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의 베네수엘라 개입 규탄한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가 소수 군인들을 이끌고 4월 30일에 쿠데타를 시도해, 5명이 죽고 약 230명이 다쳤다. 과이도가 정권 탈취를 시도한 이래 지금까지 약 60명이 사망했다.

베네수엘라 대자본가들과 백인 상층 중간계급들이 벌이는 현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 전복 기도는 끝날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5월 2일 과이도는 ‘자유 작전’을 이어가겠다며 군대의 동참을 촉구했다.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도, 베네수엘라 군부가 마두로를 퇴진시키면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유혈 사태도 계속되고 있다. 5월 4일 베네수엘라 공군 여단장 시우바 사파타와 경찰 고위 간부 두 명이 무장 세력의 매복 공격으로 사망했다. 같은 날 여당 베네수엘라통합사회주의당(PSUV)의 카라카스 지구당 사무실이 방화로 불에 탔다.

4월 30일 발발한 쿠데타를 즉각 “전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트럼프 정부는 나날이 압박을 키우고 있다. 

5월 1일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폭스〉와의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베네수엘라에] 군사 개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미국 연방항공국(FAA)은 베네수엘라의 “정국 불안정과 긴장 강화”를 이유로 베네수엘라 영공 저공비행을 금지했다. 사실상 자국 민간 항공기의 베네수엘라 출입을 금한 것이다.

5월 3일 폼페이오를 비롯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 국방장관 대행 패트릭 섀너헌, 합참의장 조셉 던퍼드, 국가정보국장 댄 코츠, 중남미를 관할하는 미군 남부사령부 사령관 크레이그 폴러 등 미국의 외교·안보 핵심 인물들이 모여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계획과 [전술적] 선택지를 다듬고 검토했다.”

5월 7일 미 해군 병원선 USNS컴포트호가 베네수엘라 북쪽 근해인 카리브해에 배치될 것이라는 계획이 폭로됐다(〈로이터〉). 명분은 베네수엘라 난민 구제이지만, 장벽을 세워 난민 유입을 막겠다는 트럼프 정부가 난민 구제 운운하는 것은 속 보이는 수작일 뿐이다.

베네수엘라 근방에 (아직은 비무장 병력일지라도) 미군 배치 계획이 실질적으로 고려된다는 것은 명백한 긴장 고조 신호다.

미군 배치 계획

트럼프 정부의 호전적 우익들만 베네수엘라 개입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5월 1일 미국 외교 전문 잡지 《포린 어페어스》는 마두로 정부를 교체하려면 제재뿐 아니라 직접적 군사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같은 날 사설에서 베네수엘라 우파의 상징적 인물인 레오폴도 로페스의 말을 인용해 “자유를 쟁취하러 나설 때”라고 촉구했다.

공화당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은 한 술 더 떠 미국이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베네수엘라를 침공하자는 말에 다름없다.

미국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최근 민주당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한 전 부통령 조 바이든은 “미국 정부가 과이도의 편에 서[야 한다]”며 나섰다. 민주당 중진 밥 메넨데스(상원 외교위 소속)도 베네수엘라 제재에 국제 사회를 동참시켜야 한다며 더 강력한 제재 압박을 촉구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영향력을 제고하겠다는 데서는 미국 지배계급이 (시기와 세부 방식에서 조금 다를지언정) 대동소이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우파 정부들도 미국의 베네수엘라 압박을 거들고 있다. 브라질의 극우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모든 선택지가 열려 있다”는 미국의 말을 그대로 되뇌었다. 칠레·콜롬비아·페루 등의 우파 정부들도 마두로가 “테러 단체들”을 비호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민주사회주의당(DSA) 소속 좌파적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민주당 지도부의 입장을 따르겠다고 밝힌 것은 중대한 실수다. 


남미 우파 정부와 군사 협력하는 문재인 정부

문재인은 과이도 지지를 두 차례나 선언하고 300만 달러를 들여 베네수엘라 우파 지원에 나섰는데, 최근에는 군사적으로까지 측면 지원을 하려고 한다.

4월 말 칠레의 우파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와 정상회담을 한 문재인은, 베네수엘라 압박에서 “피녜라 대통령의 주도적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칭찬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칠레와 국방협력협정을 체결했다. 마두로에 적대적인 칠레에 군사 훈련을 지원하고 군수물자와 무기를 수출해, 과이도를 측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칠레군은 반 세기 전 노동자 항쟁을 잔혹하게 진압한 자들이기도 하다. (아래 기사를 보시오.) 

문재인이 지지하는 미국 제국주의와 역내 우파 정부들이 아니라, 베네수엘라인들만이 베네수엘라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두로 정부는 사태를 “대화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두로는 폭력 쿠데타 주모자인 과이도에 영장을 발부하지도 않았다.

마두로 딴에는 미국에 개입 명분을 주지 않겠다는 속내이겠으나, 제국주의 간섭과 자본가들의 반동적 쿠데타 시도로 만신창이가 된 베네수엘라인들의 김을 빼는 처사다. 그런다고 미국과 야당들을 달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베네수엘라 노동계급에게는 직접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해야 할 과제가 점점 더 사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노동자 대중은 노동자 권력을 세워 스스로 무장하고 제국주의·자본가들에 맞서면서, 생필품 생산·분배와 치안 유지 등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노동자 권력 수립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강령 수립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은 (말로야 급진적으로 들릴 수 있어도) 실질적 쿠데타 위협에 맞선 투쟁에서 무기력한 입장이다.


1973년 칠레 쿠데타 군부와 지배계급에 대한 타협,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저항을 억누른 대가는 3만 명이 사망한 비극이었다

1973년 칠레 쿠데타의 교훈을 생각한다

반 세기 전 칠레에서도 미국 제국주의가 후원한 우익 쿠데타가 일어났다.

1968~1969년 칠레에서는 혹독한 물가 인상과 저임금에 맞서 항쟁이 분출했다. 1년 만에 파업 건수가 세 배 뛰었고, 공장 점거가 전국을 휩쓸었다. 농민·학생들도 저마다 요구를 걸고 투쟁에 나섰다.

대중 항쟁으로 살바도르 아옌데의 민중연합 정부가 들어섰다. 아옌데는 미국 기업이 소유한 구리 광산을 국유화했다. 핵심 수출 산업 일부를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적 자본가들이 기업 대부분을 통제했다.

아옌데는 개혁을 단행했지만, 자본주의 질서 자체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그는 군부·자본가들과 타협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민중연합 정부는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려 했다.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분출한 반제국주의 운동을 꺾으려던 미국은 칠레 군부와 자본가들을 적극 지원해 아옌데를 흔들었다. 미국은 칠레산 구리에 금수 제재를 가했고, 세계은행을 동원해 칠레의 외채 위기를 키웠다. 반면, 칠레 군부는 미국의 쏟아지는 지원을 받았다.

아옌데 집권 2년차인 1972년 여름, 칠레의 계급 갈등은 임계치에 거의 다다르기 시작했다. 극우 성직자들이 공공연하게 군사 쿠데타를 선동했다.

그해 9월 칠레 지배계급은 첫 번째 정권 전복을 시도했다. 9월에는 소매상 상점주들이, 10월에는 화물차주들과 네오파시스트들이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아옌데 정부는 군부에 질서 회복을 촉구할 뿐이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 권력의 맹아인 ‘코르돈’(‘산업벨트’라는 뜻)을 건설해 반혁명을 좌절시켰다. 노동자 권력의 가능성이 대두됐다.

그러나 아옌데는 군부를 입각시키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었다. 군부와 동거한 아옌데 정부는 몰수한 공장을 칠레 자본가들에 되돌려 주며 타협에 나섰다. 그런 행보는 결국 노동자 투쟁을 탄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듬해인 1973년 6월 기갑연대 대령 로베르토 소우페르가 소규모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다음 쿠데타는 시간 문제였을 뿐이었다.

또다시 아옌데는 군부를 내각에 끌어들였다. 결국 1973년 9월 11일 아옌데 정부는 자신이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처참하게 몰락했다.

미국은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적극 지원했다. 쿠데타 기간 동안 미군은 칠레군과 ‘합동 훈련’을 벌였고, 미 해군 전함 네 척이 칠레 앞바다에 배치됐다. 만에 하나 칠레 군부가 분열하면 바로 개입하는 것이 그 전함들의 임무였다.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아옌데 정부 전복에 800만 달러를 썼다.

미국의 비호 하에 권좌에 오른 피노체트는 칠레 최상의 노동계급 투사들을 학살했다. 1년 만에 3만 명이 죽었다.

미국은 피투성이 학살자 피노체트를 끝까지 후원했고, 비슷한 시기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휩쓴 우파 쿠데타들을 적극 지원했다. 노동자 대중 투쟁 없이 친제국주의·우파 쿠데타를 막으려 했던 환상 때문에 대륙 전체에 반동의 물결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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