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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에 대한 과세 증액

부유층에 대한 과세 증액

  조승희

 지난 7월 29일 정부는 계층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봉급 생활자의 소득 공제 한도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주당 정책위 의장 이해찬은 '소득격차 완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며 "앞으로는 소득 격차를 보정하는 데 무게 중심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이 조치는 분명 저소득층에 대한 양보다. 일종의 소득 재분배 조치다. 세금 계산시 총급여에서 빼 주는 항목을 늘릴수록 노동자들의 세금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양보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기업주들의 세금도 낮추라는 압박이 시작됐다.

 세제 개편 움직임이 보이자 지난 2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재빨리 법인세율과 소득세 최고 세율을 대폭 내리라고 요구했다. 또, 대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액에 대한 세금 면제 부활 등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한나라당도 사장 계급의 요구를 지지했다.

 재경부는 법인세 인하 요구가 빗발쳤던 다음 날 "과도한 가산세와 가산금은 낮추는 방향으로 세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또, 재경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소득세율을 인하할 뜻을 비치며 "형평성을 고려해 근로소득자는 물론 사업소득자에 이르기까지 전 소득계층을 대상으로 인하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체 소득계층에 세율을 인하하면 진정으로 득을 보는 것은 고소득자들이다.

 세제발전심의위원회는 급기야 부동산 양도소득세 인하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부동산 양도소득세를 낮추면 부동산 투기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대신 보유세를 높인다지만 "보유세 강화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어 당장 추진이 쉽지 않"아 사실상 부동산 소유자들은 별반 불이익을 겪지 않을 거라고 정부는 부자들을 안심시켰다.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세금 제도를 바꾸겠다고 발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김대중 정부는 야당과 기업주들의 반발에 밀려 오락가락 좌충우돌이다.

누더기

 한편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가 발표되자마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김만제는 "이미 공제받는 항목이 10여 가지나 되는데, 툭하면 선심용으로 발표해 누더기로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며 즉각 반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말하는 것처럼 그 동안 김대중이 노동자들에게 선심을 썼는가? 사실은 정반대다. 김대중이 선심을 베푼 대상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부자들이다.

 김대중의 세금 정책은 부자들이 더 많은 재산을 불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1999년 대기업과 대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 적용 범위를 축소했고 지주회사의 배당 소득에 대한 세금 면제 범위를 넓혔다.

 김대중이 집권하자마자 한 일은 금융소득종합과세 시행 유보였다. 고소득자들의 이자 소득이 조세망에서 쉽게 빠져 나가도록 길을 터 준 것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의 이자소득에 대한 세율은 최고 44퍼센트에서 24.2퍼센트로 줄어 세 부담이 20퍼센트나 줄었다. 그 바람에 약 4천억∼5천억 원이 세 부담에서 면제됐다. 이 돈은 서민층의 부담으로 메워졌다. 서민층의 경우 이자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 세율이 올라 서민들의 세 부담은 1조 6천억∼7천억 원이나 더 늘었다.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들이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재시행을 줄기차게 요구하자 정부는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시행한다 해도 종합과세 납부는 2002년 5월에 가서야 이뤄진다. 결국 김대중 정부는 집권 동안 어떻게든 부자들의 반발을 면하려고 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부자들에게 각종 세금을 내려 준 다음, 부족한 세수를 조세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비세를 인상함으로써 메우는 방법을 자주 동원했다. 소비세(간접세)의 증가는 세금 역진성을 더욱 부추겼다. 1999년 최하위소득 10퍼센트 계층이 낸 연간 소비세는 61만 7천 원으로 소득세 4만 5천 원의 13.7배나 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다. 지난 20년간 소비세는 11.3배나 늘었다.

 소비세는 부유층보다 서민에게 더 부담이 되는 세금이다. 노동자들은 담배 한 갑을 사도 기업주들과 똑같은 액수의 담배 소비세, 교육세, 부가가치세를 내야 하고 맥주 한 병을 마시려 해도 부자들과 똑같은 액수의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를 내야 한다. 노동자가 어렵사리 1,500cc짜리 소형차를 사면 해마다 21만 원의 자동차세가 부과된다. 그런데 시가 4억 원짜리 아파트에 부과되는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는 연간 24만 6천원에 불과하다. 4억 원짜리 아파트 소유자와 1백만 원짜리 중고 소형차 소유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똑같은 것이다.(참여연대 조세개혁팀, 《유리지갑 홍대리의 세금이야기), 한겨레신문사.)

합법적 조세망 탈출

 더욱이 부자들은 조세망을 요리조리 빠져 나갈 수 있는 합법적 탈출구를 누비고 있다.

 자영업자 가운데 64퍼센트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과세 미달자다. 한국조세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평균 과표 현실화율은 52.2퍼센트다. 소득액의 절반만 신고한다는 얘기다. 1999년 국민연금 확대 실시에 따라 신규 가입한 도시 자영업자 소득 신고액이 직장 가입자의 58퍼센트밖에 되지 않아 봉급 생활자들이 낸 돈으로 의사나 변호사 같은 고소득 도시 자영업자들의 연금을 대줘야 하는 기막힌 사태는 단적인 예이다.

 그뿐인가. 정치인들과 기업주들의 탈세는 말 그대로 복마전이다.

 2000년 총선 후보 가운데 3년간 납세 실적 1백만 원 미만인 입후보자가 전체의 34퍼센트였다. 게다가 3년 동안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낸 사람이 무려 1백77명이나 되는데 그 가운데는 1백억 원대의 재산가도 있다. 심지어 세비 7천2백만 원을 꼬박꼬박 받으면서도 근로소득세를 단 한 푼도 내지 않은 국회의원도 있다. 갓 서른이 넘은 삼성 재벌 3세 이재용은 변칙 증여로 겨우 16억 원의 세금을 내고 수조 원을 챙기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참여연대 조세개혁팀, 《유리지갑 홍대리의 세금이야기), 한겨레신문사.)

 수십년 간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여 온 언론사는 어떤가?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마다 '집단 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이며 경제가 어려우니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종용하던 바로 그 언론사주들의 탈루 소득총액은 1조 3천5백94억 원이다. 반면, 노동자들은 월급을 받을 때 회사에서 미리 세금을 떼기 때문에 소득이 1백퍼센트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지갑은 유리 지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부자들이 세금을 피해 재산을 감추고, 김대중이 베푸는 세금 감면과 비과세 세례를 흠뻑 만끽하며 호의호식할 때, 저소득층의 세 부담은 날이 갈수록 크게 늘었다. 지난 20년간 소득 최하위 10퍼센트 계층의 소득은 7.1배 늘었지만 세금 부담은 10.1배로 뛰었다. 반면, 최고소득 10퍼센트 계층의 소득은 6.7배 늘었지만 세 부담은 7.3배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소득 증가율에 대한 세 부담 증가 속도가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빨라진 것이다.(한국조세연구원, 〈도시가구 세 부담 변화 추이〉.)

'가죽 지갑'

 진정한 해결책은 하나다. '가죽 지갑'인 부유층의 세금을 대폭 올리고 '유리 지갑'인 노동자들의 세금을 대폭 낮추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경제 위기가 심각할수록 부자들의 감면 요구는 더 드세질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감세 열풍 역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김대중을 압박하는 요소일 것이다. 이미 미국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1조 3천5백억 달러를 감세하겠다고 했으며 2011년에는 상속세와 증여세를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한겨레〉, 6월 7일치.)

 문제는 노동자와 사장들 가운데 어느 계급이 더 강력하냐이다.

 민주노총은 얼마 전 근로소득세 인하를 주장한 바 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은 "조세제도 개혁 운동은 노동자들에게 임금 협상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참여연대 조세개혁팀, 《유리지갑 홍대리의 세금이야기), 한겨레신문사)고 옳게 지적한다. 만약 노동자 운동이 선전에서 그치지 않고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매기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지를 달라고 요구하며 진지한 캠페인을 시작해 대중적인 저항으로 발전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조세 개혁을 쟁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하층 중간 계급으로부터도 광범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최저임금 인상에도 반발하는 사장들

 

 지난 8월 5일 정부는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2.6퍼센트 인상해서 월 47만 4천6백원(시간 당 2천1백 원)으로 확정했다.

 12.6퍼센트 인상은 정부의 일련의 양보 조처와 맥락을 같이한다.

 최저임금에 허덕이는 극빈층은 노동부 통계보다 훨씬 많다. 노동부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20만 1천3백44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월 평균임금이 50만 원을 밑도는 노동자는 정규직 8만 명, 비정규직 1백91만 명이었다. 이 중 월 20만 원 미만인 비정규직 노동자만도 40만 명이다. 1999년 기준으로 가구 실질 소득이 85만 원도 안 되는 극빈층 가구는 전체의 17퍼센트로 1997년에 비해 2배 증가했다.

 2000년 10월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전국여성노조가 여성 일용직 노동자 5백2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전체의 22.9퍼센트, 60만 원 미만은 87.8퍼센트에 달했다.

 극빈층의 삶의 질이 실질적으로 향상되려면 최저임금은 더욱 인상돼야 한다.

 2000년 최저임금은 평균임금의 23.9퍼센트인 42만 원에 불과했다. 이 돈은 29세 단신노동자 실태 생계비(79만 원)의 절반 수준이다. 최저임금만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누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경총은 이번 최저임금 인상 결정이 '기업의 경영 여건을 악화시켜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영 여건 악화는 '높은 임금 인상' 때문만은 아니다. 그 동안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생산성에도 못 미쳤다. 1988~2000년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8퍼센트에서 12퍼센트로 상승한 반면, 최저 임금 인상률은 8퍼센트에서 4퍼센트로 오히려 하락했다.

최저임금 현실화의 필요성

 경총의 주장과는 반대로 오히려 최저임금은 더 인상돼야 한다.

 우리 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최저임금 영향률 역시도 최하위다. 1996년 기준 우리 나라의 최저임금 영향률은 2.4퍼센트로 미국 5.1퍼센트, 프랑스 11.0퍼센트, 멕시코 17.6퍼센트, 포르투갈 4.7퍼센트보다 낮았다.

 더구나 극빈층의 소득은 더욱 줄어든 반면 부자들의 소득은 더욱 늘었다. 지난 3년간 월 소득 4백95만 원 이상의 사람들의 소득은 55퍼센트 증가한 반면 월 소득 55만 원 이하의 소득은 17퍼센트 줄었다. 상위 20퍼센트와 하위 20퍼센트의 소득 격차는 1995년 4.76배에서 2000년 5.95배로 늘어났다(통계청 자료).

 생계도 유지하기 힘든 최저임금으로는 최저임금제의 본래 취지를 실현할 수 없다. 최저임금제 토론회에서 박진영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연구부장이 말했던 것처럼 "노동자들이 빈곤 상황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소득 불평등 문제가 더 심화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면, 빈곤층이 더 늘어나는 것을 막고자 한다면, 노동자가 실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최저임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차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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