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고 박선욱 간호사의 사망이 업무상 스트레스와 인과관계가 있었다며 산재 인정 판결을 내렸다. 아산병원에서 일하던 박선욱 간호사는 2018년 2월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던 상황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주축이 돼 행동하는 간호사회, 간호사연대, 보건의료단체연합, 노동자연대 등 노동조합 안팎을 아우르는 여러 노동·사회 단체들이 대책위(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유가족과 대책위는 고 박선욱 간호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과도한 노동강도와 병원 측의 의료사고 책임 전가 등과 연관돼 있다고 보고 병원 측에 진상조사와 사과 등을 요구했다. 유가족도 병원 측의 냉담한 태도에 크게 상처를 받았지만, 아끼던 딸이자 조카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일념 하에 1년 넘게 병원 측의 사과를 요구하며 싸워 왔다.

아산병원 정문 앞에서는 매주 일인시위가 벌어졌고, 간호사의 날, 박선욱 간호사 1주기 등 중요한 날에는 집회도 열렸다. 이 과정에서 의료연대본부 등 노동조합의 뒷받침이 매우 중요했다. 이런 압력 때문에 서둘러 내사를 종결하려 했던 경찰 측도 추가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그동안 대책위와 유가족이 주장해 온 바가 대부분 사실임을 인정했다.

“고인은 짧은 교육기간과 충분하지 않은 교육내용으로 업무가 미숙한 상태에서 중환자 간호업무를 맡게 되었고 … 직장내에서의 적절한 교육체계 개편이나 지원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자기 학습과정에서 일상적인 업무내용을 초과하는 과중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여[진다.]”

3월 24일 아산병원 앞에서 열린 집회 ⓒ출처 고 박선욱 공동대책위

산재 인정 판결이 난 만큼 아산병원 측은 당장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책임 있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은 이번 판결을 발표하며 고 박선욱 간호사가 “매우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표현을 써 박선욱 간호사의 사망이 마치 개인적 문제에서 비롯한 것인양 왜곡했다. 심지어 그런 표현은 업무상질병판정서에도 없는데 사용한 것이다. 그동안 이 사건을 개인 성격 문제로 덮어 버리려 한 아산병원 측의 압력이 작용한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대책위 측은 근로복지공단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항의하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많은 간호사들이 이번 산재 판정 결과를 보며 자신들의 조건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병원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어떤 실질적 조처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기는커녕 병원 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킬 의료 영리화 정책을 추진하고, 전체 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킬 탄력근로제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간호사들을 포함한 병원 노동자들이 스스로 싸워서 자신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만이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대책위도 이번 산재 인정 판결이 그런 투쟁의 밑거름이 되도록 할 것임을 밝혔다.

아산병원은 즉각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하라. 문재인 정부는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인력확충 등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