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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경사노위 참여론을 비판함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가 출범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위기를 맞았다. 이전 정부들의 노사정위와 다를 게 없다는 회의론이 확산된 것이다.

애초 경사노위 참가론자들은 “노동 존중”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으니 기대를 걸어 볼 만하다고 봤다. 경사노위가 사회 양극화 해소를 표방하고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의견을 반영해 새롭게 재편했으니 과거처럼 정부 정책을 일방 강요하는 기구는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경사노위가 강요된 합의 기구가 아닌 협의를 중시하는 기구라고 주장했다. 노동계 위원 절반 이상이 참가하지 않으면 합의가 불가능한 구조라 개악을 막을 수 있는 안전 장치가 마련됐다는 게 근거였다.

이런 주장은 불과 몇 개월의 검증도 버텨 내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단호하게 투쟁에 나설 때 미조직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조건도 지킬 수 있다 ⓒ이미진

문재인은 “노동 존중” 정책을 표방하고도 뜸만 들이다 하나씩 거둬 들이더니 결국 노동개악에 박차를 가했다. 최저임금 줬다 뺐기, 누더기가 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 실효성 없는 노동시간 단축, ILO협약 비준과 노동권 보장 미이행으로 변죽만 울리다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와 노조법 개악 추진을 밀어붙이고 있다. 경제 위기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대화 지지자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소장도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만에 노정관계는 협력에서 대립”으로 바뀌었는데 그 근본 원인은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 후퇴”에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경사노위 “1호 합의”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개악은 여지없이 시한을 정한 채 합의를 강요한 결과물이었다. 한 공익위원조차 이 합의가 일종의 밀실 합의였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반면 경사노위가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사회양극화 해소’는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하위 50퍼센트 저소득층 구직자에게 6개월간 매달 50만 원 지급) 합의는 부분적 개선 내용을 담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재편?

결국 기층의 압력을 받고 청년‍·‍여성‍·‍비정규 계층별 3인 위원이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에 반대해 불참하면서 경사노위 본회의 의결은 무산됐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신속하게 후속 입법”을 주문했다. 경사노위 역시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답정너’ 기구임이 드러난 것이다.

심지어 경사노위는 노사정이 각각 절반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의결할 수 없는 현재 의사결정구조를 바꾸겠다고 나섰다. 개악 합의를 막는 “안전 장치”가 현실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도 드러난 셈이다.

경사노위 박태주 상임위원은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자들이 불참해 탄력근로제 개악의 본위원회 의결이 불발되자, 그들은 “보조축”일 뿐이라며 무시했다.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 취약한 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민주노총 참가를 압박하고 경사노위를 포장하려는 술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을 의사도 없는 것이다.

결국 현실에서 “지난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가 좌절된 것이 옳았음”이 확인된 것이다. 당시 좌파들은 공조해 경사노위 참여 말고 투쟁을 조직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이 수정안이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경사노위 참여 결정을 좌절시키는 데에는 기여했다.

선진 노동자들은 좀 더 일찍부터 경사노위에 대한 기대를 거두기 시작했으나 더 광범한 노동자들은 최근 경사노위가 노동개악 추진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반감이 커지고 있다. 1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가 부결된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최근 드러난 경사노위의 모습은 지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가 좌절된 것이 옳았음을 보여 준다 ⓒ이미진

노동운동 안팎에서는 여전히 사회적 대화를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일부 사람들은 경사노위 파행 원인을 잘 분석해 사회적 대화 기구를 재편하고 제대로 작동하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사정위와는 다르다던 경사노위가 마찬가지 결과를 낸 것을 보면, 사회적 대화 기구의 구조를 바꾼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경제 위기 시기에 체결된 국내외 사회적 합의가 예외 없이 노동계급의 조건 악화로 끝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경사노위를 손봐서 다시 활용해 보자는 것은, 본색이 드러나 위상이 실추된 경사노위에 새 숨을 불어넣자는 것에 불과하다. 개악 기구를 소생시키자는 것이니, 단결을 해치고 갈등을 키울 뿐이다.

지역이나 업종, 국회 중심의 사회적 대화 등 다양한 사회적 대화 활성화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대화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최근 사례에서도 드러났다. 지역 차원의 사회적 대화 모델이라던 광주형 일자리 합의는 결국 반값 일자리로 귀결됐다. 카풀-택시 갈등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서 도출된 택시월급제 합의는 국회에서 누더기가 되고 있다.

투쟁 실력

이런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노동 운동이 개악을 막을 투쟁 실력이 없으니 사회적 대화에 참가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했지만 노동개악은 추진되고 있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물론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한다고 정부가 노동개악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 명백했다. 그런데 경사노위에 들어간다고 개악이 멈출까? 그렇지 않다는 점이 지금 입증된 게 경사노위 참가 주장의 세가 약화된 이유 아닌가.

따라서 경사노위 불참 결정과 함께 예고된 노동개악을 막기 위한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은 진지하게 투쟁 조직에 나서지 않았다. 민주노총 중집에서는 1월 하순 민주노총 대대 이후 결과 해석을 둘러싼 논란으로 한 달 가까이를 까먹었다. 그 사이 안타깝게도 노동개악은 성큼 목전에 다가왔다.

민주노총이 싸울 힘이 없는 게 문제는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노동개악 반대 투쟁과 박근혜 퇴진 투쟁을 벌였던 2016년부터 성장세에 들어서 조합원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급증한 노동자 시위와 파업 건수는 노동 운동의 활력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 줬다. 노조 지도자들이 이런 잠재력을 이용해 단호하게 투쟁에 나선다면 개악 저지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저항에 나설 때 미조직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조건도 지킬 수 있다.

이런 잠재력을 구현하려면 좌파 활동가들의 구실이 중요하다. 자기 노조 사안이 아니면 무관심한 부문주의나 정당과 선거를 통해서만 정책을 바꿀 수 있다고 보는 노조 지도자들의 개혁주의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각기 벌어지는 투쟁들을 연결시켜 연대를 건설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일반화된 투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활동을 일관되게 하기 위해서 투사들은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와 교훈을 적용할 수 있는 혁명적 정치의 중요성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