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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타이 총선:
타이 정세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다

3월 24일 타이에서 2014년 군부 쿠데타 이후 5년만에, 2011년 총선 이후 8년만에 총선이 열렸다.

타이에서는 근대화 이후 제국주의와 기회주의적 지배자들이 군부 쿠데타와 학살을 열 번도 넘게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타이의 노동자·민중은 투쟁을 포기한 적 없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 유감스럽게도 이번 선거를 기회로 대중 투쟁의 저력이 회복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을 듯하다. 오히려 타이 정세의 불안정성이 여전함이 드러났다.

이번 선거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선거가 어떤 상황에서 열렸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 타이에서는 신자유주의자이자 대기업가 출신의 자유주의자 탁신 치나왓이 집권했다. 타이 대중은 탁신 집권으로 고무돼, 타이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이런저런 운동들이 이어졌다. 1990년대 후반 경제 위기 후 양극화가 심각해진 것이 그런 운동들의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쿠데타를 밥 먹듯 일으킨 군부, 군부의 눈치를 봐 왔던 왕당파와 우파들은, 이런 운동들을 탁신의 꼼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의 우둔함 때문에 그런 운동들이 벌어진다고 봤고, 그래서 탁신 정권을 못마땅해 했다. 2006년, 이들은 탁신이 국제 회의에 참석하려 해외로 나간 틈을 타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를 주도한 자들은 국왕을 중심으로 ‘하나 된’ 타이를 지지하는 상류층, 전직 군 장성, 도시 자영업자들을 끌여들여 노란 셔츠 운동을 일으켰다.(노란색은 타이 왕실의 상징색이다) 그러나 이들은 근본에서 노동자·빈민·농민 대중을 천대하는 자들이다. 대중이 지배자들에게 경제 위기의 책임을 물으며 분노하기 때문이다.

2006년 쿠데타 이후 치른 선거에서 친탁신 정당이 또다시 승리하자, 쿠데타 주도자들은 ‘어리석은 대중이 투표하게 해 봤자 친탁신 정당을 불러들이기만 할 것’이라고 여기고 군대 개입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반면, 군대의 개입으로 민주적 권리를 유린당한 데 분노한 도시 노동자·빈민들, 농업 노동자들은 군부와 우파에 저항했다.(‘붉은 셔츠 운동’) 다양한 사상들이 이 운동 안에 뒤섞여 있었지만, 이 운동은 타이의 진보적 변화를 요구했고, 그런 의미로 붉은 셔츠를 입고 시위를 벌였다. 2010년 5월, ‘붉은 셔츠’ 운동은 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광주의 금남로’ 같은 수도 방콕 중심가에서 100명 넘게 죽고 1000명 넘게 다쳤다.

그러나 일부 지식인·엔지오·노동운동 세력들은 이 운동을 탁신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운동이라고 폄하했다. 탁신에게 탄압받은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의 일부로 결합돼 있었는데도 말이다.

정권은, 군부 탁신의 여동생 잉락이 총리로 있던 시절 지배 세력 간의 갈등 속에 점차 유약해졌다. 마침내 2014년 5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해 아래로부터 변화를 바라는 열망을 압살해 버렸다.

현 총리 쁘라윳 짠 오차는 당시 쿠데타의 수장이었는데, 쁘라윳 집권기의 타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억압적이었다. 군사정권은 타이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정부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고문했다. 예정돼 있던 선거는 번번히 연기됐고,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17년 당시 국왕 푸미폰 야둔야뎃이 죽자, 정부는 새 왕의 취임도 연기하면서 온 나라를 몇 년째 초상집으로 만들었다.

이번 총선은 이런 상황에서 열렸다.

이번 총선은 하원의원 500명과 상원의원 250명을 선출하는 선거였는데, 정부가 상원의원 전체를 지명했다. 하원의원 500명 중 350명은 지역구에서, 150명은 비례대표로 선출했는데,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가져갈수록 비례 당선자가 적어지게끔 되어 있었다. 오죽하면 영국 언론 〈BBC〉마저 이번 선거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했겠는가.

이런 얄팍한 짓의 목적은 당연히 현 정권을 연장하는 것이었다. 또, 이전에 매번 선거에서 승리하던 친탁신 정당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고, 군부에 대한 지지가 낮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현 정권은 선거에서 사실상 패배했다. 차기 정부를 구성하려면 상·하원의원을 합쳐 (전체 750명 중) 376명이 필요한데, 집권당 팔랑쁘라차랏당은 상원을 독점했는데도 하원에서 126석을 얻지 못했다.(선관위는 선거 결과를 5월에 최종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그 사이에 어떤 ‘꼼수’를 써서 정권을 연장하려 할 수도 있다.)

반면, 친탁신 정당 푸어타이당은 가장 많은 지역구 의석을 가져갔고, 비례대표에서는 집권당과 비슷한 정도로 득표했다. 푸어타이당은 유약한 자유주의 기업가들의 정당이다. 푸어타이당은 (일부 포퓰리즘 정책으로 농민과 빈민에게 혜택을 얼마쯤 줬다고는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민영화 정책도 추진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당시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가 벌인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해, 타이 내 무슬림을 무수히 학살한 책임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타이 정치 상황에서 군부나 군부의 꼭두각시인 민주당을 대신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푸어타이당은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한편, 자유주의 지식인 중심의 개혁 성향 정당 퓨처포워드당도 성과를 냈다.(젊은이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던 듯하다.) 퓨처포워드당은 푸어타이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할 공산이 크다.

안타깝게도, 타이에는 노동계급이 많이 존재함에도,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정치 조직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노동계급의 독립성을 옹호하며, 혁명적 구실을 하려는 극소수 혁명가들이 타이에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번 총선은 타이 상황이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이런 불안정성은 다시 정치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타이의 변화를 바라는 노동계급과 평범한 사람들, 혁명가들과 연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