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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무노조 신화 깬 신도리코 노동자들

2018년 6월, 신도리코 노동자들은 회사의 59년 ‘무노조 경영 신화’를 깨고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신도리코 본사와 계열사의 제조·연구·판매·수리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단결해 사측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 싸우고 있다. 본사와 판매 계열사에 근무하는 약 900명 중 220여 명이 금속노조 신도리코 분회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신도리코는 프린터·복합기 소모품 등을 제조·판매하는 회사로 한국에서 줄곧 복사기기 업계 1위를 차지해 왔다. 신도리코 회장 우석형은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는 경영 방침”을 자화자찬하며 노사분규 하나 없는 것을 자랑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신도리코는 오랜 세월 노동자들의 고혈을 뽑아 어마어마한 수익을 챙겨 왔다. 회사 현금 자산이 약 6500억 원에 달한다.

신도리코 노동자들은 초과근무수당 지급, 부당 전환배치 금지, 차량 유지비 지원,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며 수개월 동안 회사와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사측은 알맹이 없는 교섭으로 시간만 질질 끌며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단체협약 체결하라!" 외치는 신도리코 노동자들 ⓒ전주현
투쟁 결의 발언 중인 신도리코 노조 분회장과 부분회장들 ⓒ전주현

3월 18일, 신도리코 조합원들은 성수동 회사 본사 앞에서 “신도리코 단체협약 체결! 노조탄압 중단! 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지난 1월 31일 첫 경고 파업에 이어 두 번째 하루파업이었다.

제조·연구·판매 수리 업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전국에서 모여 처음으로 함께 파업 집회를 열었다. 조합원 150명과 연대 단체 50여 명이 참가해, 신도리코 사측과 회장 우석형을 강력 규탄하고 단체협약 체결을 촉구했다.

장시간 ‘공짜 노동’

신도리코는 오랜 세월 법도 무시하며 장시간 ‘공짜 노동’을 뻔뻔하게 강요해 왔다.

강성우 분회장은 이렇게 성토했다.

“신도리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연봉도 좋고 건실한 기업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2014년에 입사했는데 계속 주 70시간 이상 근무했어요. 야근 수당이요? 그런 거 모르고 죽도록 일만 했습니다.”

한규훈 부분회장도 끔찍한 장시간 노동 현실을 고발했다.

“저는 연구직종에서 일하는데, 3년 동안 주 100시간을 일한 적도 있어요. ‘아직 일 못 끝냈으면 마저 일하고 가야지’라는 [상급자의] 말 한마디면 다들 눈치보고 밤 12시까지 일한 적이 허다합니다. 이해가 안 되겠지만, 회사는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우리를 무시했어요.”

11년을 근무한 한 조합원도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3개월 연속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했어요. 3개월에 3~4번 쉬어 봤나? 최근 못 받은 수당을 3년치 정리해서 노조 임금 체불 소송에 참여했는데 제 것만 5000만 원이나 돼요. 억울하고 답답해서 노조에 가입했어요.”

신도리코 분회는 노동자들이 받지 못한 3년치 수당을 일부 정리해 11억 원의 임금 체불 소송을 걸어 놓은 상태다.

설치 및 수리 기사 노동자들도 장시간 ‘공짜 노동’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저는 전남, 제주 지역을 맡고 있는데 교통이 불편한 지방에서는 한 두건 일을 처리하면 하루가 다 지나가요. 하루 종일 외근 갔다가 사무실 와서 업무 처리하면 연장 근무는 기본이에요.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저녁 9시 넘어 일이 끝날 때가 많았지만 수당은 없었어요. 저녁 시간에 친구를 만나거나 운동하는 것은 꿈도 못 꾸죠.”

밥 먹듯 야근했던 노동자들은 수당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노조가 수당 없는 야근 문제를 제기하자 사측은 ‘강요한 적 없다’, ‘알아서 야근 한 것이다’, ‘출퇴근 시간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며 가당찮은 궤변을 늘어놨다. 불법적인 ‘공짜 노동’ 문제가 불거지자 사측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야근을 임시 중단했다.

그러나 이후에 사측은 취업규칙의 탄력근로 허용 조항을 근거로 내밀며 야근 강요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 조항에 따르면 탄력근로는 딱 2주 동안 주 8시간만 연장 근무가 가능하다. 오히려 그동안 장시간 ‘공짜 노동’을 강요한 사측의 위선만 탄로난 셈이다.

부당 전환 배치와 노동자 쥐어짜기

아산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어 불만이 매우 크다. 그래서 아산 공장 조합원 50여 명 전원이 2차 파업에 참여했다.

아산 공장에서 근무하는 방인식 부분회장은 사측의 행태를 폭로했다.

“현재 아산 공장에는 130여 명이 남아 있어요. 회사는 중국과 베트남에 제조 공장을 짓고 난 후 부당 전환 배치를 시키는 방식으로 퇴사를 압박했어요. 야금야금 구조조정을 하는 거죠. 현재 20여 명은 아산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시키는데 교통비를 주지 않아요. 일부 노동자들은 부산에 있는 판매 지사로 6개월씩 전환 배치를 시켰는데 숙소 제공도 안 해 줘요. 자비로 월세를 부담해야 돼요. 못 견디면 나가라는 겁니다.”

아산 공장의 열악한 작업 환경도 심각하다.

“공장에서 토너를 만들고 있는데 분진이 너무 심해요. 공기 중에 토너 가루가 뭉쳐 떠다녀요. 자판기에 토너 가루가 껴서 안 눌러지기도 해요. [토너] 분진을 피하며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돈이 든다는 이유로 회사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신도리코는 비용 절감을 위해 악랄하게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쥐어짰다. 지방에서 설치·수리 업무를 담당하는 한 노동자는 울분을 토하며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서] 일하려면 차가 필요하다고 구매를 강요해요. 어처구니없지만 빚내서 차를 사야 해요. 그런데 회사는 기름값, 통행료, 주차비만 주고 한 푼도 지원 안 해 줘요. 보험료, 엔질 오일 등 몽땅 자비로 부담해요. 회사 완전 쓰레기 아닙니까?”

김준한 부분회장은 차량 비용을 전가하는 사측을 꼬집었다.

“노조가 생기고 나서 불만을 진정시키기 위해 5만 원을 지원했어요. 근데 원래 하려던 거라고 해요. 장난 합니까? 월급이 겨우 최저임금 조금 넘는 수준인데, 보험료만 1년에 250만 원 나가요. 1년에 차를 최소 4만~5만 km 이상 타니깐 고장이 잘 나거든요. 수리비와 차량 유지비 빼면 남는 게 없고 월급이 줄줄 새 나가요. 차량 지원이 있는 대리점의 파트너 직원보다 나을 게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차량 지원비를 꼭 따내야 합니다!”

단결 투쟁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서자 사측은 가장 문제가 된 야근을 중단하고, 노조 눈치를 보며 부당 전환 배치도 잠시 보류했다. 또한 출장 지원비를 일부 인상하고 쥐꼬리만 한 차량 지원비를 지급했다.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변화에 자부심을 느꼈다. 또한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기류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노동조합 생기고 나서 함부로 야근하라는 말을 못 합니다. 이제는 퇴근 시간에 맞춰 딱딱 나갑니다.”

그러나 사측의 찔금 개선은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 염원에 턱없이 부족하다. 장시간 ‘공짜 노동’ 문제를 분명하게 해결하고, 온갖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투쟁을 전진시켜야 한다.

현재 사측은 노동자들의 요구가 너무 많다며 단체협약 체결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또한 눈엣가시처럼 여긴 강성우 분회장을 징계로 협박하며 노조 탄압에 시동을 걸고 있다.

강성우 분회장은 사측의 기만적인 꼼수를 경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회사는 뒤로는 요구를 일부 들어주는 척하지만, 표면적인 제스처일 뿐입니다. 우리 요구를 명문화해야 합니다. 우리 투쟁이 흐지부지되면 회사는 뒤통수 치며 공격할 수도 있어요. 서로 다른 업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합니다.”

신도리코 분회는 사측이 단체 협약 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3월 26일 3차 파업을 감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보장을 요구하는 신도리코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연대를 보내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2차 하루파업에 참가한 신도리코 노동자들 ⓒ전주현
2차 파업집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즐거워하는 신도리코 노동자들 ⓒ금속노조 신도리코 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