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
운동이 결집해 마크롱을 떨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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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조끼 시위가 거세게 분출해 파리는 불바다가 된 반면, 운동을 무마하려는 마크롱의 와인 사진 보도는 통하지 않았다고 찰리 킴버가 전한다.
정권에 맞선 항쟁의 물결이 프랑스를 휩쓸고 있다. 3월 16일 노란 조끼 시위대 수십만 명이 거리를 행진했고, 3월 19일에는 노동자들이 프랑스 전역에서 파업에 나섰다.
같은 날, 수천 명이 알제리 민중의 항쟁에 연대 시위를 벌였다.
3월 9일 시위부터 노란 조끼 시위 규모가 가파르게 커졌다. 3월 16일에는 파리에서 수천 명이
이런 시위들이 모두 직접적으로 연계돼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운동의 연결을 추구하고 있다.
16일 노란 조끼 집회 중 몇몇은 집회 시작 전에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시
기후
“세계의 끝,
기후 변화와, 노동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이 같은 이유
시위에 참가한 교사 니콜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토요일
“이건 항쟁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노동계급에 기반한 강력한 항쟁은 아니지만, 활력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이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 주는 항쟁입니다.”
이 시위들 모두 신자유주의적인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받는 압박을 키우고 있다. 3월 9일 마크롱은, 자신이 노란 조끼 운동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려 피레네 산맥에 있는 스키 리조트에 갔다.
마크롱이 활짝 웃으며 친구들에게 술을 따라주는 사진이 찍혔다. 노란 조끼 시위대가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명품 상점 수십 개를 박살냈다는 보도에 비춰 보면, 마크롱의 행동은 그다지 영리한 처사는 아니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에 인기 있는 휴고 보스 매장, 네프레소 매장, 르 푸케츠 레스토랑을 겨냥했다. 타르네오은행 지점 한 곳도 불길에 휩싸였다.
늘 그랬듯 경찰은 노란 조끼 시위대 모두에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대응했다. 약 250명이 체포됐다.
마크롱은 황급히 여행 일정을 단축하고 파리로 돌아와 위기 대책을 논의하는 각료회의를 했다. 마크롱은
프랑스 당국은
노란 조끼 시위에 대한 비난 때문에 활동가들을 겨냥한 사적 폭력이 조장되고 있다.
3월 18일에는 노란 조끼 운동의 유명 조직자 에릭 드루에의 집과 차량이 습격당했다.
마크롱은 필사적이고, 격하게 날뛰고 있다. 하지만 투쟁들이 결합된다면 마크롱을 패배시킬 수 있다.
프랑스 전역의 파업 노동자들이 말한다
“우리는 오만한 대통령을 몰아낼 힘이 있습니다”
노동조합들이 주도한 전국 행동의 날이었던 3월 19일, 프랑스 전역에서 집회 120건과 파업이 벌어졌다.
노동조합 연맹 세 곳과 대학생 및 중고등학생 학생회가 이날 행동을 호소했다.
파업은 인기가 있었다. 3월 18일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3퍼센트가 노동조합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니스의 병원노동자 앙리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들은 공공 의료에 대한 공격에 맞서 파업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노동자들은 여러 다른 이유들로 파업에 참가했습니다.
“저는 알제리에 가족을 둔 아랍인 동료들이 있습니다.
지지
“제 동료들은 알제리에서 벌어진 항쟁을 지지하는 뜻에서, 작은 알제리 국기를 흔들며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우리 동료들 중 몇몇은 노란 조끼 운동에도 참가합니다. 우리는 노란 조끼 운동에 참가하는 비조합원 동료들이
“행동의 열기가 느껴집니다.
“마크롱은 매우 오만합니다. 또한 지배자들은 서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함께 투쟁한다면 마크롱을 끌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집회에서는 계급적 분노가 넘쳐났다.
노르망디주
릴의 요식업 노동자 엘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중 일부는 파업 중이지만, 파업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파업을 지지합니다.
“노동조합 지도부들이 파업 기간을 연장한다면 파업 규모는 더 커질 것입니다.
“아직은
병원
파업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기층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이 형식적인 수준에서일지언정 목소리를 내기라도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노동자들은
이런 모든 연계로 운동이 더 발전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기층 조합원들이 주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3월 16일 파리에서 철도 노동자들은 담대하게 전진했다. 노동자들은 노란 조끼 시위대를 가르 드 노드 역에서 환영하며 시위대와 토론하고 활력을 나눴다. 그 후 수백 명이
그들은 현수막을 들고
경찰 탄압을 뚫고 벌어진 3월 9일 행동
3월 초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거짓 “사회적 대토론”이 종료됐다.
노란 조끼 활동가들은 마크롱의 “사회적 대토론”은, 본인이
유류세 인상 반대를 걸고 시작된 노란 조끼 운동은, 4개월 새 정부, 신자유주의, 친기업 정책과 첨예하게 충돌하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저임금, 민영화, 불평등, 성차별 등 많은 문제들을 제기했다.
노란 조끼 운동은 마크롱의 양보를 강요했다. 운동 초기에는 노란 조끼 운동을 폄하했던 노동조합 지도부들 중 일부도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됐다.
3월 9일에 열린 노란 조끼 17차 행동의 날은 3월 16일을 위한 “몸 풀기 순서” 같았다.
여성
각급 학교들이 휴교하고 기상 조건도 나빴지만 수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많은 지역에서 세계 여성의 날 집회 후 여성들이 행진을 주도해 노란 조끼 시위로 이어갔다.
3월 9일 툴루즈에서 열린 ‘빵과 장미’ 행진에 참가한 아그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성들이 어떤 일에서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또, 노란 조끼 운동의 방향을 함께 계획하기를 바랍니다. 여성들은 임금 삭감과 생계비 인상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집단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회적 투쟁에 연대하며 성차별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행진 곳곳에서 알제리 항쟁에 연대를 표하는 깃발을 볼 수 있었다.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경찰의 폭력 진압 행태를 지켜본 일부 활동가들은, 아담 솔리와 파티 카라쿠스의 사례를 들어 규탄했다. 이 두 사람은 그르노블에서 경찰 추격에서 도망치던 도중 스쿠터 사고로 사망했다.
노란 조끼 운동이 시작한 이래, 경찰 등 진압 부대들은 “플래시볼”
기자 필리프 뒤프렌이 집계한 수치를 보면, 최소 202명이 경찰 폭력으로 머리에 부상을 입었고, 21명이 한쪽 눈을 실명했으며, 다섯 명이 손을 다쳤다. 대부분 고무탄 때문이다.
유럽의회 보고서조차 경찰의 고무탄 사용을 비난했다. 3월 초 유엔고등판무관은 프랑스 경찰의 과도한 폭력 사용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