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마르크스주의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62호(2019년 봄)에 기고한 ‘Shambling towards the precipice’를 〈노동자 연대〉 신문 기자 김준효가 요약한 것이다. [  ] 안의 말은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부가 삽입한 것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이하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과 유럽연합의 협상이 애초의 탈퇴 예정일인 3월 29일을 한참 넘긴 지금까지도 영국 의회 내 쟁투 속에서 지지부진하게 계속되고 있다. 불확실성이 매우 크지만, 상황은 점차 ‘노 딜 브렉시트’*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다. 종착역에 언제 어떻게 도착할지 점치기는 매우 어렵지만, 상황이 전개되는 동학을 분석할 수는 있을 것이다.

따로 노는 자본과 국가

영국 자본에게는 영국이 유럽연합에 잔류하는 것이 이익이다. 그 때문에 영국 자본가들은 “하드 브렉시트”를 격렬히 반대하고, 영국이 유럽단일시장·관세동맹에* 잔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영국 정치권은 산산히 분열해 있어서, 자본가들이 원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할 상태가 전혀 아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사회를 분석하는 틀을 제시했다. “경제 체제를 이루는 생산관계의 총체”인 토대와 그 위에 형성되는 “법적·정치적 상부구조”라는 틀이 그것이다.

이 틀에 비춰 말하면, 지금 영국은 상부구조가 토대와 완전히 따로 노는 상황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3권에서 이런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통찰을 두 가지 제공했다.

첫째, “특정 국가 형태[는] … 생산 자체에서 직접 도출되면서도 생산에 결정적 요인으로 반작용한다.” 즉, 국가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영향을 받지만, 경제적 토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저 반영만 하는 것은 아니다(크리스 하먼이 말한 “구조적 상호 의존”).

둘째, “같은 경제적 토대가 다른 많은 경험적 사정들 ─ 예컨대 자연조건·인종관계·외부의 역사적 영향 ─ 로 말미암아 현실의 형태에서는 무한한 편차를 나타낼 [수 있으며] … 바로 그 경험적 사정들을 분석해야만 이런 편차를 알 수 있다.” 즉, 브렉시트를 둘러싼 총체적 난국을 이해하려면, 자본과 국가에 대한 일반 이론뿐 아니라 영국 자본주의와 영국 국가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세계 최강국에서 열강의 하나로 전락한 영국

영국 자본주의는 지난 150년 사이에 세계 최강 제국주의에서 열강의 하나로 지위가 하락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영국 제국” 자본주의가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에서 징검다리 노릇이나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반면, 영국 국가의 틀은 영국 자본주의가 세계 최강으로 발돋움하던 1860~1880년대에 형성된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서 ‘국가’는 ‘나라’(country)라는 통상적인 의미보다는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통합 국가”(integral state)를 뜻한다. 즉, 정치 기구와 시민사회를 통칭하는 말이다.

영국 국가는 양대 정당이 서로 경합해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쪽이 의회 입법권과 (더 넓은 지배계급에 기반한) 국가 기구의 행정력을 독점하는 “총리 정부” 구조다. 이런 구조는 선거로 집권한 의회 다수당에 강력한 권력을 부여한다.

이 구조를 이용해 영국 국가는 의회 정당들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면서도 관료 기구, 군 장성, 보안 기구, 언론들의 비호를 받으며 영국 자본주의의 이익에 이바지할 수 있었다. 이런 구조는 자유당이 몰락하고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이 집권하는 동안에도 유지됐다.(노동당은 몇 차례 집권에서 중요한 변모를 겪었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 동안 영국 국가에 가해지는 부담이 점차 커졌다.

영국뿐 아니라 선진 자본주의 나라 모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진전되면서 정당과 시민사회에 대한 시민 참여가 늘었다. 그러나 그런 기구들은 시민 대중이 아니라 소수 관료, 고위 공직자, 군 장성들, 기업 로비스트들과 교감하는 전문 정치인들이 통제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면서 중도우파 정당과 중도좌파 정당이 똑같이 대중의 이익을 침해하는 자유시장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양대 주요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줄었고,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아일랜드가 합쳐진) 영국 국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우파 민족주의 정당들이 기회를 얻게 됐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도 영국 국가의 위기 심화에 한몫했다. 세계경제 위기 속에 재집권한 영국 보수당 정부가 긴축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성 정치권 전반에 대한 도전이 분출했다. 영국 자본주의와 영국 국가를 엮고 있는 복잡한 메커니즘은 혼란에 빠졌다.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두고 날카롭게 분열한 영국 국가

유럽연합과 영국의 관계 문제가 그 혼란의 핵심이다.

영국 자본의 처지에서는 영국 국가가 유럽연합 경제의 일부로 있으면서 금융과 무역의 허브 구실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유럽연합과 영국의 관계 문제는 1990년 당시 보수당 소속 총리 마거릿 대처가 몰락한 이래 수십 년 동안 보수당에 목구멍 속 가시처럼 박혀 있는 쟁점이다.

마거릿 대처는 “국가, 가족, 의무, 권위, 기준, 자부심 등 영국의 전통적 가치와 자유시장 경제를 절묘하게 혼합”한 통치 방식을 구사했다. 대처는 “전통적 가치”를 무기 삼아 말비나스 전쟁[영국에서는 포클랜드 전쟁이라고 부름]과 광원 파업 분쇄를 주도했고, “자유시장 경제”를 추구해 유럽단일시장을 창출하고 시티(런던 금융가)를 유럽의 금융 허브로 만들어 영국 자본주의의 국제화를 촉진했다.

그러나 그 막강하던 대처가,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빠지면서 자신이 임명한 내각과 소속 정당의 지지를 잃고 힘없이 몰락했다. 그 후, 대처가 구축했던 체제는 보수당 내에서 격렬한 쟁투의 대상이 됐다.

2010년 집권한 보수당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잔류파가 압승해 당내 분란을 종식시킬 수 있으리라고 봤었다. 하지만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에서 탈퇴(브렉시트)가 결정돼 큰 타격을 입었다.

캐머런의 후임인 현 총리 테레사 메이가 브렉시트 절차를 추진하면서, 영국 “통합 국가”[앞서 언급된 그람시적 의미의 국가] 내 상이한 세력들 사이의 분열이 심화됐다.

메이는 국민투표 당시 잔류 지지자였다. 하지만 총리가 된 후에는 보수당 우파(유럽연합 탈퇴파)를 달래려 했다. 메이는 브렉시트 후 유럽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을 모두 탈퇴하고, 유럽연합 회원국 국민들의 자유로운 이주를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보면, 영국이 유럽연합보다 더 아쉬운 처지이다. 유럽연합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유럽연합은 영국에 최대한의 출혈을 강제해 본보기를 보이려 했고, 유럽연합 회원국들을 분열시키겠다는 메이의 협상 전술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상이한 세력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메이가 2018년 7월 공개한 합의안 초안은, 유럽연합의 규제를 엄격히 준수하는 대가로 제조업에 한해서 영국이 유럽단일시장에 잔류하겠다는 것이었다.(서비스 부문은 제외됐는데, 이는 영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장기적으로 크게 해칠 만한 일이다.)

영국 자본가들은 격분해 메이를 성토했고, 내각은 분열했고, 강경 우파 정치인 보리스 존슨 같은 자들은 “하드 브렉시트”를 소리 높여 외쳤다. 하지만 결국 유럽의회가 메이의 안에 퇴짜를 놓았다.

메이 정부가 안을 내면 보수당이 날카롭게 분열하고 유럽연합이 퇴짜 놓는 이 패턴이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협상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런 패턴이 깨지고 영국에 더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일랜드와의 관계 문제도 혼란의 또다른 축이다. 국경 통제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유럽연합 제국주의 때문에 이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영국이야 어쨌든 북아일랜드는 브렉시트 후에도 관세동맹에 잔류시켜 남/북 아일랜드 국경을 개방하고 싶어한다. 이 안을 따르면 가능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첫째, ‘노 딜 브렉시트’ 시 영국이 북아일랜드라는 코뚜레에 꿰어 관세동맹에 종속되는 것이다. 둘째, 북아일랜드가 영국 소속의 다른 지역들과는 다른 지위에 놓임으로써 영국 국가가 분열하는 것이다.

강경 탈퇴파이자 영국 왕정 지지자들인 영연방병합당(DUP, 북아일랜드 우파 정당이자 메이 정부의 연정 파트너)과 보수당 우파는 이런 귀결에 한사코 반대한다.

영국 제국주의의 산 증거인 아일랜드가 유럽연합 제국주의에 이용돼 영국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얄궂게도 이 아이러니 때문에 영국 국가의 내분은 점점 더 격해지고 있다.

좀비가 된 영국 정부

마거릿 대처의 몰락은 아무리 강력한 “총리 정부”도 내각과 의회 다수당의 지지 없이는 위기에 빠진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런데 메이는 둘 모두를 잃었다.

메이는 자신이 부친 “의미 있는 표결”에서 세 번 연속 패배했는데, 그중 한 번은 영국 의회 역사에 남을 대패였다. 메이가 국정 운영의 핵심 동력인 정당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뚜렷한 증거다. 

보통의 경우라면 메이는 즉각 몰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메이는 협상의 결정적 순간인 지금 자신을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정치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보수당의 통제력 상실 문제는 심각한 지경이다. 해괴하게도 보수당 평의원들은 3월 27일과 4월 1일 표결에서 자유 투표 지침을 받았고, 내각 구성원은 정부안에 (찬성표가 아니라) 기권표를 던지라는 지침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내각 구성원 열 명을 포함한 보수당 의원 170명이 메이에 공개 서한을 보내 메이의 합의안을 반대했다.(이런 상황에도 보수당이 결정적으로 쪼개지지 않는 것은, 다가올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를 면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다.)

보수당보다는 덜하지만 노동당도 통제력 상실 조짐이 있다. 같은 투표에서 평의원 27명이 노동당의 투표 지침을 거슬러 표를 던졌고, 18명은 아예 기권해 버렸다. 이런 이탈자들 중에는 예비내각 소속 의원도 세 명이나 있었다.

이런 난맥상을 보면 상황이 ‘노 딜 브렉시트’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 정부가 무엇이든 유럽연합과 합의를 성사시키려면, 지지까지는 몰라도 방해라도 받지 않아야 할 텐데, 혼돈에 빠진 영국 의회는 정부 합의안 지지, ‘노 딜 브렉시트’, 탈퇴 철회 중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마비돼 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의 협상력이 전보다 더 커졌다. 유럽연합 제국주의는 취약해진 영국 국가를 공격해 영국 자본주의에 자신이 원하는 출혈을 강제하고, 프랑스·독일 등 유럽연합 회원국 자본주의를 이롭게 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영국 자본주의에 영향을 줘, 혼돈을 더 키울 것이다.

영국 좌파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이 혼돈에서 유일하게 분명한 것은 영국 국가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국 좌파는 위기에서 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은 유럽 통합에 대한 (노동당 좌파로서의) 비판 입장 덕분에 브렉시트 급류를 비교적 잘 헤쳐 가고 있었다. 때로 코빈은 자본/노동 계급 적대가 영국 사회의 핵심 분단선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노동계급이 브렉시트를 둘러싼 입장 차이를 넘어 단결케 하려 했다.

이런 코빈의 행보를 제약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의회 정치의 수렁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당 우파다. 노동당 우파의 일부는 언론의 비호 하에 노동당을 탈당해 ‘독립 그룹’(이제는 ‘체인지 UK’라고 불린다)을 결성했다. 이런 압력 때문에 코빈은 당내 잔류파와 타협해, 브렉시트 여부를 다시 묻자는 2차 국민투표 요구를 수용했다. 이는 2016년 국민투표 당시 좌파적 이유로 유럽연합 탈퇴에 투표한 노동당 지지자들에게 등을 돌리는 우려스런 결정이었다.

2차 국민투표는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 양당 모두에서 반대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당 우파는 이런 압박으로 코빈을 굴복시키고 당을 밀어붙여, 영국이 유럽단일시장·관세동맹·유럽사법재판소에 잔류하게 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조기 총선으로 좌파 정부가 들어서도 신자유주의적 긴축을 거스르는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혼란은 노동당 왼쪽에 있는 좌파들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영국에는 의회 내 브렉시트 이전투구로부터 초점을 이동시킬 대중운동·파업이 충분치 않은 실정이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기후변화 반대 행동은 중요한 예외지만, 이 운동들은 영국 정치 자체에 균열을 낼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는 않다.

바로 이것이 노동당 왼쪽 좌파의 상당수가 (기만이게도 “민중 투표”라고 이름이 붙은) 2차 국민투표 지지 운동에 헌신한 배경이다. 이 운동은 3월 23일 런던 도심에서 수십만 명 규모의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2003년 2월 15일 비슷한 규모로 런던 도심 집회를 열었던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 운동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은 영국 국가의 제국주의 전쟁 동참에 직접 도전했지만, 2차 국민투표 지지 운동은 영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수호하기 위해 나선 보수당 잔류파와 노동당 우파, 그리고 영국 자본가들이 주도했다. 

이런 운동에 동참한 노동당 왼쪽의 좌파들은 “극단적 중도파”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종속돼서, 유럽연합에 잔류해 ‘국제주의적’ 운동을 벌여 유럽연합을 개혁하는 것이 진보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연합에서 좌파적으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한 ‘렉시트’ 운동의 단결은 깨졌다.

유럽연합의 진보성?

그러나 잔류 지지 좌파들이 유럽연합을 좌파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공상이다.

유럽연합을 초국가적 공동체라고 착각하는 것과는 달리, 유럽연합 회원국 사이에는 국민국가를 따라 날카로운 분단선이 있다. 각국 자본주의는 국민국가의 경계선을 따라 불균등·결합 발전을 해왔으며, 각국의 정치 지형과 계급투쟁의 양상도 상이하다. 만약 한 나라의 계급투쟁이 더 빨리 전진해, 유럽연합의 경제 정책에 맞서는 좌파 정부를 세운다 해도 그 정부는 유럽연합 기구들에 의해 압박받고 고립될 것이다.

2012년 그리스에서 좌파 개혁주의 정당 시리자가 집권했을 때 정확히 그런 일이 벌어졌다. 시리자 정부는 유럽연합을 왼쪽으로 이끌기는커녕 유럽연합의 압력에 짓눌려 분열했다. 영국 국가는 그리스보다 훨씬 강력하지만, 바로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유럽연합에 잔류하면서 좌파적 개혁을 할 가능성이라도 있으려면, 자유시장 자본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좌파가 한두 나라 정도가 아니라 유럽연합 회원국 모두에서 집권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국제적 격변 상황에서 왜 제국주의 기구인 유럽연합을 유지해야 하는가?

이 맥락에서 ‘4대 자유’ 문제가 제기되는데,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하는 좌파들은 유럽연합의 “회원국 간 재화, 서비스, 자본,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한다”는 원칙을 들어 유럽연합의 ‘진보성’을 옹호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유럽연합이 이집트 독재자 압델 파타 엘시시 등과 손잡고 유럽연합 비회원국 출신 난민·이주민의 유입을 엄격하게 통제한다는 사실을 쉽사리 보아넘긴다. 

지금 브렉시트를 두고 쟁투를 벌이는 영국과 유럽연합은 모두 추악하고 잔혹한 신자유주의·제국주의 세력이다. 일례로, 최근 유럽연합은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들이 수장되지 않게 하는 구조 활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메이가 내무장관이던 시절부터 영국 보수당 정부가 강력하게 요청해 오던 것이다. 

영국 국가와 유럽연합 둘 중 어느 한 쪽이 진보적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좌파적 대안을 위해

언제든 어떻게든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다고 상황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영국과 유럽연합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상호관계 설정 과정에서 수많은 쟁투를 벌일 것이다.

보수당 우파가 하루빨리 메이를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바로 그 영국/유럽연합 관계 설정 논의를 주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논의에서 대중의 조건을 혹독하게 공격할 자들이 2016년 국민투표로 드러난 민의의 올곧은 대변자를 자처하는 것은 보기 역겨운 일이다.

그러나 누가 논의를 주도하든 영국 국가는 계속 위기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 위기는 메이의 무능이나 대중의 무지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 제국주의의 상대적 약화, (프랑스·독일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유럽연합과의 관계 설정 문제로 수십 년째 이어진 영국 지배계급 내 갈등이라는 구조적 원인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영국 지배계급이 영국 자본주의의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임금·일자리·노동조건·복지를 공격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에 맞선 투쟁은 세 측면에서 벌어져야 한다. 첫째, 긴축에 맞서 광범한 단결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까지 영국에서 긴축 반대 운동은 그다지 강력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극우와 파시즘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유럽연합 잔류 지지 좌파들의 매도와는 달리, 극우가 브렉시트를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극우와 파시즘에 맞선 핵심 전술인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데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셋째, 영국과 유럽 문제에서 진정한 좌파적 주장을 펴야 한다. “요새화한 유럽”이든 영국 국가주의든 어느 쪽도 대안이 아니라는 것과, 겉만 다를 뿐 신자유주의적이기로는 마찬가지인 둘 모두에 맞서 좌파적 원칙에 입각해 이주민·난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노동계급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