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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루렌도 가족 첫 법정 진술:
냉혹한 난민 정책의 실체를 드러내다

2019년 4월 4일 인천공항에 구금된 앙골라 국적의 난민 루렌도 가족이 제기한 난민인정심사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의 세 번째 변론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에는 루렌도 가족 전원(루렌도, 바체테 씨와 그들의 자녀 4인)이 출석했고, 루렌도 씨와 바체테 씨가 직접 진술을 했다.

루렌도·바체테 씨 가족이 인천공항 안에서 노숙 생활을 한 100일 동안의 두 번째 ‘외출’이었다. 다행히도 루렌도 가족은 비교적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이날 재판장은 루렌도 가족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찼다. 한국디아코니아, 한국기독교장로회 인천노회 소속 목회자들과 나눔문화, 난민과손잡고, 노동자연대, 수원이주민센터 등 시민·사회 단체 회원들, 재판 방청 홍보물을 보고 온 개인들 30여 명이 함께했다.

모두들 루렌도 가족이 하루빨리 공항을 벗어나 우리 이웃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었다. 재판 시작 전에 지지자들은 루렌도 가족에게 힘을 줄 구호와 노래를 미리 연습하며 루렌도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재판은 한 시간가량 진행됐다. 원고 측(루렌도 외 5명) 대리인과 피고 측(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장) 대리인이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에 관해 변론한 뒤, 각각 원고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는 방식이었다. 난민 재판이 이렇게 장시간 진행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재판부가 이 사건이 사회적 쟁점이 돼 있는 상황을 상당히 의식하는 듯했다.

목숨이 걸린 문제

재판에서 난민인정심사불회부 결정의 부당함이 다시 드러났다.

루렌도 가족의 공동법률대리인 이상현 변호사는 루렌도 가족에 대한 처분이 “절차적, 실체적 하자가 있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인천공항출입국 측은 왜 루렌도 가족의 신청이 “명백히 이유없는 난민 신청”이라는 것인지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재판 과정에서 내부 심사 보고서도 제출하지 못할 만큼 이를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상현 변호사는 불회부 결정 처분서에 날인, 일련번호조차 없다는 점을 들어 이런 처분은 사실상 무효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루렌도 씨도 진술을 통해, 인천공항출입국 측한테서 불회부처분을 통보받을 당시에 “[불회부처분서를 제시받은 것이 아니라] 서명을 하라고 용지를 줬고, 서명을 거부했다”고 증언했다. 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고 내가 오히려 질문했다”고도 해 불회부 처분 통지가 매우 졸속적이었음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법정 진술을 통해 루렌도 가족이 매우 급박한 상황에서 앙골라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루렌도 씨는 법정에서, 앙골라에서 경찰에게 부당하게 체포된 후 “감옥을 빠져나와 교회에서 숨어 지내다 어렵사리 가족에게 연락을 했을 때, 부인이 [경찰에게] 강간당했다는 걸 알게 됐고 이에 [앙골라] 탈출을 결심했다”고 증언했다. 바체테 씨가 본국에서 당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증언은 비공개 상태로 진행됐다.

이처럼 루렌도 가족은 “강간, 구금, 고문을 피해 이 나라로 왔다.” 변호인단은 이번 판결은 “루렌도 가족의 목숨이 달린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사자들의 이런 절절한 증언에도 인천공항출입국 측은 “가짜 난민” 운운하며 냉혹함을 드러냈다. ‘난민이 자국을 탈출해 난민 신청을 한 경과에서 진정성이 중요’하며, 루렌도 가족의 불회부 처분이 취소되면 “난민제도가 악용”돼 “국경의 쪽문을 열어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앙골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콩고 출신에 대한 박해 상황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일 뿐 아니라 “가짜 난민” 논리가 그저 무자비한 국경 통제의 명분일 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재판 중 잠시 퇴정해 있는 동안(바체테 씨의 증언을 위해), 루렌도 씨는 앙골라에서 벌어지는 콩고 출신에 대한 박해와 차별을 생생히 들려 줬다. 루렌도 씨는 앙골라 지배자들이 콩고 출신을 차별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는 수법을 써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에게 콩고 출신을 공격하도록 무기를 지급하는 일도 허다했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가 루렌도 가족에게 ‘진정성’을 시험하며 범죄자 심문하듯 다룬 것에 많은 방청인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재판관은 출국할 당시 앙골라 경찰이나 정부 공무원들로부터 제지를 받은 적이 있는지, 앙골라를 탈출하려고 마음 먹은 시기가 언제인지, 집을 내놓은 시기는 탈출하고 마음 먹은 시기 전인지 후인지 등을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루렌도 가족이 앙골라를 황급히 나온 것인지 계획적으로 나온 것인지를 가리려는 듯했다.

심지어 그 재판관은 9살 자녀에게 지난 재판 때 입고 온 겨울옷을 언제, 어디서 샀는지를 캐물었다.

그러나 준비없이 도망 오면 난민이고 준비해서 오면 난민이 아니란 말인가?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가려 해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온 가족이 지구 반대편 머나먼 곳으로 떠나면서 준비 없이 갈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난민을 어떻게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꼬투리잡고 핑계를 찾는 것으로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또한 정부와 사법부가 그간 난민들을 얼마나 천대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승리하리라”

방청인들은 루렌도 가족이 법정에 도착했을 때부터, 다시 공항에 돌아갈 때까지 동행하며 아낌없는 지지를 표현했다.

그런데 인천공항 출입국 측은 무엇이 두려운지 방청인들과 루렌도 가족이 교감을 나눌 시간을 단 1분도 보장하지 않았다.

인천공항으로 돌아가기 직전, 가까스로 루렌도 씨가 전한 한마디가 연대 온 모든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여러분은 신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우리의 가족입니다.”

지지자들은 법원 건물 출입구에서 1960년대 미국 공민권 운동에서 널리 불려진 노래 “We shall overcome”의 멜로디에 프랑스어 가사 “Nous allons gagner”(‘우리는 승리하리라’라는 뜻, 루렌도 가족은 프랑스어 사용자다)를 붙여 함께 부르며 가족을 배웅했다.

또한 차에 올라타는 루렌도 가족을 향해 “Bon courage, les Lulendo”(‘루렌도 가족 힘내세요’)를 외치며 가족에게 힘을 북돋았다. 두 메시지가 적힌 손팻말로도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가족들에게 필요한 생필품들도 전달했다.

차에 올라탄 루렌도 씨는 팻말을 보더니 울먹였다. 바체테 씨는 손을 내밀어 그 팻말을 달라고 했다. 지지자들이 팻말을 넣어 주라고 소리치자 출입국청 직원이 팻말을 넣어 줬다.

공항으로 출발하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바깥을 향해 한참을 손을 흔들었다. 지지자들은 뭉클한 마음에 가족들이 떠난 자리를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루렌도 가족이 억류된 지 100일. 그동안 한 계절이 바뀌었지만, 루렌도 가족과 루렌도 가족이 상징하는 수많은 난민들에게 국경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죄가 아닌데, 왜 난민들이 구금되고 범죄자 취급받고, 살게 해달라고 애걸복걸 해야 하는가.

법원은 루렌도 씨 가족의 불회부 결정을 취소하고 입국을 허가해야 한다. 정부는 루렌도 가족에게 국경을 열어야 한다.

선고는 4월 25일 오후 1시 50분 인천지방법원 416호 법정에서 있을 예정이다.

ⓒ난민과함께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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