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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와 대화한다면서 구조조정 강행하는 오라클

오라클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첫 파업에 나선 지 곧 1주년이 된다. 박근혜 퇴진 촛불로 얻은 자신감이 일터의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작업장이다.

지난해 5월 16일, 오라클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이미진

오라클 노동자들은 10년 임금 동결, 주 100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 ‘권고’사직을 통한 상시적 구조조정, 성과연봉제 하에서 억눌려 왔고,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요구했다.

IT는 노동집약적 산업이고, 노동자들은 집중된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 받아 왔다. 오라클 파업은 매출 40조 원의 글로벌 IT 대기업 노동자들도 다른 노동자들과 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며 주목 받았다.

또 오라클 파업은 IT 노동자들도 집단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 파업 이후 넥슨, 스마일게이트 같은 대형 게임업체 노조가 만들어졌고, 2위 포털업체 카카오에서도 노조가 결성됐다. 네이버 노동조합은 올해 2월부터 단체행동을 시작했다. 독일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 SAP의 한국 지사 노동자들도 노조를 결성해 구조조정을 일부 저지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노조는 오라클 파업 기간에 단체협약을 맺었다. 야간 대기 근무를 없애고 미사용 연차 수당 3년 치를 받아 내는 등 성과를 거뒀다. “사측이 말은 안 하지만, 우리가 오라클 파업의 혜택을 받았다고 봐요. 분명히 한국 상황을 본사에 보고했을 거고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이옥형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위원장의 말이다.

투쟁의 성과

파업 직전 오라클 사측은 ‘임금 협상 권한을 영구히 포기하면 노조를 인정해 주겠다’며 고압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파업 이후 사측은 노동자들을 전과 같이 대하지 못하게 됐다. 최근 업무 중 다친 노동자는 연차를 쓰고 쉬라는 사측의 지시를 받았지만 노조가 노동청에 고발해 산재 처리를 받을 수 있었다. 초과근로 수당도 다 나오기 시작했다. 미사용 연차 수당 1년 치를 한 번에 지급받았고, 앞으로는 다 받을 수 있게 됐다. 주 100시간씩 일하라는 압박도 사라졌다. 불법적 영업 행태 강요도 더는 하기 힘들게 됐다.

사측은 1년간 만만찮은 타격을 입었다. 노조를 앞장서 무시하던 김형래 사장이 경질됐다. 노조 측은 파업 여파로 3000억 원 정도의 연매출 손실이 났을 것으로 추산한다.

구조조정

사장이 물러난 후, 최근 사장 직무대리를 맡은 탐송 부사장은 노조와의 교섭 자리에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노조의 핵심 요구들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태도다.

그러면서 오라클 사측은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도 시작했다. 조직을 개편하며 사실상 해고에 나선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100명이 대상이다.

이런 구조조정 배경에는 오라클의 위기감이 있다. 클라우드 사업 진출에 뒤쳐졌기 때문이다. 오라클은 2년 전 클라우드 영업 조직을 신설하면서 기존 영업 노동자들의 성과급 수당을 25퍼센트 삭감했다. 그런데 이런 클라우드 판매 전략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이제는 클라우드 영업 노동자들을 회사에서 내쫓으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노조는 “더이상 책임지지 않는 경영을 묵과할 수 없다”면서 “구조조정을 막아 내자” 하고 노동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사실 IT 업계에서 상시적 ‘구조조정’은 관행처럼 돼 왔다. 잦은 조직 개편으로 갈 곳 없어진 노동자들은 원치 않는 곳으로 전환배치되거나 대기발령을 받고 제 발로 걸어나가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곤 했다. 그러나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니다. 조직된 노동자들은 여기에 맞서 싸울 수 있다. 구조조정에 맞서 노조를 결성하고 일부 구조조정을 저지한 SAP가 그런 사례다.

구조조정과 함께 기존 영업 노동자들의 수당이 삭감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실제 삭감되지는 않았다. 사측은 구조조정에 수당 삭감까지 할 경우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투쟁이 커질 걱정을 했을 것이다. 오히려 삭감했던 기존 수당을 원래대로 복구했다.

이런 조처는 구조조정 대상 노동자들과 다른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려는 꼼수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안종철 위원장은 “회사 내 영향력이 작은 조직을 고립시켜 집중 공격하고, 기존 영업조직은 관리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구조조정이 사측 뜻대로 진행될 경우, “사측은 영업 목표치를 올려치기 해 성과급을 삭감할 위험성”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당면한 구조조정 공격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5월 15일 오라클노조 파업 1주년 투쟁 승리 결의대회가 예정돼 있다. 노조는 이 집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사측을 압박하며 힘을 모아 나간다는 계획이다. 집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얻고 투쟁을 전진시켜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