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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정부처럼 열의 없는 현 정부의 권력층 범죄 수사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차관 김학의 부패·성범죄 의혹에도 지금껏 처벌받지 않았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김학의(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차관)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검찰 수사를 권고했다. 자유한국당 의원 곽상도(박근혜 청와대의 민정수석)와 이중희(박근혜 청와대의 민정비서관이자 현 김앤장 변호사)의 경찰 수사 방해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권고했다. 특수강간 혐의는 재수사 권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학의 사건은 2013년에 우연히 드러난 건설업자 윤중천의 성상납 의혹에서 시작됐으나 권력 기관과의 유착·비호 의혹을 남기며 무마됐던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최근 박근혜 정부 청산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김학의는 ‘김학의 동영상’과 그에 대한 피해 호소 여성들의 증언(당시 수사한 경찰에 따르면 영상은 2006년에 촬영된 것이고, 성적 피해는 2007~2008년에 일어났다)에 기초해 2013년, 2014년 성상납을 통한 뇌물혐의와 특수강간 혐의로 수사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두 차례 모두 석연치 않게 불기소 처분했다.

그런데 최근 김학의의 혐의를 덮으려고 박근혜 정부가 나선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하나는, 김학의가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기 직전에 그가 받은 성상납 의혹을 내사하던 경찰을 박근혜 정부가 탐탁치 않게 여겨 질책했다는 것이다. 직후 경찰청 수사 지휘 라인도 전면 교체됐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들은 좌천됐고, 수사 지휘자는 당시 법무부 장관 황교안·청와대 민정수석 곽상도의 성균관대 동문으로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나는 박근혜가 김학의의 성추문을 알고도 차관 임명을 강행했다는 의혹이다. 물론 당시에도 박근혜가 김학의 아버지와 박정희의 관계를 생각해 임명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김학의 아버지는 박정희 시절 육군 대령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무공훈장을 받았던 인물로 박정희와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재벌 회장, 조선일보사 사주 일가 등의 명단이 오르내린 ‘장자연 사건’의 진실도 10년 동안 덮여 있었다. 문재인 정부도 애초 재조사 대상에서 뺐었고, 조선일보사 등을 은근슬쩍 압박하는 데만 이 사건을 이용했을 뿐, 정식으로 재수사하지는 않았다.

유착

박근혜 정부 시절 사건이 다시 파헤쳐지며 자신들의 목을 조여 오자 한국당은 “표적 수사”, “정치 보복”이라며 게거품을 물고 있다. 뇌물수수와 성범죄의 진실을 밝히자는 걸 자기들을 궁지로 모는 거라고 비난하는 꼴이야말로 이런 범죄가 그들 사이에선 흔하디 흔한 일임을 실토하는 셈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라면 한 봉지를 훔쳐도 기소되는 마당에 ‘돈 있고 빽 있는’ 권력자들은 무서울 것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면한다.

경호원을 대동하고 변장한 채 해외로 내빼다 딱 걸린 김학의의 행태는 또 한 번 공분을 자아냈다.

최근 김학의 사건과 ‘장자연 리스트’가 다시 불거진 맥락을 볼 필요가 있다. 지배계급의 내분이 한몫했다. 급속한 우경화와 배신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문재인 측과 덕분에 반사이익을 얻어 회생 기회를 엿보는 한국당 측이 서로 비리를 폭로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검·경을 손에 쥔 현 정부가 유리한 듯하지만 말이다.

수사지휘권 갈등을 벌이는 검찰과 경찰 간의 암투도 벌어진다. 검찰이 덮은 김학의 사건에서, 청와대 외압과 검찰 부실 수사 의혹을 뒷받침할 증언들이 경찰 쪽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유착’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경찰도 만만치 않다는 게 버닝썬 사건에서 드러나고 있다. 또한 윤중천 별장에 전직 경찰청장도 드나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검·경 갈등은 수사권 조정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에게는 위험 신호다.

지배자들의 갈등이 가속화된 맥락에는 특권층 범죄에 대한 대중적 분노도 있었다(“적폐 청산”). 급해서 (의혹을) 꺼내 놨지만, 오히려 대중의 감정을 자극해 일이 커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이 사건들의 처리 문제가 지배자들 사이의 은밀한 거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서로 덮는 방식으로 말이다. 김학의, 곽상도, 이중희 모두 검찰 요직 출신들이라서 검찰을 믿기도 어렵다.

그래서 대중이 관심이 다른 곳으로 가길 바라며 수사를 질질 끌 수 있다. 이 정권이 지지율 위기 때마다 이명박 구속, 기무사 쿠데타 모의 문건, 세월호 공작, 장자연 리스트 등을 꺼냈지만 제대로 처벌된 건 거의 없다.

위 사건들은 이 사회 최상층에서 군림해 온 자들의 추악한 면모를 드러냈다. 그들은 끼리끼리 뭉치고 유착해 특권을 주고받아 왔다. 또한 성이 상납 대상이 된 것은 여성이 이 사회에서 대상화돼 천대받는 존재임도 드러냈다. 검·경이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한 것은 이 권력기관들의 본질적 임무가 지배자들의 권력과 자산을 지키는 것인 데서 비롯한다.

진상이 낱낱이 밝혀져 관련 인물들이 엄벌되길 바란다. 이에 공감하는 이들은 범죄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혜택을 주고 또 감싸주는 자본주의 질서도 증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