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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국제병원 허가 취소 청문회 시작:
제주 영리병원, 문재인에게도 책임 있다

3월 26일 제주 영리병원(녹지국제병원)허가 취소를 위한 청문회가 열린다. 제주도 측이 애초 밝힌 바대로라면 4월 초에는 허가 취소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

녹지국제병원은 개원 허가를 받은 뒤 3개월이 넘도록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의 해외 투자 규제에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 미·중 무역갈등 등이 큰 영향을 준 듯하다. 여기에 한국 병원의 우회 투자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제주도지사 원희룡은 공론조사 결과까지 무시하며 개원을 밀어부쳤지만, 제주도 여론과 영리병원 반대 운동의 압력 때문에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내세웠다. 녹지국제병원으로서는 사업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결국 녹지국제병원은 개원 허가 기한 만료일이 지나도록 진료를 시작하지 않았고, 원희룡은 의료법에 따라 3월 4일 허가 취소 절차를 시작해야 했다. 만약 취소 결정이 난다면 이는 제주 영리병원 반대 운동 측이 거둔 또 하나의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의 의료 영리화가 계속되는 한 영리병원 설립 시도도 계속될 것이다 ⓒ출처 보건의료노조

그러나 아직은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

먼저 원희룡 측이 시간을 질질 끌 가능성이 있다. 3월 4일 취소 절차를 시작할 때 한 달 뒤에는 결과가 나올 거라던 제주도 측은 최근 말을 바꿨다. 청문 절차가 길어질 경우 4월 말에야 결정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녹지그룹이 허가 취소 절차를 중지시키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수도 있다.

중앙정부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공방이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제주도 정무부지사 안동우는 3월 4일 취소 절차를 시작하며 녹지그룹이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사업 파트너인 만큼 양자 간에 헬스케어타운의 향후 사업 방안을 논의하기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시종일관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발을 빼고 있다. 허가 취소 결정이 나도 줄줄이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무엇보다 지난 16년 동안 역대 정부가 영리병원을 추진해 온 동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의료를 새로운 ‘산업’으로 키워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게 그 목표다. 삼성 등 제약·의료기기·병원·민간의료보험 시장을 개척하려는 국내외 자본가들이 이를 요구해 왔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저성장이 계속되자 이런 필요는 더욱 커졌다.

의료 민영화 반대 운동과 기층의 반감으로 이 정책들은 거듭 무산됐지만 역대 정부와 국내외 자본들은 이름만 바꿔가며 거듭 이 정책을 추진했다. 2002년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전용의료기관 도입 허가로 시작해 가장 최근의 싼얼병원과 녹지국제병원까지 영리병원 설립을 위한 시도는 지칠 줄을 몰랐다.

문재인 정부도 말로는 ‘의료 영리화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사실상 허가했다. 원희룡이 공개적으로 문재인 정부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을 때도, 공론조사 결과 제주도민의 압도 다수가 반대한다는 의견이 나왔을 때도, 원희룡이 이를 무시하고 개원 허가를 냈을 때도 침묵했다. 국토부 산하 공기업인 JDC가 사업의 한 주체인데도 이들이 계속 헬스케어타운 사업을 추진하도록 방치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이후에는 사실상 전임 정부들이 추진하던 의료 영리화 정책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추진했다. 대선 당시 문재인 자신이 ‘적폐’라고 부른 규제프리존법을 지난해 통과시키고 원격의료도 추진하고 있다. 3월 25일에는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이 함께 의료 영리화 3법(첨단재생의료법, 혁신의료기기법, 체외진단기기법)을 국회 소위에서 통과시켰다.

따라서 영리병원 반대 운동 진영은 긴장을 늦추지 말고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영리병원 설립 시도에 강력한 제동을 걸려면 문재인 정부의 의료 영리화에도 맞서야 한다. 영리병원 설립과 원격의료 등 다른 의료 영리화 정책은 실과 바늘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어느 쪽이 먼저 추진되든 다른 한쪽을 필요로 할 것이다.

영리화의 피해자 중 하나인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한 투쟁과도 결합돼야 한다. 얼마 전 산재 승인을 받은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병원의 영리 추구가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었다.

따라서 지금 국회에서 통과를 앞두고 있는 탄력근로제 등 노동 개악에 맞선 투쟁,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한 투쟁에도 병원 노동자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