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현대화폐론 비판:
돈만 찍어 내면 만사형통일까?

최근 한국에서도 정의당 일각이 ‘그린 뉴딜’을 제기하면서, ‘그린 뉴딜’과 한짝을 이루는 현대화폐론(MMT)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칼럼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에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현대화폐론(MMT)이란 무엇이고 왜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최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경제학파에 관한 논의가 불붙어, 〈뉴욕 타임스〉에서 〈자코뱅〉[좌파적 개혁주의 경향의 미국 언론]에 이르기까지 여러 언론이 관련 논의를 다뤘다.

현대화폐론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것은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자 민주사회주의당DSA 당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였다. 민주당 내 좌파인 오카시오-코르테스는 2018년 11월 중간선거 때 [경선에서] 민주당의 보수적인 기성 정치인을 꺾고 뉴욕에서 출마해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의회 입성 직후 ‘그린뉴딜’ 법안을 발표했다. 이 법안은 개혁 과제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공공사업 계획 등 방대한 내용을 담았다. 당연히, 주류 정치인들은 매년 약 6조 6000억 달러로 추산되는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자문단은 현대화폐론을 거론하며 응수했다. 이 이론은 근본적으로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학설에 근거한 이론이다. 케인스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경제학계를 지배하는 자유시장주의 정설, 특히 경제를 자유방임하면 완전고용이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는 가설에 도전했다.

“그린 뉴딜”을 발표한 오카시오-코르테스 ⓒ출처 Senate Democrats

케인스는 완전고용이 보장되려면 국가 개입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현대화폐론 지지자들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화폐는 국가가 특히 국민에게 조세 지불 수단을 제공하기 위해 창출하는 것이다. 이 말은 국가가 세금을 걷거나 돈을 빌릴 뿐 아니라 돈을 새로 찍어 내서도, 국가의 경제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얼마든지] 스스로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측의 주장이 옳다면] 미국 정부는 그린뉴딜을 위한 재원을 바로 이런 방식으로 조달하면 된다.

거의 모든 조류의 경제학자들이 이런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돈이 너무 많이 풀리면 물가 상승이 심해질 것이라며 말이다. 현대화폐론 지지자들도 말이 다소 오락가락하기는 하지만 그런 지적은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추가적 재정지출을 통해 생산을 충분히 증가시킨다면 물가가 더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화폐론에는 두 가지 난점이 있다. 첫째, 현대화폐론은 국가가 화폐를 창출한다는 생각을 주류 신자유주의 경제학과 공유한다. [물론] 신자유주의자들은 화폐가 너무 많아지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본다. 반면 현대화폐론 지지자들은 화폐를 충분히 창출하면 완전고용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전제 자체가 틀렸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수록 신용 체계를 통해 화폐가 창출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은행에서 대출이나 초과 인출이 일어날 때 화폐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케인스 자신은 통화 공급이 아닌 통화 수요가 중요한 것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달리 말해 보자. 노동자와 자본가는 각각 소비와 투자에 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빌린다. 이렇게 화폐가 창출되는 과정을 승인하는 주체는 바로 국가다. 그렇지만 국가는 화폐 창출을 통제하지 못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부는 1980년대에 화폐 공급을 통제하려 애썼지만 완전히 실패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화폐 창출이 반드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업들이 투자할 생각이 없다면, 화폐가 새로 창출되더라도 없던 투자 의지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현대화폐론의 둘째 난점이다.

마이클 로버츠가 지적하듯이, 현대화폐론은 노동자가 생산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무시한다. 자본가는 이윤이라는 형태로 이 가치의 일부를 차지한다. 만약 이윤이 충분치 않다면, 새로운 화폐가 얼마나 있든 간에 자본가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현실의 예로는, 금융 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몇 년간 펼친 양적완화 정책이 있다. 그들은 양적 완화 정책을 펴 새로 창출한 화폐를 은행들에 투하했다. 이 정책으로 금융 시스템은 안정됐지만, 새로운 경제 성장의 시동을 걸지는 못했다. 또, 일각의 신자유주의적 예측과 달리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지도 않았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 회복 속도가 너무도 느려, 각국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려다 다시 후퇴하고 있는 지경이다. 이는 마이클 로버츠와 동료 연구자들이 최근 출판한 《위기에 빠진 세계》에서 보여 줬듯이 이윤율이 여전히 낮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현대화폐론은 그 기원이 되는 케인스주의 학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에 대해 무지하다. 그 본질은 바로 생산 현장에서의 갈등적 가치 창출 과정인데, 궁극적으로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투쟁을 가리킨다. 이 과정이야말로 체제를 조절하는 변수인 이윤율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이윤율이 너무 낮으면, 화폐를 활용한 계략을 써도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