재인에게 청원서를 보내 “아이도 (입양해) 기르면서 정착하고 싶은데, 부부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면 의료보험 문제로 병원조차 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자신들의 결혼 인정을 간절히 호소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혼인은 기본적으로 남녀의 결합관계”라며 이 호소에 ‘불가’를 통보했다. 박근혜 정부가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낸 혼인신고서 수리를 거부했을 때와 똑같은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이전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입장을 취해 왔다. 유엔인권이사회의 각종 권고 무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국가인권기본계획(NAP)에서의 성소수자 인권 항목 삭제 등. 이 정부에서 성소수자 차별 개선은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다.

인권위의 이번 ‘각하’ 결정 역시 문재인 정부의 이런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인권위가 아무리 ‘각하’가 진정의 내용을 부정하는 ‘기각’과 다르다고 강조해도, 각하 결정은 윌리엄스 씨의 호소를 차갑게 외면하며  동성애자 차별에 침묵한 것이다. 명백한 차별에 대해 인권위가 권고(강제력이 없어서 사실상 입장 표명이다)조차 내리지 못한다면 그 존재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게다가 인권위가 말한 “사회적 합의”는 문재인 정부가 우파의 눈치를 보며 성소수자 차별 개선 요구를 무시할 때마다 줄곧 써 오던 화법이다. 즉, 성소수자 차별 개선을 돌아오지 않을 “나중”으로 미루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이런 점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몇몇 자유주의 언론들이 인권위의 각하 결정을 비판하기보다 인권위의 동성 결혼 “향후 논의” 언급을 전향적인 것처럼 사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인권위 가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회피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바 있고 취임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중요하게 언급하는 등 여성·성소수자 인권을 강조해 왔다. 최근엔 인권위 산하에 ‘혐오차별 대응 특별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는 분명 민주당의 주류 인사들보다는 나은 입장이다. 이 때문에 성소수자 단체를 포함한 많은 인권 엔지오들이 그를 지지한다.

그러나 동성 결혼 인정을 외면한 이번 결정은 문재인 정부와 국가인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성소수자 운동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