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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육교직원노조 최순미 위원장 :
보육교사 처우 개선 위해 ‘1만 선언 운동’에 나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문재인은 보육 공공성 강화를 약속하며 “보육교사 8시간 근무제 도입” 등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보육교사들의 처지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장시간 노동·저임금·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보육교사들의 현실을 듣기 위해 ‘8시간 근무제 도입과 노동법 개정을 위한 1만 보육교직원 선언 운동’에 나선 공공연대노조 보육교직원분과 최순미 위원장을 만났다.

지난해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7월 1일부터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에게 4시간 근무에 30분 휴식을 의무화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 행정’이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공공연대노조 보육교직원노조 최순미 위원장 ⓒ전주현

인력 충원이 없으니 문제가 많아요. 담임 교사가 쉴 때 옆 반 교사가 맡으니 관리하는 아이들이 2배로 늘어나요.

그런데 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책임을 담임 교사에게 전가하는 시스템이에요. 담임 교사가 화장실 간다고 3분 동안 CCTV에 보이지 않으면 아동학대로 걸립니다. 보육교사들이 ‘장이 나쁘면 이 일 못한다’, ‘소변 짧게 끊어야 한다’고 얘기할 정도에요. 그러니 누가 편히 쉴 수 있겠어요.

아이들과 분리된 휴게 공간도 거의 없어요. 각종 행정 업무가 많아서 쉬는 시간에 서류 작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정부의 휴게시간 정책 때문에 오히려 퇴근은 1시간 늦어지고, ‘공짜 노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원장들은 휴식확인서에 사인하라고 허위 서명을 강요해요. 휴게시간 보장 규정을 어기면 벌금 등으로 처벌 받지만 그러려면 교사들이 신고해야 하는데, 누가 밥줄 내놓고 그런 일을 하겠어요?

정부는 보조교사 6000명을 충원했고, 올해 더 충원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요.

제가 전국으로 간담회를 다니면서 물어 봤는데 보조교사 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 민간 어린이집이 80퍼센트 이상인데, 원장들이 돈 들여서 보조교사를 고용할까요?

보조교사가 있어도 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어요. 아이들은 낯선 사람이 오면 힘들어 해서 잠시 있는 보조교사가 관리하기 어렵죠.

그리고 보조교사 업무 지침이 명확하지 않아요. 담임 교사 대체 업무 말고 원장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보건복지부는 이런 문제들을 다 알고 있지만 보조교사만 투입되면 해결된다고 앵무새처럼 얘기해요. 답답하죠.

정부는 내년에 시행될 예정인 보육지원체계 개편안(이하 개편안)으로 보육교사들의 처우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린이집 12시간 운영은 그대로이고, 제대로 된 인력 충원 계획이 없어서 기대하기 어려워요. 보육교사 업무를 정리해 주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없어요.

현재 보육교사들은 행정·상담 업무로 시간외 근무가 너무 많아요. 관찰일지, 운영일지, 안전일지 등을 다 작성해요. 요새는 미세먼지 일지도 생겼어요. 밤 늦게까지 학부모 상담도 하죠. 아이들 하루 종일 돌보고 진이 다 빠진 후에 남아서 이런 일을 처리하죠.

저희 노조에서 보육교직원 23만 명이 근무 외 시간에 받는 의무교육 6개를 임금으로 환산해 보니 매년 약 100억 원이 넘는 임금 체불이 발생하고 있었어요. 정부가 가짜 휴게시간과 임금 체불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개편안의 가장 큰 문제는 보육교사들을 무진장 힘들게 하는 평가인증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의무화한다는 거예요.

3월 7일 "휴게시간 실질보장을 위한 8시간 근무제 도입! 노동법 개정을 위한 보육교직원 선언 기자회견 ⓒ제공 보육교직원노조

어린이집 평가인증 업무가 보육교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아이와 교사의 성장을 위해 평가는 필요해요. 그런데 지금 실행하는 평가인증은 전혀 도움이 안 돼요.

지자체, 평가인증단, 엄마 모니터링 등 여러 군데에서 평가를 실시해요. 보육교사들이 그때마다 죽어나요. 어린이집에서 일주일 동안 숙식하며 밤새 준비하는 경우도 있어요.

평가인증도 엉망이에요. 평가인증 관찰자가 나와서 ‘아이 코 안 닦았네요. 1점 감점’, ‘앞치마 안 했네요. 1점 감점’ 이렇게 점수로 평가해요. 원장은 ‘너 때문에 점수 깎였다’며 [교사들을] 들들 볶아요.

효과적인 평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평가 기관을 일원화해 정보를 공유하면 훨씬 효율적이죠. 장애 아동 교사의 경우 보육 전문가가 붙어서 교육 방법에 대해 소통하고 의논을 해줘야 해요. 이렇게 교사가 배울 수 있는 평가를 해야 교육의 질이 발전하죠.

정부는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며 의무교육이나 평가인증만 늘려요. 그런데 교사가 쉴 수 있고 근무 환경도 좋아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죠.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을 보육교사에게 떠넘기고 전문성 운운하는 게 황당하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보육은 공공서비스로 보장돼야 하고, 열악한 보육교사 처우 개선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공약에서 많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문재인은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됐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촛불 운동 덕에 당선 됐으면 보수 세력들 눈치 보지 말고 목숨 걸고 개혁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보육체계를 바꾸려면 정말 혁신이 필요한데 문재인 정부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 별로 기대도 안 했지만 실망스럽죠.

사회서비스원에서 보육을 아예 빼 버렸잖아요. 국공립 어린이집은 10퍼센트도 안 돼요. 핵심은 대다수 보육교사들이 일하는 민간 어린이집인데, 여기를 그대로 두면 달라지는 게 없어요.

정부가 대신 해 주기를 기대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열악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개혁이 필요하고 보육교사들이 직접 나서야 해요. 우선 실효성 있는 8시간 근무제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최근 현장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과거에는 원장의 밀착 감시가 워낙 심해 노조 조직이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보육 현장을 바꾸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1만 보육교직원 선언 운동’에 호응도 꽤 커요. 이것을 활용해서 대대적인 조직화 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8시간 근무제 쟁취, 시간외 교육과 잡무 금지, 교사 대비 아동 비율 축소 등 보육교사 처우 개선을 위한 투쟁에 나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