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과 “50퍼센트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 개혁안에 합의했다. 이 합의안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에 답하려면, 이 안이 진보·좌파 정치세력들에게 유리한 좋은 안인지, 민주당 등은 통과시킬 의지가 있는지, 자유한국당은 왜 반대하는지 등을 따져 봐야 할 것이다.

현행 선거제가 개혁 대상이 된 이유는 서로 연결된 두 가지 문제 때문이다.

첫째, 20대 총선 지역구 득표율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은 합쳐서 60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득표를 했지만, 전체 300석 중 80퍼센트가 넘는 의석을 챙겼다. 지역구 득표에선 약하지만, 전국적 정당 지지율이 높은 진보 정당들이 피해를 봤음은 물론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였다면, 진보·좌파 의석이 30석 가까이 나올 수도 있었다(실제 결과는 총 7석 뿐).

둘째, 이 총선 결과는 (총선 반 년 후 시작돼) 박근혜 정권을 쫓아낸 촛불 운동의 진보 개혁 염원과 바뀐 세력 균형, 즉 “촛불 민심”과 너무 맞지 않았다. 당시 우파 정당은 두 개로 쪼개졌고, 위신과 신뢰도 추락해 지지율도 이후 1년 넘게 10퍼센트대에 머물렀었다. 그런 정당이 촛불 이후에도 의석을 40퍼센트나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정치의 특성상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의 연동성을 높일수록 진보·좌파 정당과 후보들에게 유리하다. 가령 100퍼센트 연동형 비례대표를 현행 300석 기준으로 실시했을 때를 가정해 보자. 정당 득표가 20퍼센트인 A당이 지역구에서 20석을 얻었다면, 40석을 정당명부에서 배분받는다.정당 득표가 40퍼센트인 B당이 지역구에서 120석을 얻었다면, 비례 의석은 배분받지 못한다.(진보정당은 A당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선거제 개혁 여론은 공식 정치에서 우파의 비중을 축소하고 진보·좌파의 비중을 늘리려는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덕분에 정개특위 위원장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맡는 등 대중의 바람을 공식 정치에 다소 전달할 수 있었다.

선거에서 노동자들의 투쟁과 요구를 지지하는 노동계 진보·좌파 정당(후보)들의 득표와 의석이 늘면, 노동자들은 좀더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치 의식도 지배계급 정당들로부터 더 독립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될 토양이 좀더 형성될 것이다.

노동계급의 사기와 의식, 조직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혁명가들이 비례성 강화 방향의 선거제 개혁을 유보 없이 지지하는 이유다.

ⓒ출처 정의당

불필요한 타협

아쉬운 것은 정의당이 정개특위에서 합의한 안이 애초에 정의당은 물론이고 민중당, 노동당 등 진보·좌파 정당들이 함께 요구한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것이다.

이 합의안은 여러 제도의 절충이 너무 심해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합의안은 총 의석수를 늘리지 않은 채 지역구와 정당명부 비율을 1:1로 만들지도 않고 연동형을 50퍼센트로 묶어 놓았다. 그러다 보니 지지율에 따라 의석을 배정한다는 취지가 훼손됐다.

비례성 강화에는 민주당도 결사 반대했다. 심지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의석을 10퍼센트 늘리는 권고안(총 330석)을 내놨음에도 민주당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는 주류 양 당 모두 진보 정당의 의회 진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걸 싫어한다는 뜻이다.

선거제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한국당 지지율이 오르고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민주당이 선거제 개혁 절충안과 정치개혁법 두어 개를 묶어 반(反)한국당 공조를 제안했다. 반대로 지지율을 회복하던 한국당이 아예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자며(2002년 이전으로 돌리는 것) 나온 것이다.

그러자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당선 전망이 어두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그리고 비례제 확대 개편이 절실한 정의당이 모두 마지못해 민주당 안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매우 불만족스러운 정개특위 합의안이 나온 배경이다. 4당은 선거제와 공수처법 등을 묶어서 국회 신속 처리 안건(페스트 트랙)으로 지정하려고 한다.

선거제도 개혁안이 이렇게 뒤틀린 것은 한국당과 민주당 둘 다에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정의당이 정개특위에서 합의한 것은 한국당이 비례성 확대에 강경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이 안이라도 통과시키고 이후 점진 개선을 도모해 보자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합의안대로라면 어쨌든 지금보다는 나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런데 정개특위 합의안에는 비례의석 배분 자격의 득표율 상한제(3퍼센트 커트라인) 폐지가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소규모 원외 진보 정당의 공식 정치 진입을 가로막는 장애물 구실을 해 왔다. 정의당은 이 조항의 폐지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면 다른 원내 정당들과의 연동형 도입 협상 자체가 어렵다고 본 듯하다.

한편에서는 이 때문에 진입 장벽을 이미 넘어선 정의당이 너무 자기중심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이 제도 아래서는 진보·좌파 투표층 안에서도 사표 심리가 조장되는 점도 봐야 한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정의당 소속)은 최근 칼럼에서 합의안의 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장 위원은 선거제 개편 염원의 배경에 촛불이 있다고도 지적해 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앙당의 상황 판단에는 동의하는 듯하다.

“합의안의 약점은 기존 양대 정당 중 하나인 더불어민주당의 요구와 절충하려다 생긴 흠결이다. … 아무튼 일단은 이 정도 합의안이나마 통과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불충분한 이 절충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도 별로 높지 않다.

바른미래당이 선거제 신속 처리 합의를 두고 내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것 아니냐는 자신들의 오른쪽 지지층에서 오는 압력이 크다. 선거제는 공식 정치에서 각 세력이 겨루는 “게임의 룰”인데, 부르주아 민주주의 조건에서 지금처럼 첨예한 여야 대립 속에서 일방 처리가 될까?

바른미래당 사례는 중요한 전략적 시사점을 준다. 민주당 안이라도 받아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가장 중요한 동기인 우파의 회복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노골적인 친기업·반노동 행보와 개혁 배신으로 진보 염원층에서 문재인 지지가 줄어드는 것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 한국당을 막겠다며 불필요하게 개혁 후퇴에 타협하다가는 개혁의 진정한 동력인 노동계급의 진보 염원을 실망시킬 수 있다. 이는 당장 정부가 강행하는 노동 개악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투쟁에 도움이 되질 못한다.

더군다나, 가령 우파의 압력이 바른미래당을 매개로 민주당에게 가해질 때(민주당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과 의회 내에서 공조를 해야 정국 주도권을 유지하므로), 공식 정치 안의 진보 정당들에게는 지금보다 더 곤란한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노동계급의 투쟁과 정치 의식 성장이라는 전략적 목적을 희생시키는 건 옳지 않고 현명하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