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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자유주의야말로 정치적 분열선”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 장석준 상임연구원이 당내 주요 쟁점들을 말한다

기자?당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당직공직겸직 금지 조항을 풀자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 되면 원외 지도부가 의원단을 통제한다는 합리적 핵심이 사라질 텐데요.

장석준?이번에 제출된 진보정치연구소 보고서는 저도 함께 작성한 것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전체 틀을 유지하면서 의원단 참여를 조금 늘리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금지 조항을 없애되 중앙위원회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입장은 전자였어요. 의원단과 최고위원회가 의사소통이 잘 안 돼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의원단의 목소리가 강화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직과 공직 분리 틀을 기본으로 유지하는 것이죠. 당 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일반 최고위원, 여성 최고위원 등 전체 구도에서는 여전히 원외를 중심으로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이죠. 당 대표를 절충하자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 같은데,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라고 봐요.

기자?〈말〉 5월호에 2004년 총선 이후 1년 당 활동을 평가하는 글을 썼는데요. 당 일각에서는 최고위원회의 구성을 들어 당의 우경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데요.

장석준?그야말로 주관적인 평가죠. 총선이 끝나고 나서 민주노동당이 의회 진출을 하자 당원들이 의회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이나 경계 의식을 가지고 그 동안 관심 없었던 당직공직 분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든요. 비슷한 시기에 지도부를 선출했어요. 따라서 그것이 우경화를 반영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기자?일부 당원들은 당이 민주노총에 의지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장석준?민주노총의 기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만 갖고 평가하기는 힘들죠. 서로 다른 내용이 섞여 있잖아요. 가령, 민주노총이 노동자 계급 내 고용불안층이나 저소득층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 정당이 아니라 개혁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그것은 구체적으로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지난 4월에 당 의원들이 중소기업 살리기 차원에서 중소기업인들을 만났습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횡포를 노동자에게 전가합니다. 당 의원들의 중소기업인 만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석준?앞으로 발전 방향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 자본가 전체가 신자유주의 블록으로 통합돼 있고, 신자유주의에서 헤게모니 세력은 독점 재벌이나 해외 금융 자본이고 나머지는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든 깨는 것, 특히 중소자본과 신자유주의의 핵심 부분을 갈라놓을 필요가 있죠.

룰라가 2002년 대선 때 그랬던 것처럼 중소 자본가와 노동자의 블록을 형성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자본가 블록을 이완시키는 전술은 분명히 필요하죠. 물론, 중소 자본가와의 동맹으로 발전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죠. 아직은 그렇게 걱정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기자?비정규직의 많은 부분이 중소기업에 있는데, 당이 한편에서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다른 한편에서는 중소기업 육성을 말한다면 실천에서 긴장을 빚을 것 같은데요.

장석준?중소기업 살리기 전술을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중소기업 자본가의 동의를 얻기 위한 전술인지, 아니면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 하나를 대중에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차이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죠.

다시 말해,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문제가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 전체의 이해를 갖고 같이 싸워 나갈 때만 자신들의 처지가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기 위한 전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죠.

기자?최근에 당은 무상의료·무상교육·부유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이 반신자유주의 투쟁 강화 쪽으로 무게중심을 두게 되면, 언론이 시장을 부정하는 것이냐고 공격할 수도 있을 텐데요.

장석준?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 한다고 해서 시장을 부정하는 게 아니죠. WTO에 반대한다고 해서 국제무역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국제무역의 독점세력의 패권 유지를 반대하는 것이죠.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갈라쳐야 할 지점은 1920∼1930년대처럼 개혁주의 대 혁명주의의 대립이 아니라 사회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를 사실상 받아들이는 중도 좌파 대 사회민주주의 왼쪽에 있는 모든 세력의 대립입니다.

가령, 라폰테인 같은 사람은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케인스주의적인 혼합 경제를 주장했다가 내각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갈라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민주노동당 상황도 그렇다고 봐요.

기자?말이 나온 김에, 지금 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 왼쪽에서 새로운 정당들이 실험하고 있고, 인상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유럽 정치의 변화를 어떻게 보십니까?

장석준?지금 상황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국면이고, 그 동안의 정치적 분열선은 신자유주의의 첨예한 공격과 그에 대항하는 노동자·민중의 반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어요.

왜냐면, 그 동안 사회민주주의 왼쪽의 커다란 급진 좌파 세력은 공산당들이었는데, 이 정당들은 스탈린주의의 잔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상당수 대중은 사회민주주의 지도부가 사실은 사회민주주의를 버렸는데도 여전히 사회민주주의 지도부를 따르는 정치 구도였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급격하게 새로운 정치적 분열선이 형성되고 있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봐요. 사회민주주의가 차지했던 공간에서 사회자유주의적 부분과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부분이 갈라지고,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부분과 그보다 왼쪽에 있는 부분이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대중이 그 쪽으로 옮아가는 이행기의 초기 단계라고 봐요.

물론,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르펜 같은 나찌가 이득을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기자?당 내에서 민족주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데요. 종종 우파 민족주의와 저항하는 민족주의를 구별하지 않은 채 싸잡아 비난하는 당원들도 있구요. 물론, 민족주의가 근본에서 부르주아 국민 국가를 수립하려는 것이지만,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를 전술적으로 지지해야 하지 않을까요?

장석준?20세기에 식민지 민족해방을 이끌었던 좌파 민족주의 이념은 역사적 시효가 다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마오, 호치민, 게바라, 주체사상 등은 21세기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21세기에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주의가 전혀 필요 없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지금 한국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 정서나 그 운동은, 제가 보기에, 20세기 반제 민족주의 전통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문제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죠. 지금 한국이 전체 제국주의 사슬에 묶여 있기는 하지만 그 상황이 20세기와 같은 상황은 아니죠. 미일 동맹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하나의 독자적인 국가입니다.

가령, 일본에 대한 최근의 비판과 분노의 경우에도 그것이 미일 동맹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서 비롯한 반제국주의인지 아니면 단순히 한국 대 일본의 구도에서 나오는 즉자적인 민족주의인지를 제대로 봐야 합니다. 전자는 우리가 발전시킬 의의가 있겠지만, 후자는 국수주의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