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자한당) 대표 황교안이 5월 23일 휴전선 근방 군부대를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군은 정부 입장과 달라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너뮤 유화적이어서 문제라는 입장을 군이 내 달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내내 내각에 있으면서 총리까지 지낸 자답다.

민주당은 황교안이 군에 항명 선동을 했다고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내란 선동이라는 비난도 있다. 황교안과 자한당은 기회가 오면 그런 짓을 충분히 벌이고도 남을 자들이지만, 이 발언에 당장 그런 함축이 있는 건 아니다.

먼저, 승산이 없다. 황교안이 대통령권한대행으로 군 통수권을 쥐고 있을 때도 못 한 일이다. 또, 지배계급이 분열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금이 군부의 무력에 의존해야 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 그 정도 상황이라면 자한당 지도부가 일부 자당 의원의 5·18 망언이 잘못이라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교안의 발언은 군부를 포함해 선출되지 않는 권력 집단인 고위 국가관료들에게 총선·대선을 앞두고 자한당을 지지해 달라는 호소이다. 국가관료가 선출된 정부에 충성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군부는 우파의 보루 아닌가.

5월 23일 철원 GP 철거현장을 방문한 황교안 ⓒ출처 자유한국당

이미 외교부, 국토교통부 등의 관료들과 청와대 사이에 삐걱거리는 모습들이 드러났다. 특히, 주미 대사관 관료들이 〈조선일보〉의 워싱턴 특파원과 편집국장을 거친 구 여권(‘자한당’) 국회의원에게 기밀 정보를 제공한 것은 시사적이다. 지배계급 정당들 간 분열이 격화하는 동시에 국가 관료 안에서도 이반 현상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전직 외교 관료들조차 기밀 누설을 국가 기강을 해친 행위라고 비난했다. 자한당의 ‘오버’에 대한 반작용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가 기강 논란은 현 정부의 국가 기구 통제 능력에 대한 권력층 일반의 의심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의 “복심”이라는 양정철의 공식 정치 복귀 후 행보도 시사적이다. 양정철은 민주당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됐는데, 이 지위를 통해 현 여권의 내년 총선과 대선을 기획할 듯하다. 그런 그가 공식 정치로 복귀하자마자 유시민과 조국 등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들에 관해 공개 언급하고 국가정보원장(서훈)을 만났다.

특히, 양정철과 국정원장의 만남은 청와대도 현 상황을 심상치 않게 보고 있음을 뜻한다. 양정철은 이 만남을 통해 자신이 진짜 실세이고 문재인의 “복심”임을 보여 주는 효과를 냈다.

외교부 기밀 유출 건, 검찰과 경찰이 갈등하는 장자연 사건 수사 건, 경찰 내 갈등(청룡봉사상) 등 최근 사건들 모두에 조선일보사가 얽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현 여권과 조선일보사는 이미 지난해 초 드루킹 건과 장자연 건으로 충돌한 적이 있었다. 물론 친문의 핵심 인사인 김경수 경남지사는 선거 불법 개입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반면, 조선일보사 사주 일가는 장자연 건 연루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

세력 역전

자한당의 도발적 언행은 사회의 계급 간 세력균형을 촛불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는 단순히 자한당이 2016년 10월 이전의 지지율이나 세력을 회복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래 봐야 촛불 직전일 뿐이다. 우파는 촛불 운동이 낳은 성과(대중의 조직 확장과 의식 고양)를 없애 버리고 싶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도파로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우파에 대한 용두사미 식 투쟁과 타협, 왼쪽에게는 온건파 포섭과 좌파 타격 등을 병행하는 식이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자한당의 국회 폭력을 비난하고 자한당 의원들을 형사고발했지만, 진짜로 자한당 의원들이 구속되고 처벌받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사실 블랙리스트 연루, 세월호 참사 책임, “민중은 개·돼지” 발언 등 “관료 적폐”를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청산한 사례가 없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노동법 개악 시도에 항의하는 집회를 국회 앞에서 열었던 민주노총의 집행 간부 6명(금속노조 1인 포함)에게는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용자 계급에게 현 여권을 믿어 달라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문재인은 외교부 기밀 유출 건에 강경 대응한다면서도 최근 관료들을 내부 승진시키는 대대적 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다. 정부 관료들에게 환심 사기용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런 진심이 통해서일까? 5월 29일 자한당이 산불대책 논의를 하자며 행정안전부 등 관련 부처의 차관들을 부른 회의에 대상자 전원이 불참했다.

청와대가 검찰에 세월호 참사 재수사(특별수사단 포함)를 지시해 달라는 청원도 문재인 정부는 거절했다. 황교안, 기무사, 국정원 등이 모두 수사 방해, 유가족 감시, 은폐 공작 등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는데, 청와대의 냉담한 반응을 보고 우파는 “그럼 그렇지” 할 것이다.

정부기관인 국민연금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신호탄이라며 결사 반대하는 현대중공업 법인 분할에도 찬성표를 던질 예정이다.

정리하면, 문재인 정부는 거듭거듭 우파와 타협해 왔고, 그 덕분에 우파에게 기회가 거듭 찾아오고 있다. 어떤 일은 한술 더 뜬다. 최근의 인보사 허가 취소 사태(노무현 때의 황우석 사태를 떠오르게 하는)는 문재인이 박근혜보다 더 강력하게 의료 영리화를 추구한 결과다.

우파의 칼끝이 궁극으로는 좌파와 노동운동을 겨누고 있으므로 좌파와 노동운동이 우파를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 진정한 쟁점은 우파에 반대할 때 진보파와 노동운동이 독립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노동법을 개악하고 친기업 규제 완화에 몰두하는 문재인에게도 똑같이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민주노총이 집행 간부들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비난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은 불길하다. 진보정당들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명확하지 않은 듯하다.