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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루렌도 가족 재판 방청 소감:
재판부에 대한 분노와 연대의 큰 힘을 느끼고 오다

나는 4월 4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루렌도·바체테 가족의 재판(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을 방청했다.

재판의 전반적 분위기는 우리 편이 주도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루렌도 가족을 공격하기 위해 온 사람들보다 우리가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천공항 출입국 외국인청장) 측 대리인이 진술한 내용이 매우 부실했던 반면, 루렌도 가족을 변호한 이상현 변호사의 주장은 다양하고도 명백한 사실들에 근거한 것이었다. 출입국 측은 ‘가짜 난민’ 프레임을 강조하며 변명에 가까운 진술만을 늘어놓았으나, 이상현 변호사는 공항 출입국 측의 불회부 결정 과정이 부당함을 입증하는 여러 증거를 제시했다. 덕분에 나도 루렌도 가족을 공격하는 이들의 논리를 반박할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방청에서 적잖은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나를 가장 분노케 했던 것은 판사들이었다. 한 판사는 루렌도 가족이 ‘진정한’ 난민인지를 판단하려고 했다(자세한 내용은 ‘난민 루렌도 가족 첫 법정 진술: 냉혹한 난민 정책의 실체를 드러내다’ 참고). 정말 많이 화가 났다. 하물며 루렌도 씨와 바체테 씨의 심정은 어땠을까.

나는 법정 경위들이 ‘자유, 평등, 정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배지를 달고 있는 걸 봤다. 그런데, 법정에 있는 자들이 ‘신성하고 존엄한’ 재판 과정에서 보여 준 모습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루렌도 가족이 인천공항에 갇혀 있도록 하는 것이고, 평등은 커다란 위험을 피해 이 땅으로 온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차별하는 것이며, 정의는 목숨을 위협받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일까?

물론 모든 판사가 노골적으로 이러한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재판에 임하는 태도를 보고서 그들의 속셈을 눈치챌 수 있었다. 판사들의 태도가 이러니, 난민 연대 운동을 건설하는 우리가 재판 과정에 끈질기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연대의 중요성

나는 이번 방청이 기계적인 참가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목적 의식’을 확고히 하려 했다. 내가 가진 목적 의식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재판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구체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노력했다. 원고 측과 피고 측의 증언, 판사들의 질문, 재판 전반의 분위기 등을 잘 파악할 수 있다면, 이후의 난민 연대 운동 건설에서 더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둘째, 루렌도 가족을 지지하는 이 방청 과정에서 더 큰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지루함을 느끼거나 의무감에서만 비롯하여 난민 방어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면, 내 기여는 효과적이지도 지속적이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목적 의식은 ‘머리’와 ‘가슴’이 함께 움직이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 싶다는 내 바람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제 내가 가졌던 목적 의식을 돌아보며 이번 방청 과정에서 얻은 내 개인적 성과를 돌아보려 한다. 우선, ‘가짜 난민’ 논리를 더 확실하게 반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난민 반대 입장의 최전방에 서 있는 인천공항 출입국 측의 주장이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 ‘가짜 난민’을 걸러 내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 같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논파하는 것이 난민 반대자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게 됐다.

또한, 나는 루렌도 가족를 지지하고 응원하러 간 사람이었음에도 오히려 그들 때문에 더 큰 힘을 얻었다. 루렌도 씨는 자신을 지지하러 온 사람들에게 ‘신이 보내 주신 우리의 가족’이라는 표현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것은 루렌도 씨가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감사 인사가 아니었나 싶다. 루렌도 씨의 그 한 마디가 내게는 정말 커다란 기쁨이 됐다. 이제는 루렌도 가족의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싶어질 정도이다.

루렌도 씨의 아이들도 떠나기 전까지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 줬다. 이것들이 바로 ‘연대’가 발휘하는 힘이 아닐까?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셨던 고(故) 김관홍 잠수사의 말이 떠올랐다. “세월호 유가족 분들을 만나서 ‘고생했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신과 치료제를 끊었어요. 그 한 마디가 저에게는 …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김관홍 잠수사는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참여하면서 트라우마를 얻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번 재판은 불회부 결정에 대한 취소 소송이기 때문에 이 재판에서 승리하더라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다. 루렌도 가족이 난민으로 정식 인정받고, 한국에서 잘 정착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는 다른 난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우리 단체의 이름이 ‘노동자연대’인 만큼 우리가 ‘연대’의 강력한 힘을 믿고서 거침없이 우리의 길을 걸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역시 치열하게 싸워야겠다.

마지막으로, 루렌도 가족을 지지하기 위해 먼 걸음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함께한 사람들 덕분에 난민 지지 운동에 대한 내 확신과 자신감이 커 가는 것을 느낀다. 루렌도 가족 재판의 선고와 그 이후, 그리고 한국에 있는 난민들을 위해 끝까지 함께 연대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