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3월 15일 노동자연대 공개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약간만 다듬은 것이다.


트럼프는 간섭 말라며 거리로 나온 베네수엘라 대중 ⓒ출처 <Cuatro F>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가 이끄는 베네수엘라 야당들의 정권 교체 운동이 5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과이도와 야당들을 적극 지원하며 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에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하고 있다.

정권 교체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베네수엘라 민간 기업, 금융권, 언론사 사주 등 자본가들과 백인 상층 중간계급들이다. 이들은 매우 강경한 자유시장주의자들로, 마두로와 그 전임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가 집권한 20년 동안 줄곧 정권 교체를 노려 왔다. 

2002년에는 지금 정권 교체 운동을 주도하는 국민의지당(VP)의 뿌리가 되는 정당들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들은 당시 대통령 차베스를 대통령궁에서 납치했다. 노동자 대중 수십만 명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지 않았다면 차베스는 외딴 섬에서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2002년 말 베네수엘라 자본가들은 베네수엘라 전국의 생산 시설과 창고를 폐쇄하고 사보타주를 감행하는 등, 경제 권력을 이용한 ‘사장 파업’을 감행했다. 그러나 석유 산업 등에서 노동자들이 생산을 직접 기획·조직하고 물자를 분배해 자본가들의 시도를 좌절시켰다.

그 후로도 베네수엘라 야당들은 차베스가 사망하는 2013년까지 계속 정권 교체를 시도했다. 차베스 사후에는 더 자주, 더 강력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들은 거리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암살 시도와 테러를 벌이고, 수시로 사회 기반 시설을 파괴했다.

이들은 굉장히 인종차별적이기도 하다. 이들은 쿠데타를 반대하는 베네수엘라 빈민을 ‘이빨 없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데, 가난한 유색인에 대한 지독한 경멸을 담은 표현이다.

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 자유 운운에 일말의 환상도 갖지 말아야 한다.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야당들이 벌이는 일은 민주주의 없는 국가 권력 탈취, 즉 쿠데타다.

사실상 ‘파탄’ 상태로 내몰린 베네수엘라

3월 7일, 유례가 드물게 긴 정전으로 베네수엘라 전역이 어둠에 휩싸였다.(현재는 정전이 복구됐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 지역 수준의 정전은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되풀이돼 왔고, 전력 노동자들은 전국적 정전 사태를 예견하며 누차 경고해 왔다.

베네수엘라는 산유국이지만 산업이 발전한 나라가 아니다. 전체 무역 수익에서 석유 수출 수익이 90퍼센트가 넘는 (대미 수출이 압도적이다) 반면 공업 수준은 취약하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대개 남한의 절반 수준이었고, 늘 양극화가 극심했다. 베네수엘라 대자본가들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손꼽히는 부자들인 반면, 복지가 가장 잘 운영됐을 때조차 베네수엘라인 최소 4분의 1이 빈곤층이었다.

석유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2013년 국제유가 하락으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8년 베네수엘라 물가 상승률을 100만 퍼센트로 추산했는데, 이는 생닭 한 마리(1460만 볼리바르) 가격이 최저임금(월 1만 8000볼리바르) 67년치만큼 치솟을 만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었다.

경제 위기는 안전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조직 범죄와 살인이 극심한 문제로 대두돼 있다. 멕시코 시민단체 ‘공공안전과 사법 정의를 위한 시민위원회’(CPSCJ)가 세계 주요 도시 50곳의 인구 10만 명당 피살자 숫자를 계산한 자료를 보면, 최상위 열 곳 중 세 곳이 베네수엘라 도시였고 그중 하나는 수도 카라카스(3위)였다.

이런 경제적·물리적 위협에 직면해 인구의 약 10퍼센트인 300만여 명이 주변국으로 탈출해 ‘경제 난민’이 됐다. 그런 난민 중 최소 30퍼센트 이상이 노동자로 집계되기도 했다.

극심한 위기의 와중에, 베네수엘라 자본가들은 사보타주·매점매석·투기·밀수·설비 파괴 등으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나라가 혼돈 상태에 빠지면 대중이 정부를 버릴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는 쓰레기를 뒤져야 하는 빈곤층의 삶을 더욱더 위협한다 ⓒ출처 Julio César Mesa (플리커)

라틴아메리카 진보·좌파 정부들과 미국 제국주의

미국은 20세기 내내 라틴아메리카를 자국의 ‘뒷마당’ 취급해 왔다. 20세기 후반에만도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친미 쿠데타를 지원하고 기획해 왔다.

그런데 2000년을 전후해 라틴아메리카에서 진보·좌파 정부들이 잇달아 집권했다(이른바 ‘핑크 물결’). 이 정부들은 성격이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미국 제국주의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를 표방했다.

‘핑크 물결’은 전 세계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을 고무했고 그 운동의 영향을 직접 받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은 당시 세계적으로 부상했던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과 만나,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또 다른 수퍼파워”라 불리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던 미국은 ‘핑크 물결’에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했고,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는 ‘핑크 물결’의 가장 두드러지는 사례였고, 그 때문에 미국 지배자들은 공화당·민주당을 불문하고 차베스에 적대적이었다.

차베스도 미국 제국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이것이 뚜렷이 표출된 일화는 2006년 유엔 총회였다. 총회 자리에서 차베스는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를 직접 겨냥해 ‘여기 악마가 왔다’고 규탄했고,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서 ‘핑크 물결’은 퇴조하는 추세다. 곳곳에서 친기업적 정부들이 집권해, 그간 노동자 대중 운동으로 쟁취한 개혁 성과를 되돌리고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려 한다.

2018년 브라질 대선은 그 중요한 기점이다.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 최대 대국으로, 사회민주주의 정당 노동자당(PT)이 2016년에 몰락한 후, 강경 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당선했다. 보우소나루의 취임식은 라틴아메리카와 세계 우파들의 잔치 자리가 됐다.

라틴아메리카의 또 다른 주요 국가인 아르헨티나도 2015년에 우파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집권했다. 마크리 정부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공격을 추진하고 있다.

제국주의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 운동을 적극 지원하며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과이도가 대통령을 자처한 지 몇 분 만에 과이도 지지를 선언했고,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려고 유엔 안보리 회의를 두 차례나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마두로와 과이도 중 “모든 국가가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을러댔다. 

미국은 변화한 라틴아메리카 상황에서 대륙 전체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온전히 회복하려는 제국주의적 시도를 하고 있다.

1월 28일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의 미국 자회사 ‘시트고’가 수익을 송금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제 미국은 베네수엘라와 거래하는 국외 금융기관, 특히 러시아 은행들에 대한 2차 제재도 언급하고 있다.

제재는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봉쇄하고 기아 상태로 내몰아 마두로 정부 몰락을 촉진하려는 시도다. 지금도 제재 때문에 식량 수입에 차질이 크게 빚어져, 베네수엘라인들은 정부 배급에 의존해 연명하는 실정이다.

미국은 이와 유사한 전략을 약 40년 전에도 쓴 바 있다. 1970년대 초 미국은 칠레산 구리에 똑같은 방식으로 경제 제재를 했다. 당시 칠레 ‘사회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는 몇 년 후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군부 쿠데타로 몰락했다. 수만 명이 학살당했다.

트럼프 정부는 군사 개입까지 암시하고 있다. 2월 초 백악관 안보보좌관 볼턴은 ‘콜롬비아 국경에 5000명 파병’한다는 메모를 언론에 흘리기도 했고, 3월 14일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미국의 작전에 제약이 된다”는 이유로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 외교 인력을 전원 철수시켰다.

미국이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것도 위선이다. 애초부터 그 ‘인도적’ 지원은 베네수엘라 야당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단으로 기획됐다. 미국은 마두로 정부가 지원을 수용하면 수용하는 대로, 거부하면 거부하는 대로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다. 트럼프 정부가 베네수엘라인들을 진정으로 ‘인도적’ 목적에서 걱정했다면, 경제 제재를 모두 해제하면 됐을 일이다.

이런 상황이니, 최근 정전 사태가 미국의 사이버 공격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미국 제국주의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며 민중의 ‘희생’을 강요한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트럼프 정부가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는 데에는 이데올로기적 이유도 있다. 베네수엘라의 실패를 ‘사회주의’의 실패로 몰아, 버니 샌더스의 ‘민주사회주의’ 열풍으로 대표되는 좌파 정치 부상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 지배 이외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대중의 이상을 꺾고, 운동의 기억을 지우려는 것이다.

저마다 꿍꿍이가 있는 세계 지배자들

베네수엘라 야당들의 쿠데타 시도와 관련해 세계의 다른 지배자들도 저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 꿍꿍이가 있다. 야당이 운동을 시작한 초기부터 마두로 퇴진을 최후통첩식으로 요구한 유럽의회, ‘리마그룹’ 회의*에까지 참가해 베네수엘라 압박을 거드는 캐나다가 바로 그런 사례다.

중국이 이제까지 미국의 개입에 불편한 기색을 표했던 것도 자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핑크 물결’이 라틴아메리카를 휩쓸던 2000년대 초는, 중국 경제가 고속 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중국은 십수 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 원자재를 수입해 서방에 상품을 수출하는 ‘세계의 공장’ 구실을 해 왔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핑크 물결’ 정부들을 발판 삼아 라틴아메리카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하려 해 왔다. 중국을 중심으로 생산을 세계적으로 재조직화하려는 장기적 전략의 일환이었다.

미국은 중국의 그런 행보를 상당히 경계해 왔다.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미국 외교 전문가들이 펼쳐 왔던 배경에는 그런 경계심이 있다.

한편, 문재인 정부가 외교부 성명을 두 차례나 발표해 과이도를 지지한 것도 나름의 이해관계 계산의 발로였다.(모욕적이게도, 문재인 정부는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을 거들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트럼프 정부의 제국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는 대신 한반도에서 실익을 얻겠다는 구상인 듯하다. 그러나 그런 행보가 (부도덕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노리는 득도 거두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입증된 바 있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거들며 2004년에 자이툰 부대를 파병했지만, 이후 한반도 정세는 미국의 대북 압박으로 더 악화됐다. 오히려 미국이 이라크에서 패배한 것이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됐다.(남한 국내 상황으로도,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한 기본 입장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해야 한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베네수엘라인들의 자결권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야 한다. 친제국주의·친시장주의 야당 쿠데타의 패배를 바라야 함은 물론이다.

사회주의의 실패?

그러나 동시에,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식 혁명’, ‘21세기 사회주의’의 공과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트럼프와 세계 우파 지배자들이 베네수엘라의 실패와 ‘사회주의’의 실패를 직결시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객관적 분석이 대안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 가지 점을 짚을 수 있다.

첫째, 차베스 집권의 배경에는 노동계급 대중의 투쟁이 있었다.

1989년 베네수엘라 노동자 빈민이 카라카소 항쟁*을 벌인 이래, 라틴아메리카 전체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선 중요한 운동들이 벌어졌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를 규탄하며 시작된 멕시코 사파티스타 운동 등이 그런 사례다. 그런 운동들은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파업, 1999년 미국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회담 무산으로 이어져 세계적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초석을 놓았다.(남한에서 1996~1997년에 벌어진 대중 파업도 그런 국제적 운동 물결의 일부였다.)

그런 운동의 영향을 받아,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자본주의의 여러 측면과 미국 제국주의에 도전할 수 있었다.

차베스 정부가 석유 수출 수익의 일부를 이용해 펼친 개혁(‘미시온’)으로 인구의 4분의 1 정도 되는 극빈층의 삶이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그런 개혁은 노무현·문재인이 추진했던 시장 개혁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더구나 세계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개혁을 표방한 정부들의 개혁 배신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베네수엘라 사례가 특히 영감을 줬다.

그러나 차베스는 자본주의 동학 자체에는 도전하지 않았다. 차베스는 노동계급 대중의 자발성을 위로부터 개혁에 이용했지만, 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를 계급의 필요에 따라 운영하는 것은 철저히 막았고, 자신도 그런 도전을 하지 않았다(예컨대 민간 자본을 몰수해 식량·생필품 생산 중심으로 산업을 재편하기 등).

‘볼리바르식 혁명’ 하에서 베네수엘라 민간 자본가들은 자신의 경제 권력을 포기하지 않아도 됐다. ‘혁명’ 20년 후에도 자본가들이 마두로 정부에 맞서 기세 좋게 쿠데타를 시도할 수 있는 배경이다.

차베스는 산업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노동자들을 가로막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핵심 산업인 석유 산업에서 노동자 관리 요구는 주의 깊게 통제됐다. 2002년 ‘사장 파업’ 당시 차베스 정부와 베네수엘라 민중을 구한 것이 바로 그 노동자들의 자주적 통제였는데도 말이다. 이는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에 배치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권력

둘째, 국가 권력 문제가 있다. 차베스·마두로 집권기에 자본주의 국가는 대폭 강화됐다. 차베스 자신조차 말년에 ‘베네수엘라 국가는 자본주의 국가고 그 안에 비민주성이 만연해 있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정당 문제도 이와 연결돼 있다. 차베스는 부패와 사보타주가 극심한 국가 기구들을 우회하려고 2006년 베네수엘라통합사회주의당(PSUV)을 창당했다. 쿠바 공산당을 모델로 한 이 당에 600만 명이 입당했다. 그러나 이 당은 아래로부터 노동계급 대중 운동을 고무하기보다는 국가 관료와 출세주의자들의 이해관계를 구현하는 도구 구실을 하게 됐다. 부패가 극심했다.

2013년에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베네수엘라 국가는 ‘누가 경제 위기의 대가를 치를 것인가’ 하는 계급적 선택에 직면했고, 노동계급 대중에 그 대가를 전가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마두로 정부가 몇 년에 걸쳐 시행한 예산·임금 삭감을 최근의 정전 사태와 떼어놓고 볼 수 없는 배경이다.

셋째, 군부도 중요한 쟁점이다. 베네수엘라 군부는 어떤 의미에서도 대중에 민주적 책임을 지지 않는 자본주의 군대고, 자본주의 국가의 중요한 일부다. 마두로 내각의 절반이 현직 군 장성이거나 군부 출신 인사다.

베네수엘라 군부는 경제의 중요한 일부를 직접 경영하고 있다. 군부는 베네수엘라 동부 ‘아르코 미네라’ 지역을 직접 관할 하에 두고, 약 150개 다국적기업들과 합작해 광물을 채굴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 제재로 베네수엘라 군부와 마두로 정부가 분열하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베네수엘라 위기가 한계를 넘을 듯하면 군부(또는 그 일부 성원들)가 본연의 기능, 즉 자본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나서 마두로를 제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종합하면, 오늘날 베네수엘라 위기의 원인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의 부재(혹은 부족)이다. 자본주의 체제와 권력을 그대로 둔 채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다가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반격을 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기 해결에는 노동자 권력이 요청된다

미국의 압박은 계속 심해지고, 과이도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외세 개입에 뒷문을 열었지만, 이들이 성공하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베네수엘라 노동계급 상당수는 자본가들의 반동적 쿠데타 시도를 극도로 증오한다. 서방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지만, 쿠데타 반대 측은 여전히 수만 명 이상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시위 참가자들이 모두 마두로 정부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베네수엘라 노동자 대중은, 제국주의와 자본가들이 승리하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피의 보복이 뒤따를 것을 알기 때문에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와 야당들의 성패 여부만큼이나 이를 어떻게 패퇴시킬 수 있는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극단적 대립은 극단적 해결책, 즉 혁명적 과제를 제기한다. 베네수엘라의 운명을 둘러싼 쟁투도 마찬가지다. 베네수엘라 노동계급 대중은 차베스와 마두로가 가지 않았던 길, ‘21세기 사회주의’의 진정한 산실인 노동자들의 권력 장악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당면한 계급적 문제를 해결하는 투쟁과 연결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직접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함으로써 그럴 수 있다. 이것은 1917년 러시아에서 노동자 소비에트와 볼셰비키가 보여 준 바이기도 하다.

당면한 식량과 생필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첫째 과제다. 베네수엘라 노동계급은, 부패한 국가 관료들과 민간 사장들이 매점매석·밀반출하는 재화를 몰수해 노동계급의 필요에 맞게 스스로 분배해야 한다. 한 해에 전 국민 평균 체중이 11킬로그램씩 줄어드는 기아 상태를, 보름에 한 번 있는 마두로 정부의 배급에 의존해 해결할 수는 없다. 의존적 태도는 노동자 대중의 사기를 꺾기만 할 것이다.

베네수엘라 노동자 대중은 마두로 정부의 외채 상환을 즉각 중단시키고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 할 것이다. 그 재화는 세계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의 필요에 쓰여야 한다.

베네수엘라 노동자 권력이 직면할 둘째 과제는 생산 통제다. 베네수엘라 노동계급은 노동자·빈민의 필요를 우선해 경제 자체를 재편하고 생필품 등 필수적 생산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부패한 정부와 관료들, (‘볼리바르식 혁명’으로 탄생한 자본가들이라는 뜻에서 ‘볼리부르헤스’라 불리는) 신생 엘리트들은 이에 완전히 실패해 왔다.

심각한 범죄와 소요 사태를 다스려야 한다는 셋째 과제 또한 노동자 권력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 무능하고 부패한 군경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무장한 노동자 민병대로 치안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그런 자체 무장력은 야당들과 콜롬비아계 무장 세력들의 테러·사보타주 시도부터 제국주의 군사 개입까지 많은 것들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말에 ‘사장 파업’에 맞서 노동자 권력의 잠재력을 흘낏 보여 줬던 노동자들의 네트워크, 빈민들의 지역 네트워크는 많은 고난 속에서도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그 잠재력이 훨씬 강화돼야 한다.

차베스가 제시했던 ‘볼리바르식 혁명’ 수준에서 더 나아가야 하고 대중 민주주의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좌파들이 소수이지만 베네수엘라 기층에 있다.(이들은 스스로 ‘비판적 차비스타’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들이 쿠데타 반대 운동에서 얼마나 많은 지지를 건설해 왔고 지금 얻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만약 베네수엘라 노동계급과 좌파들이 당면한 요구들에서 출발해 노동자 권력으로까지 운동을 전진시킨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새로운 투쟁을 목격하게 될 수 있다.

그런 투쟁을 바라는 남한의 노동자 좌파들은, 미국 제국주의의 베네수엘라 개입에 단호히 반대하고, 베네수엘라 민중의 자결권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