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록 밴드 Rage Against The Machine(이하 RATM)이 6월 21일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공연 한다는 소식은 많은 젊은이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RATM은 현재 가장 인기있는 록 밴드 중 하나다. RATM이 발표한 두 번째 앨범 Evil Empire와 세 번째 앨범 The Battle Of Los Angeles는 발매 첫 주만에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차지 했다. 그런데 왜 많은 젊은이들이 이들에게 열광하는가?

무엇보다 RATM의 폭발적인 사운드와 독특한 음악 때문일 것이다. RATM의 음악은 하드 록, 펑크, 랩 등의 장르가 결합된 하드코어라고 불리는 음악이다. 이 다양한 장르가 잭 드라 로차의 강력한 랩보컬에 실려 밴드의 리더 탐 모렐로의 기타 사운드와 어우러지면 강렬하고 선동적인 사운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RATM이 전하는 메시지와 그들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RATM이 전하는 메시지는 급진적이고 때로는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Rage Against The Machine이라는 밴드 이름에서 Machine은 자본주의 체제를 상징하는 단어이다. 즉, 이 그룹의 이름 자체가 ‘체제에 대한 분노’인 것이다. 노래도 Freedom, Take The Power Back, Wake Up, Killing In The Name, Vietnow, Guerrilla Radio 등 예사롭지 않은 제목들을 달고 있다. 아예 두 번째 앨범은 미 제국주의를 빗대 Evil Empire(사악한 제국)라는 제목을 달아 놓았다. 데뷔 앨범에 실린 Township Rebellion(타운쉽 폭동―1991년 LA 폭동을 다룬 듯)에서 RATM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반란을 일으켜라, 반란을 일으켜라. 그리고 소리쳐라.

사람들이 여전히 이 지옥같은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래 이 사회구조가 감옥 그 자체야.

우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지?

봐 무엇이 문제인가?

반격을 위한 행동이 필요해.

세 번째 앨범에 실린 Guerilla Radio의 가사는 이렇다.

독점의 풍경

사실을 왜곡시킨 카메라 (걸프전 당시 미국 언론을 빗대...)

그것이 뜨거운 햇빛 아래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피와 석유에 목말라 있는 대머리 독수리(미국의 상징)를 위한 것인가?

RATM이 Tool이라는 밴드와 함께 부른 Judgement Night(심판의 밤)라는 미발표곡은 이런 가사를 선동적으로 반복해 외친다.

“당신이 혁명가를 죽일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은 혁명을 죽일 순 없다.”

이런 것들 때문에 미국의 한 언론은 이들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밴드”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밴드”

현재 RATM은 미국 흑표범당의 지도자로서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받은 무미아 아부자말 구명활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세 번째 앨범인 The Battle of Los Angeles에 수록된 12곡 중 2곡을 무미아 아부자말에게 바쳤다. 또한 RATM은 미국의 유명한 쇼 프로그램인 데이빗 레터맨 쇼에 출현해 ‘Guerilla Radio’ ― 무미아 아부자말에게 바친 그 노래 ― 를 부르다 갑자기 “Free Mumia!”를 외쳐 쇼 진행자와 프로듀서를 난처하게 만들고 방송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1996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쇼 프로그램인 ‘Saturday Night Live’에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이자 억만장자인 스티븐 포브스와 함께 출현한 적이 있다. 탐 모렐로는 “RATM은 농담이나 하고 균등과세 ― 부자나 빈민이나 같은 비율로 세금을 내자는 것 ― 나 이야기할 억만장자 옆에 나란히 서서 우리의 주장을 이야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RATM은 공연 전에 자신들의 앰프에 성조기를 거꾸로 매달았다. 그들이 연주하기 불과 몇 초 전 무대 스탭들이 성조기를 끌어내리려 했다. 결국 첫 곡의 연주가 끝나고 깃발이 찢겨지자 NBC방송 관계자들이 몰려와 즉시 건물에서 나가달라고 명령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베이시스트인 팀 밥은 스티븐 포브스의 대기실로 쳐들어가 찢겨진 성조기 조각을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1997년에는 워싱턴 경찰이 RATM의 콘서트를 금지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법정에서 경찰은 RATM이 “전투적·급진적·비주류적·폭력적이고 법집행에 반대하는” 주제들을 연주한다며 콘서트 금지의 필요성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법원은 RATM의 콘서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콘서트는 경찰들이 네 겹으로 둘러싼 속에서 진행됐다. RATM은 공연의 시작을 “Fuck Tha Police”로 시작했으며, 보컬인 잭 드라 로차는 무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야심을 가진 돼지들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우리가 경찰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기 때문에, 그가 우리에게 덜 폭력적이라 한 것을 우리는 모욕으로 여긴다.”

1999년 무미아 아부자말의 석방을 위한 콘서트 때도 뉴저지 주지사는 공연을 금지하려 했다. 이것도 결국 법원에서 패소해 콘서트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주지사는 사람들에게 공연에 참가하지 말라고 위협했고 티켓 판매 담당회사도 전례 없이 티켓을 환불해주기 시작했다. 이틀 후 언론은 2천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환불을 요구했다고 떠들어댔으나 그 티켓들은 환불되자마자 다시 불티나게 팔렸다!

콘서트가 시작되자 공연장 관계자들은 공연장 안에서든 바깥에서든 어떤 인쇄물도 나누어 줘선 안 된다고 RATM에게 통보했다. 그 때 RATM의 매니저는 무미아 판결에 대한 의문점들과 ‘무미아 아부자말은 누구인가’라는 내용을 인쇄한 리플릿을 2만 장이나 들고 있었다. 그들은 싸웠고 결국 앰내스티인터내셔널(국제사면위원회)과 국제적인 무미아 지원단체, 기타 사회단체들이 리플릿을 배포할 권리를 얻어냈다.

한 인터뷰에서 밴드의 이론적·정치적 리더인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는 이렇게 말했다.

문 : 지난해 시애틀에서 있었던 항의 시위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습니까?

답 : 시애틀 시위는 각성하라는 신호 같았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대중적 조직의 필요성을 일깨웠습니다. 그것은 WTO에 반대하는 노동자, 환경운동가, 학생들의 저항이었습니다.…… 그 시위는 WTO 회의를 무산시킬 만큼 강력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힘을 뜻합니다. 그것은 미국에서도 경쟁사회에 동의하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가 있음을 보여 니다. 우리는 시애틀에서 시위를 벌인 사람들 중 일부가 우리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시애틀 시위를 조직한 몇몇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순회공연 때도 그 저항정신이 함께 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문 : 어떻게 당신은 정치적인 활동을 하게 됐습니까?

답 : 나는 정치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케냐 독립운동 단체의 회원이었고 어머니는 시민권 운동과 반검열 캠페인에서 활동했습니다. 나는 백인들이 많이 사는 시카고 근처의 리버티빌 교외에서 자랐습니다. 미국에서 유색인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즉각적으로 정치적 경험을 하게 됨을 뜻합니다. 리버티빌은 유색인종에게 관대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KKK단의 유인물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인종주의자들이 차고에 목을 매는 밧줄을 매달아놓은 적도 있죠. 나는 대학에 입학해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에 참여했고 보스톤에서 반KKK단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문 : 당신은 사회가 어떻게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 : 나는 사회주의자입니다. 나는 노동자계급에게 커다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겠죠. 지배자들은 경험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애틀과 같은 사건들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지난해 〈중앙일보〉가 베이시스트 팀 밥과 가졌던 인터뷰도 보자.

문 : 한국도 정치적 혼란이 많은 나라였는데 혹시 한국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답 : 잘은 모르지만 미국도 과거에 일부 책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내 조국이지만 전혀 자랑스럽지 않아요. 일부 사람들은 마치 전쟁을 즐기는 듯한 무서운 나라입니다.

문 : 최근 코소보 난민을 위한 음반 ‘노 바운더리’에 곡을 헌정했는데...

답 :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불렀던 ‘톰 조드의 유령’입니다. 미국이 또 다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죽인 것〔유고 공습을 지칭―필자〕에 반발해 헌정했습니다. 코소보는 LA만큼 작다는데 석달이나 폭탄을 퍼부었다니 남아날 곳이 있겠습니까?

RATM의 각 멤버들은 서로 독립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으므로 RATM 전체의 정치적 성향은 단일하지 않다. 그러나 탐 모렐로는 자신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다.

“저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저는 민중의 것이 아닌 이 사회를 민중이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치뿐만 아니라 [일하는] 현장에서도 민주주의가 구현돼야 합니다.”

멕시코 태생의 보컬리스트 잭 드라 로차는 콘서트나 작업이 없는 시간을 사파티스따 지지활동에 쏟아붓고 있다.

왜 RATM 가사가 젊은이들을 흥분시키는가?

많은 RATM 팬들은 사운드뿐 아니라 가사와 메시지에도 열광한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특히 그렇다. 한 좌파 주간지는 RATM의 콘서트를 본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 공연은 반자본주의자들의 축제와도 같았다. 공연장은 정치범인 무미아 아부자말과 사트팔 램을 방어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 콘서트에서 수천 명의 팬들이 “무미아에게 자유를”이라고 외쳐댔다.”

RATM의 가사는 미국의 속어가 많이 섞여 있어 독해가 쉽지 않기 때문에 모든 한국의 록 매니아들이 이들의 가사를 이해하고 듣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많은 RATM 팬들은 가사보다는 음악 자체에 매료됐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RATM의 팬들은 다른 밴드의 팬들보다 가사를 알아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밴드의 팬클럽 홈페이지에는 가사 해설 같은 자료들을 찾아내기 힘들지만 RATM의 팬클럽 홈페이지에서는 부족한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서로 가사를 해석해 돌려보려는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사람들이 RATM의 메시지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팝 음악의 역사에서 저항적인 노래들이 인기를 얻었던 적이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1960년대 말 반전운동이 물결쳤던 미국이다. 당시 평화에 대한 갈망, 히피 문화, 잇따른 대학 점거농성 등은 많은 젊은이들을 좌경화시켰다. 이 좌경화 흐름은 대중 음악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에 대한 환멸의 분출구로 저항적이거나 최소한 반항적인 음악을 선택했다. 밥 딜런, 도어즈,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제퍼슨 에어플레인 등이 이 시기에 인기를 얻었고 사이키델릭 록이 흥행했다. 우드스탁 록 페스티벌이 개최됐던 때도 이 때고, 비틀즈가 사랑노래에서 저항적인 음악으로 변신했던 시기도 이 때다.

두 번째 저항음악의 전성기는 1970년대 중후반이다. 1968년부터 1970년대 초에 유럽을 뒤흔들었던 투쟁 고양기에 영향받은 젊은이들은 1974년부터 불어닥친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가져온 결과들에 또 한번 강한 환멸을 느꼈다. 이 때 록음악계에 폭풍처럼 불어닥친 것이 섹스 피스톨즈와 클래시로 대표되는 펑크록의 열기였다.

이 앨범이 주시하고 있는 관심사는 오로지 한 가지다. 메인스트림 / 제도권 / 기성세대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과 욕설로 얼룩진 노랫말은 과도한 실업률과 비전 없는 미래에 전전긍긍하던 당시 젊은이들의 분노와 박탈감을 직설적으로 배설해놓음으로써 그들의 처지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변론을 자처했던 것이다.(섹스 피스톨즈의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해설집 중에서)

섹스 피스톨즈는 ‘Anarchy In The U.K.’와 같은 노래에서 “나는 무정부상태를 원한다.”라고 노래했고, 클래시는 더 실천적으로 나아가 반나찌 시위에서 공연을 하고 다녔다.

현재 RATM과 같은 좌파 밴드들의 인기는 세 번째 사례가 될 것이다.

만성적인 경제 불황과 높은 실업률은 많은 청년들을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젊은이들이 가졌던 정서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만들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10년 동안 세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유시장의 승리’를 자축했다. 그들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얼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했고, 프란시스 후쿠야마 같은 사람은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까지 펴내며 자본주의는 인류가 선택하는 최고이며 최후의 경제체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그들이 설교하고 다녔던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말미암아 설득력을 잃었다. 시장이 초래한 대중의 궁핍과 환경 파괴, 제3세계의 위기 등은 대중에게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을 낳았다.

그래서 프란시스 후쿠야마조차 최근 시사 주간지 〈타임즈〉에 기고한 ‘사회주의가 다시 올 것인가’라는 글에서 좌파의 새로운 부활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소외된 계층의 편에 서서 가진 자들의 권력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평등주의적인 정치적 자극은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미 재기를 시작한 상태”라며 사회적 평등을 향한 자극의 생생한 실례로 지난해 말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와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 반대한 좌파들의 연대를 들었다.

시애틀 전투는 이러한 ‘반자본주의 정서’의 극적인 표현이었다.

올해 국제적 메이데이 시위들은 이런 좌경화 흐름을 보여 준 또 하나의 사례이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노동절 시위를 ‘반자본주의 시위’라고 표현했다.

노동절인 1일 독일 베를린에서 자본주의 반대를 주장하는 시위대와 경찰간에 충돌이 발생, 경찰 226명이 부상하고 시위 주동자 401명이 체포됐다고 현지 관리들이 말했다. 관리들은 이날 저녁 극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 약 5천명의 시위대가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서 노동절 기념행사를 가진 뒤 거리로 진출해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과 충돌했다고 전했다.(〈중앙일보〉)

영국 노동절 시위 폭력화 … 40여명 부상. 영국 런던 시내에서 열린 반자본주의자들의 노동절 시위가 폭력화, 경찰관 9명을 포함해 40여명이 부상하고 50만 파운드(10억 원)의 재산피해가 났으며 시위대 95명이 체포됐다.

윈스턴 처칠경의 동상이 서있는 의회광장에서 축제 같은 평화로운 ‘게릴라 가드닝’으로 시작한 이날 시위는 복면을 한 3백여 명의 시위대가 갑자기 해적선 깃발을 흔들며 런던 시내 중앙관청가에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 1곳을 공격, 완전히 파괴하면서 폭력화했다.

벽돌과 망치, 곤봉으로 무장한 시위대는 갑자기 나타나 맥도날드 가게를 덮쳤으며 유리창은 물론 가게 안의 모든 것을 마구 부셔버려 유리 파편이 길바닥에 흩어졌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일부 시위대는 가로수와 가로등으로 기어올라가 북을 쳤고 윈스턴 처칠경 동상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했으며 경찰차에도 올라가 난동을 부렸다.

한편 영국 중부의 맨체스터 시에서도 반자본주의자들의 시위가 벌어져 8명이 체포됐다.

이날 시위에서 250여명의 시위대는 시내 중심가의 교차로에서 연좌시위를 벌여 전차 운행을 중단시켰으며 옥스포드가의 맥도날드 가게를 공격하려 했으나 30여명의 기마경찰과 헬기를 동원한 경찰에 의해 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영국 경찰은 이날 시위 진압을 위해 5천5백여 명의 경찰관을 투입했으며 9천명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시키는 등 30년만에 최대규모의 진압작전에 나섰다.(〈중앙일보〉)

세계 도처서 ‘반자본주의’ 항의. 다국적 기업들과 국제기구들이 요즘 세계 곳곳에서 일반대중들로 부터 수난을 당하고 있다. 올 노동절인 지난 1일 런던, 베를린, 서울, 그리고 기타 여러 도시에서 벌어진 이른바 “반(反) 자본주의” 데모들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다국적 기업들과 국제기구들의 막강한 힘이 일반대중들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는 오늘날의 점증하고 있는 추세의 일환으로 벌어진 것이다. ‘세계경제의 세계화’로 촉발된 이같은 항의의 규모는 특히 작년 11월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정상회담에서 두드러졌다. 당시 수만 명의 데모대원들이 벌인 데모로 새 밀레니엄의 무역협상을 정립하려는 고위회담의 결렬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일의 노동절 데모는 “일반대중과 경제의 세계화간에 빚어지고 있는 전투”의 가장 최신 라운드인 셈이다.

이들 데모대원 중에는 노조원들을 위시하여 종교지도자, 환경보호 운동가, 농부, 일반소비자, 인권 운동가, 동물의 권리보호 운동가, 평화주창자, 예술가, 무정부주의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전략에는 데모, 행진, 기도회, 대체회의 개최, 가두 연극공연, 보이콧, 봉쇄, 온갖 종류의 대항 데모 등이 들어있다. 이달 중 워싱턴에서 열릴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회의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한겨레〉)

사회적 분위기가 젊은이들을 좌파 밴드들의 급진적 가사에 귀기울이게 하고 있다.

RATM뿐 아니라 무정부주의 밴드인 첨바왐바(Chumbawamba)도 오랫동안 반 무명생활을 해오다 지난해에 세계적으로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됐다. 이들도 RATM 못지 않게 무미아 아부자말의 석방운동에 열심히 나서고 있다. 독일의 아타리 틴에이지 라이엇은 “독일은 죽어야 한다.”고 노래했다. 막연한 분노만을 표출했던 메탈리카도 최근에 발표한 곡에서는 사회적 문제들을 다룬 가사의 비중이 늘어났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활동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탐 모렐로는 이렇게 답하고 있다.

“언제나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밴드들이 있었지만 그들 모두가 항상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술과 정치의 결합을 통해 그 중 몇몇 밴드들이 청중과 공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세계화는 RATM과 같은 밴드들에게 음악을 전 세계에 전파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나는 우리와 같은 밴드들이 저항 분위기를 일으킨 원인이라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적 전장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또 그러길 원합니다. 우리는 월스트리트와 거대 자본이 강요하는 거짓과 위선에 맞서 젊은이들의 가슴과 영혼을 위해 싸웁니다.”

“그러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열쇠는 음악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행동이 열쇠입니다. 경찰들이 우리를 따라 다니는 것은 우리를 겁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의 청중들이 진실을 듣고 스스로 조직화 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탐 모렐로는 얼마 전 4월 12일 LA 시내에서 있었던 LA 건물관리 노동자들의 시위에 참여해 짧은 연대사를 한 후 RATM의 이름으로 파업기금에 4천 달러를 기부했다.

파업아 승리를 거두자 탐 모렐로는 기꺼이 논평을 발표했다.

“RATM은 LA 건물관리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작업장에서의 존엄을 요구한 투쟁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승리는 노동자들과 학생들, 그리고 공동체가 사회 정의를 위해 연대해 투쟁할 때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한 완벽한 예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RATM의 팬들을 발견할 때 그들과 RATM이 부르짖는 주장에 대해 토론함으로써 그들을 조직해야 한다. RATM이 원하는 것도 아마 그와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