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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가 반유대주의자라는 마녀사냥의 한 배경:
영국 노동당과 시온주의

영국 노동당 대표인 좌파 정치인 제러미 코빈이 이스라엘의 점령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자, 당 안팎에서 코빈이 유대인을 증오한다고 거짓 비방하고 있다.

그러나 본래 영국 노동당은 시온주의와 그에 따른 이스라엘 국가를 지지한 오랜 역사가 있다. 시온주의는 중동에 유대인만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정치 신조다. 

최근 노동당이 ‘유대인을 증오한다’는 주장이 촉발된 것은 노동당 좌파가 시온주의에 의문을 제기하며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지지하는 쪽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라고 존 뉴싱어가 말한다.

노동당은 “체계적으로 반유대주의적”이기는커녕 역사상 훨씬 많은 경우 “체계적으로 시온주의적”이었다.

노동당은 벨푸어 선언* 이전에도 중동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한다는 [시온주의] 사상을 수용했고, 선언 이후에도 자주 그 입장을 재천명했다. 당내 좌우파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이 입장을 공유했다.

노동당 우파는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해 그곳을 장악하면 중동에서 영국 제국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봤다. [영국 제국이] 아일랜드 민족주의에 맞서는 데에 북아일랜드 개신교 신자들이 도움이 됐듯, 아랍 민족주의에 맞서는 데에 시온주의자들이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노동당 좌파는 매우 다른 이유에서 시온주의를 지지했다. 노동당 좌파가 보기에 시온주의는 좌파적 운동이었고, 인구의 압도 다수를 빈곤의 수렁에 빠뜨린 지주 귀족 치하의 낙후한 중동에 진보를 가져다줄 운동이었다. 시온주의가 해방을 위한 투쟁에 앞장서는 유대인 노동자들을 통해 중동에 좌파 사상을 주입하리라는 것이었다.

키부츠*는 그런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보였다. 당연히 이는 시온주의자들이 부추긴 환상이었지만,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할 때만 옹호할 수 있는 입장이기도 했다.

각자의 동기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시온주의를 받아들인 결과로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초까지 노동당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결권을 부정했고 자치 정부 수립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반대했다. [자결권과 자치 정부 수립은] 시온주의 정착자들이 나라의 다수가 될 때까지 억제돼야만 했다. 이런 입장은 시온주의 지지가 영국 제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약화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에만 흔들렸을 뿐이다.

노동당 좌파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빼앗은 땅에 기반한 키부츠가 진보적 공동체라는 환상을 품었다.

1936년 영국의 식민 지배와 시온주의자 정착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항쟁이 분출했을 때, 노동당은 탄압을 지지했을 뿐 아니라 촉구하기까지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항쟁을 파시즘에 경도됐다고 비난했다. 노동당 의원 한 명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팔레스타인의 도시] 야파를 쓸어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임벌린 정부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시온주의자 이주를 제한하는 양보안을 제시했을 때, 노동당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달래려는 것”이냐고 비난하며 결사 반대 했다.

노동당은 제2차세계대전 내내 시온주의 지지를 고수했다. 노동당은 1940년 자신들의 전쟁 목표로 시온주의 지지를 재천명했으며, 1945년 총선에선 팔레스타인인들이 시온주의 정착자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고향을 떠나도록 장려하는 구체적인 공약을 걸기도 했다. 사실 노동당은 그 공약에서 시온주의 정착지를 이집트, 시리아, 트란스요르단까지 확장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 입장은 후보들에 나눠준 연설 노트에 포함됐다. 이 입장의 작성 책임자였던 노동당 의원 휴 돌턴은 에리트레아와 리비아에도 시온주의 식민지를 세운다는 내용까지 포함시키려 했다가 말았다.

노동당 우파는 집권한 후에는 시온주의 입장을 포기했는데, 시온주의가 아랍 지역에서 너무 많은 반발을 산 나머지 영국 제국의 영향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이는 영국의 지배에 반대하는 시온주의자들의 반란으로 이어져,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지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추방당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애틀리 정부가 시온주의 입장을 버릴 동안, 노동당 좌파는 친시온주의 입장을 강경하게 유지했다. 〈트리뷴〉 지가 그 기수 노릇을 했다.

유대인 증오는 어떠한가? 불편한 진실은, 유대인 증오와 시온주의 지지가 꼭 양립 불가능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외무장관 어니스트 베빈과 재무장관 휴 돌턴 둘 다 1930년대와 제2차세계대전 내내 강경한 친시온주의 입장이었지만 여러 차례 유대인을 “이드”[유대인에 대한 멸칭]라고 불렀다.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인 돌턴은 유대인 사회주의자 해럴드 래스키의 좌파 사상을 그저 “이드 사상”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그리고 당연히 애틀리는 [유대인] 의원 이언 미카도에 장관직을 주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정부에 유대인이 이미 너무 많다’고 했고, 돌턴은 이 결정을 완전히 지지했다.

애틀리 정부가 유럽에서 노동자들을 충원함으로써 영국의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로 했다는 것도 상기할 만하다. 그러면서 노동당 정부는 항복한 우크라이나 나치 친위대를 전원 들여왔다. 동시에 정부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유대인 난민들을 가능한 한 영국에 들이지 않으려 했다. 이 잊혀진 일화는 노동당의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 중 하나다.

애틀리 정부 이후 오랫동안 노동당의 외교 정책의 기초는 미국 제국주의 지지였고, 그 결과 노동당 중도파와 우파는 다시금 미국의 중동 지역 동맹인 이스라엘을 포용했다. 하지만 노동당 좌파는 이스라엘의 팽창주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받는 대우, 리쿠드당[이스라엘의 우익 연합 정당]으로 드러난 이스라엘 우익의 부상 때문에 점점 환멸을 느꼈다. 처음으로 노동당 좌파 일부가 시온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거부까지 하게 되자 예상대로 그들은 유대인을 증오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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