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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통과 앞둔 의료 규제 완화:
안전과 생명을 기업에 팔아넘기지 말라

국내 제약사가 판매하던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가 미국식품의약국(FDA) 임상시험에서 퇴짜를 맞았다. 성분이 신고된 내용과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보사는 코오롱생명과학이 2017년 7월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를 받아 판매해 왔다.

인보사는 관절염 치료제로 연골세포를 원료로 사용했다고 신고했는데 미국FDA 검사 결과 연골세포가 아니라 신장세포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판매가 중단됐고 코오롱 주가도 급락했다.

코오롱 측은 뻔뻔하게도 “안전성과 유효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식약처도 임상시험 시작 후 지금까지 11년간 부작용이 없었으니 안전성에 우려가 없다며 코오롱을 편들었다.

어떤 세포인지 분간할 기술도 없으면서 약을 만든 코오롱이나, 바이오 산업을 육성한답시고 이런 약품을 허가해 준 식약처나 모두 어처구니가 없다. 식약처는 인보사를 사용한 3400여 명에 대한 전수조사도 해보지 않고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할 정도로 친기업적인 태도를 보였다.

식약처는 판매 허가 당시에도 인보사의 ‘연골 재생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통증 완화 효과가 일부 있다며 허가해 줬다. 사실상 보통의 진통제와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코오롱은 진통제에 지나지 않는 이 약을 세계 최초 무릎 골관절 유전자 치료제라며 600만 원 넘게 받고 판매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환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배를 불려 온 것이다.

문재인 의료 영리화의 미래를 보여 주는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친기업적

이런 일이 훨씬 빈번해지도록 만들 규제완화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단재생의료법), “의료기기산업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혁신의료기기법), “체외진단의료기기법”(체외진단기기법)이 그것이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이 법안들은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국회를 통과할 수 없었다. 그러나 ‘4차산업 혁명’ ‘혁신성장’을 부르짖는 문재인 정부에서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 세 개 법안은 민주당, 한국당 의원들이 사이좋게 함께 발의했고 모두 문재인이 강력하게 통과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부패를 폭로하며 싸우더니 기업을 위한 법안 제정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사천리로 합의했다.

세 법의 공통점은 안전과 효과 검증보다 돈벌이를 우선하는 것이다. 일단 빨리 시장에 내놓아 판매하고 나중에 평가하자는 식이다.

‘첨단재생의료법’은 줄기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다. ‘대체 치료제가 없고 생명을 위협하는 암 등’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줄기세포와 유전자치료제는 고가인데 비해 안전성과 효과는 거의 입증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첨단바이오의약품’을 다른 의약품에 비해 ‘신속 처리’할 수 있게 해 준다.

현대 과학은 아직 줄기세포와 유전자를 맘대로 다룰 정도의 수준이 못 된다. 한국 식약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8개의 줄기세포치료제를 허가했지만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을 석권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식약처 허가 과정이 허술하고 기업 친화적이기 때문에 8개나 허가해 준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 앞으로 인보사 사태와 같은 일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 바이오제약업체들의 부도덕성은 회계부정 등으로도 여러 차례 알려진 바 있고 피해자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혁신의료기기법’은 ‘혁신의료기기’에 대한 검사를 완화하는 법이다. 기술 집약도나 기술혁신 속도, 안전성, 유효성이 현저히 개선됐거나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기기를 ‘혁신의료기기’로 지정하고 ‘신속 처리’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 집약도’나 ‘기술혁신 속도’는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 안전성과 유효성도 충분히 검증해 봐야만 알 수 있다.

이 법은 기업이 스스로 만든 기준과 규격으로 허가받을 수 있게도 해 준다. 세금 감면 등 또 다른 혜택들도 있다. 명색이 ‘혁신의료기기’인데도 널리 사용되지 않을까 봐 사용 활성화를 위해 공공의료기관에 시범보급도 해 준다. 그러면 지방의료원을 많이 이용하는 가난한 환자들이 의료기기 시험대상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애초 안전성과 효과를 입증하는 신의료기술평가를 면제해 주려 했는데 이번 법률에서는 그 내용을 제외했다. 그러나 3월 15일 복지부의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을 고침으로써 법률을 우회해 신의료기술평가를 면제할 수 있게 해 뒀다.

‘체외진단기기법’도 임상시험 허가를 쉽게 하는 등의 규제 완화가 포함됐다.

정부는 일단 기존 법률과 별도로 규제 완화법을 만들어 두고, 반대 여론 때문에 이번에 넣지 못한 개악 조항들은 나중에 점차 채워 넣는 방식으로 개악해 나가려 할 것이다. 제주영리병원을 가능케 한 수법처럼 말이다.

이 세 법에 의해 시장에 나오게 될 ‘혁신’의료기기, ‘첨단’의약품들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여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될 수 있다. 기업들은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들의 돈으로 배를 불리고, 자사의 의료기기와 의약품을 합법적으로 시험해 볼 수 있게 되니 꿩 먹고 알 먹고다.

이번 세 개 법 제정은 이미 제정된 규제프리존법, 규제 샌드박스법과 논란의 와중에 있는 제주 영리병원, 곧 제정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과 한 묶음이다. ‘혁신 성장’, ‘일자리 창출’과 같은 허울 좋은 명분으로 기업들에게 규제 완화라는 특혜와 선물을 주는 것이다. 코오롱 인보사 사태가 터졌음에도 약품 등에 대한 안전 규제를 더욱 강화하기는커녕, 정부와 국회는 오히려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들을 4월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려 한다. ‘사람 존중’ 따위 개나 주란다.

노동운동은 탄력근로제, 최저임금법 개악과 더불어 기업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팔아먹는 의료 규제 완화 법안들의 제정도 저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의료 영리화를 저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