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도 웃는 게 아냐 4월 9일 파리에서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을 만난 테리사 메이 ⓒ출처 Number10(플리커)

프랑스 급진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훌륭한 소설 《유예》는 1938년 9월 뮌헨 위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서 사르트르는, 뮌헨회담으로 제2차세계대전 발발이 1년 미뤄졌을 뿐 위기 자체는 전혀 해결되지 못했음을 그렸다.  

4월 10일 유럽연합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예정일을 할로윈[10월 31일]까지 미룬 것도 같은 종류의 ‘유예’다. 물론 이번이 1938년보다 판돈이 적고, [파시즘과 경합했던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경쟁하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갈등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1938년에 견줘]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세력 관계는 여전히 유럽연합에 유리한데, 유럽연합은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에게 더는 타협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제 공은 영국 하원에 넘어갔다. 그런데 영국 하원은 ‘하드 브렉시트’ 지지자, ‘소프트 브렉시트’ 지지자, 강경 유럽연합 잔류파로 분열해 마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어느 쪽도 다수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현 상황이 보수당과 노동당에 똑같이 위기라는 식의 어설픈 논평이 많은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테리사 메이는 제 손으로 보수당을 브렉시트 정당으로 자리매김시켰고, 상황이 ‘하드 브렉시트’로 귀결될 수밖에 없도록 갖은 술책을 부렸다. 

영국이 유럽연합과 관계를 단절해서 영국 경제가 치를 대가 때문에 영국 대기업들이 격분하자, 메이는 한 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2018년 11월 메이의 브렉시트 합의안 초안에도 반영돼 있던 그런 후퇴의 효과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수당 내 [유럽연합 탈퇴파와 잔류파] 두 파벌 모두 메이에게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의회 내 다수를 점하지 못한 메이는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다.

여론의 분위기도 비슷한 듯하다.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가 보수당 위기에서 [충분히] 득을 보지 못한다는 비판은 유럽연합 잔류파의 단골 소재가 됐다. 그러나 현재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은 보수당을 앞서고 있다. 그리고 “유예”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영국은 곧 [5월 23일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메이는 이런 상황을 피하려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유야 뻔하다. 그 선거에서 보수당은 참패할 듯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여론조사 기업 오피니움리서치는 4월 14일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지지율을 17퍼센트로 집계했다. 같은 조사에서 극우 정당 영국독립당(Ukip)이 보수당을 맹추격해 지지율 13퍼센트를 기록했고, 영국독립당 전 대표 나이절 패라지의 브렉시트신당도 지지율이 12퍼센트나 나왔는데 말이다.

탈당

노동당 지지율은 29퍼센트를 기록했다. 노동당 우파 의원들이 탈당해 만든 ‘독립 그룹’(이제는 ‘체인지 UK’라고 불린다)과 녹색당에 지지층을 뺏겼는데도 말이다.

유럽의회 선거 때문에 교착 상태 해소가 더 어려워질 듯하다. [메이가] 노동당과 타협한다면 그 타협에는 영국의 관세동맹 잔류가 포함될 텐데, 여기에는 보수당 의원 약 170명과 내각 성원 약 10명이 공개적으로 반대한 바 있다.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지지층이 오른쪽으로 이탈하고 있기 때문에, 타협 일체를 거부하는 보수당 내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다. 메이가 코빈과 협상하는 것을 환영한 보수당 내 브렉시트 지지파 일부가 야단법석을 부리고 있지만, 이런 자들은 극소수다.

메이를 보수당 전 총리 로버트 필과 비교해 보면 메이의 처지가 얼마나 열악한지 두드러진다. 필은 1845~46년에 소속 정당 보수당의 보호무역주의 전통을 거슬러 [곡물 수입을 규제하는] 곡물법을 폐지했다. 필은 내각 성원 중에서도 소수파였기 때문에 야당 휘그당의 도움을 받고서야 곡물법 폐지를 단행할 수 있었다.

필 지지자들이 정권 장악력을 회복하기 위해 휘그당과 동맹을 맺으면서, 보수당은 분열했다. 당시 유명한 필 지지파였던 윌리엄 글래드스톤은 필 지지파와 휘그당을 묶어 자유당을 창당했다. 보수당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나고서야 다수당이 돼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필 지지파와 달리] 메이 지지파가 부상하지는 않을 듯하다. 메이 내각에서 가장 주도적인 유럽연합 잔류파인 고용·연금장관 앰버 러드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고작 3퍼센트 지지율을 기록했다. 영국 친기업 언론 〈파이낸셜 타임스〉는 러드가 “킹메이커 구실을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차기 당권을 노리는 보리스 존슨 같은 유럽연합 탈퇴파 인사들이 러드의 지지를 얻겠다고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며 말이다.

메이에게는 보수당 당론을 거슬러 [코빈과의] 타협을 강제할 만한 정치적 영향력이나 지지 세력이 있다고 보기 매우 어렵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누가 더 강경한 유럽연합 탈퇴파인지를 놓고 벌이는 경쟁에 매몰돼 있느라 보수당은 영국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에 점점 더 어려움을 겪을 듯하다.

둘째, 영국이 유럽연합과 완전히 결별하는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줄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할로윈이 다가오면, 유럽연합은 메이에게든 (누가 됐든) 그 후임자에게든 다시 한 번 유예를 주기 꺼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