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이종언 감독, 120분

4월이다. 누군가에게는 무척 잔인한 달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2014년 4월 16일을 구체적으로 기억한다. 사람들은 그날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마치 어제 일처럼 얘기한다.

나는 안산의 한 고등학교에 다녔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내 친구들의 친구였다. 나는 그날 울음 바다가 된 학교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친구들은 울면서 연결되지 않는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수학여행 다녀 와서 함께 놀기로 약속했다던 친구도 있었다.

매년 4월 16일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 집회에서, 기억식에서. 그런 나에게 〈생일〉은 꼭 봐야 하는 영화였다.

세월호 참사 5년을 맞아 개봉한 영화 〈생일〉은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가족, 친구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 낸다. 감독은 남겨진 사람들이 떠난 아이의 생일을 다른 이들과 함께 보내며 기억과 아픔을 나눌 수 있게 도왔던 경험을 영화에 녹였다고 한다. 영화지만 영화 같지 않아서, 스크린을 보고 있기가 참 힘들었다.

내 가족, 내 친구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아픔이다. 세월호 참사로 먼저 떠난 ‘수호(극중 인물)’의 동생은 바다를 두려워한다. 수호 아빠는 2014년 모습 그대로인 아들의 방을 차마 더 돌아보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수호 엄마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런 일 겪고 아무렇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라는 대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모두에게 남겨진 상처를 의미하는 듯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내가, 내 아이가 세월호에 탈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을 마음의 빚처럼 안고 산다.

반면,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에 털끝만치도 관심이 없는 박근혜 정부는 끊임없는 무책임과 이간질로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우파 정치인들은 “자식은 가슴에 묻는 것이다”(자유한국당 김진태, 세월호 인양에 반대하며 한 말), “해상 교통사고[에 불과]”, “유족이면 가만히 있어라” 등 온갖 망언을 쏟아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참사였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유가족들은 “돈벌레”, “세금 도둑” 등 모욕적인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입학 특례를 놓고 생존학생들도 비슷한 눈초리를 받았다. 

영화에서도 한 생존학생이 자신을 알아 보는 친구에게 자신이 생존학생이라는 것을 주변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며 급히 자리를 피한다. 남겨진 이들이 사람들의 시선으로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다.

영화 <생일> 스틸컷

영화는 홀로 수호를 그리며 괴로워하던 수호 엄마가 다른 가족들과 함께하며 변해 가는 과정을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 수호 엄마는 다치고 망가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독일 수 있었다. 함께 분노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건 큰 위로가 된다.

영화에서는 간접적으로만 비추지만, 희생자 가족들은 무책임한 국가 대신 직접 뛰어다니며 제대로 된 특별조사위원회와 선체 조사를 요구하고, 행진을 하고, 서명운동에 나서고, 집회를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행태에 분노하며 함께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행동했기 때문에 박근혜를 탄핵하고 세월호를 인양할 수 있었다.

기억하고 행동하자

나는 한동안 친구가 있는 납골당에도 가 보지 않고, 큰 집회 말고는 연일 터지는 세월호 이슈들을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세월호 참사를 가까이서 겪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그런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회의 변화를 위해 실천하는 활동에 함께하면서, 유가족이나 친구가 아님에도 세월호 참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이들을 알게 됐다. 함께 행동하고 대화하면서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참사를 가까이서 겪은 사람들은 이유 없는 자책감을 안고 산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분명히 해서, 참사가 평범한 사람들의 탓이 아님을 보여 줘야 한다. 국가가 세월호 침몰과 구조 방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남겨진 이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다.

아직 수많은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이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안전 사회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정부는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정책의 결과로 지난해 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씨가 사망했다.

무엇보다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인 사회 구조가 여전하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자본가들의 돈벌이가 지고지상의 과제인 자본주의 체제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뒤틀린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영화를 통해 함께 ‘생일’을 보내고, 함께 아파하고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남긴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메시지를 간직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